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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야 해상교역 거점…대가야·신라·왜와 교류 흔적 생생

가야사…세계속으로 <6> 소가야의 타임캡슐-고성 송학동 고분

  • 박창희 경성대 교수
  •  |   입력 : 2024-02-18 19:22:55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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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학동 고분 발굴때 韓日 핫이슈
- 5세기 말 ~ 6세기 초 지배층 묘역
- 채색고분 피장자 왜 출신 왕비說
- 소가야? 철 생산 ‘쇠가야’설득력

마산에서 통영 가는 길목에 고성(固城)이 있다. 남해 연안의 호수 같은 바다를 품은 고성반도, 산맥과 산 사이에 제법 실한 들판을 품은 고성. 변방의 ‘단단한 성’. 그곳에 잊힌, 그러나 잊혀선 안 될 가야국의 유적이 있다. 고성 송학동 고분군이다. 송학(松鶴)은 자취 없이 날아가고 고분만 덩그러니 남았다. 고분군이래야 겨우 14기지만 얕잡아보지 마시라. 이곳에서 1500여 년 전 가야 해상왕국의 또 다른 흥망이 전개되어 우리 고대사의 한 진경을 연출했다는 사실. 그 증좌가 바로 송학동 고분과 인근 동외동, 내산리 고분과 만림산 토성이다.
소가야의 해상교역 거점인 경남 고성군 동해면 내산리의 교역 모형. 고분군이 있는 내산리 동쪽으로 열린 바다는 거제도의 서쪽과 동쪽으로 외해와 연결된다. 박창희 제공
■‘작은 가야’ 아닌 ‘쇠가야’

고성은 소가야의 옛땅이다. 옛 이름이 중국 사서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는 고자미동국(古資彌凍國)으로, ‘삼국사기’에는 고사포국(古史浦國), ‘일본서기’에는 고차국(古差國), ‘삼국유사’에는 고자국(古自國), 소가야(小伽倻) 등으로 나온다. 표기상의 차이일 뿐 같은 나라를 가리키는 것 같다. 지금의 고성은 신라 경덕왕 때 붙여진 이름이다.

소가야는 ‘삼국유사’에 전하는 6가야 중 기록과 흔적이 가장 적은 왕국이다. 이름부터 ‘작은 가야’임에랴. 이때 소(小)는 작다는 뜻도 있지만, 철을 뜻하는 쇠(金)의 음차로 보는 견해도 있다. 아무리 작은 나라라 하더라도 자기를 ‘작은’ 가야로 낮춰 부르는 예는 흔치 않고 실제 고성 인근에서 철이 난다는 점에서 ‘쇠가야설’이 설득력을 얻는다.

손에 잡히고 눈에 밟히는 것은 적더라도, 가야 연맹의 외방(外邦)으로서 소가야 역사 여행은 미지의 세계를 만나는 것처럼 묘한 설렘을 부른다. 욕망을 낮추고 작은 마음으로 고성 소가야를 찾아간다.

■송학동 1호분의 충격

고성읍내와 송학동 고분군을 북쪽에서 바라본 전경. 가야고분세계유산등재추진단 제공
터널처럼 뚫린 널길을 따라 이어진 무덤방인 횡혈식 석실(굴식 돌방무덤) 안은 붉은빛이 가득했다. 전등 불빛에 비친 무덤 내부 천장과 주변은 해뜨기 직전의 광채와도 같았다. 채색 고분이었다. 발굴책임자인 심봉근(전 동아대 총장)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고성 송학동 고분은 1980년대부터 일본식 묘제인 ‘장고형 고분이냐 아니냐’를 두고 학계 논쟁이 가열됐던 곳이다.

남아있는 부장 유물도 깜짝 놀랄만한 것이었다. 가야는 물론 신라·백제 토기와 함께 일본의 토기까지 두루 확인되어 지금까지 봐온 가야 고분의 발굴품들과는 다른 형식이었다. 문제가 복잡해졌다.

