■ 소가야 해상관문 내산리
고성에서는 어디를 가나 손쉽게 바다를 만난다. 산성을 오르거나, 해안도로를 달릴 때, 언덕배기 고분에서 고성만을 바라볼 때 바다는 친구처럼 다가와 1500여 년 전 소가야 이야기 한 자락을 풀어낸다.
 |
| 소가야의 해상교역 거점인 고성군 동해면 내산리 고분 전경. 고성군 제공 |
소가야는 남해안의 요충지를 차지하고 해상교역 활동을 통해 한 시대를 주름잡았다. 고자국에서 소가야까지 성장의 기반은 지중해를 방불케 하는 한려수도 앞바다였고, 이곳에서 신라와 백제, 왜 등과 활발히 교류했다. 소가야 해상교역의 주역은 송학동 세력과 더불어 고성군 동해면 내산리 고분군 축조 세력으로 밝혀지고 있다.
5~6세기 소가야 전성기 내산리 바다는 해상관문이었다. 내산리 고분군은 적포만 해안 일대의 고래실(古來室) 구릉 정상부를 중심으로 펼쳐지며, 5~6세기 60여 기의 고분이 밀집해 있다. 이 중 20여 기는 지름 15~20m의 대형 봉토분이다. 발굴 조사 결과 장신구류, 마구류 등 신라 일본 마한 대가야와의 교류를 짐작할 수 있는 유물이 다량 나왔다. 소가야의 국제성과 독자성, 다양성을 보여준다.
당항포와도 가까운 내산리 바다는 가야 시대 교역의 바다였고, 소가야가 망하면서 패망의 바다였다가,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 장군이 활약한 승전의 바다였다.
송학동 고분에서 1010번 지방도를 따라 해안도로를 20여 분 가면 동해중학교 인근 내산리 고분군에 닿는다.
호젓한 해안 길을 가다 보면 꽤 너른 농토를 만나고 바다 경관에 감탄하게 된다. 고성의 산과 바다, 들판 모두 소가야 성장의 기반이었을 터다. 고성에 갔다면 송학동 고분군과 함께 내산리 고분군 일대의 바다도 봐야 그나마 소가야의 실체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