2000년 8월 동아대박물관이 발굴 조사한 고성 송학동 고분은 한일 고고학계를 긴장과 흥분 속으로 몰고 갔다. 한국에서는 기이한 채색 고분의 정체 규명에 바빴고, 일본에서는 왜(倭)와의 연관성과 전방후원분 관련성 캐기에 몰두했다. 장식 고분이라 불리는 채색 고분은 그때까지 일본 규슈지역에서만 110여 기가 확인되어 일본식이란 인식이 강했다. 소식을 들은 일본학자들이 앞다퉈 현장에 달려왔다.

가뜩이나 시끄러운 고성 송학동이 채색 고분 노출로 또다시 민감한 논쟁에 휩쓸릴 상황. 2002년 6월 고고학 조사가 일단락된 뒤 발표된 최종 결과는 송학동 고분은 일본의 전방후원분과 다르다는 것.

6세기 전반의 구덩식 돌방무덤(수혈식 석실분), 굴식 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 앞트기식 돌방무덤(횡구식 석실분) 세 가지 무덤 형태가 둥근 봉토분으로 연결되어 외형상 전방후원분처럼 보였으나 소가야의 특이한 고분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로써 고성의 전방후원분 논쟁은 20여 년 만에 종식되었으나 일본 학자들은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다.

■왜국에서 시집온 여인?

송학동의 채색 고분 내부 모습. 고성군 제공
송학동 1호분은 직경 33m, 높이 4.5m에 이르는 대형분으로 남북으로 길게 3기의 무덤이 붙어 있다. 이 가운데 채색 고분은 그 주인공, 즉 피장자를 둘러싼 흥미로운 논쟁이 불거졌다. 채색고분 속에 무기류는 보이지 않고 유리 목걸이, 유리구슬 등 여성용 장식품이 다량 출토됐기 때문.

호사가들의 상상력이 발동됐다. “피장자 2명은 왕과 왕비로 보인다. 무덤 구조와 부장품을 볼 때 왕이 먼저 묻히고 왕비가 채색 고분인 굴식 돌방무덤에 묻혔다.” 심지어 “소가야의 왕비는 왜에서 시집온 여인이다”는 가설까지 나왔다. 근거가 없진 않았다. 채색 고분 안에서 일본 오키나와산 이모조개 껍데기로 장식된 말 장식품이 수습됐기 때문이다. “6세기 전반의 정세로 볼 때 왜가 흔들리는 소가야 왕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 미모의 공녀를 보냈을 것”이라는 추론도 등장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송학동 고분 세력이 고성 일대의 해상교역을 장악하고 가야 각국과 백제, 신라, 왜와 긴밀히 교류하며 ‘다국적 유물’을 남겼다는 사실. 어쨌거나 송학동 고분은 소가야의 역사적 실체를 증언하는 유적이다.

■고성 사람들의 일상 공간

고성 송학동 고분군은 낯선 듯 친근한 공간이다. 무덤이지만 위압적이지 않고 무섭지도 않다. 야트막한 구릉지는 소가야 왕족이 춤추는 기녀와 놀았다고 하여 무기산(舞妓山)이라 불린다. 규모가 큰 무기산 자락의 고분 8기는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에 조성된 소가야의 왕묘거나 유력자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고성 사람들, 특히 송학동 주민들은 이곳을 송학동 고분공원이라 부른다. 송학동에서 만난 60대 주민은 “여기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은 이 고분을 뒷동산 삼아 뛰어놀았어. 해가 지고 저녁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면 엄마가 ‘밥 먹어라!’하고 부르지. 그러면 뿔뿔이 흩어져 집으로 갔다가 다음날 또 놀았지”라며 유년기 추억을 들추었다. 어떤 주민은 고분 산책로에서 맨발 걷기를 즐기기도 했다.

송학동 고분은 낮에는 비현실적 공간으로 비치지만, 밤이 되면 야경이 연출돼 판타스틱 공간으로 바뀐다. 젊은이들은 고분의 야경을 포토존 삼아 SNS에 인생샷을 올리기도 한다.

우리가 찾는 소가야는 사라진 듯 나타나 일상으로 다가와 있었다. 그 일상의 주인공은 무덤 속 왕이나 왕비, 지배자가 아닌 지역주민들이었다.

박창희 경성대 교수(‘살아있는 가야사 이야기’ 저자)

※ 공동기획: 상지건축, 국제신문,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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