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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뒤 ‘소득절벽’…5명 중 4명 “국민연금 외 노후준비 없다”

우리의 노후 안녕할까요…올드 푸어 다이어리 <1> 빈곤하게 맞는 100세 시대

  • 권용휘 기자 real@kookje.co.kr, 신심범 기자
  •  |   입력 : 2024-03-24 19:30:03
  •  |   본지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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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만4000명. 내년에 법적으로 노인이 되는 부산 시민의 숫자다. 국제신문이 통계청 자료를 토대로 추출한 결과다. 부산 전체 인구 320만9500명 중 24.7%로 무려 넷 중 하나. 1차 베이비붐 세대인 이른바 ‘58년 개띠’가 대거 은퇴하면서 나타난 형상이다. 1968년에 태어나는 2차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기 시작하는 2035년에는 101만9000명으로 셋 중 하나인 35.3%, 2050년에는 43.6%까지 증가한다. 100세시대에 맞춰 정년을 70대 중반까지 연장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청년 일자리를 뺏는 부작용 탓에 세대갈등 문제가 불거질 수 있어 대안으로 보기는 힘들다. 국민연금도 앞으로 제기능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제신문은 현재 노인 세대가 처한 현실을 살펴보고, 우리 사회가 100세 시대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 공장일 50년에도 퇴직금 없어
- 남편 암투병에 빚쟁이 전락도
- 노후 대책 없어 빈곤 수렁으로

- 이미 은퇴 부산시민 70명 설문
- “2억 이상 처분가능 자산” 11명
- “노인일자리 만족한다” 21%뿐

열 살 조금 넘었을 때 아버지 손에 이끌려서 부산 어딘가 주물공장에 갔다. 매캐한 쇳가루 냄새와 먼지,무엇보다 시뻘건 쇠물이 정말 진저리가 나도록 무서웠다. 일이 시작되는 아침이 불안하고 우울했고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 출근하는 날도 많았다. 도망치려고 생각도 해봤지만 갈 곳이 없었다. 촌구석에서 한글도 못 배운 까막눈이라 그 흔한 버스 타는 법도 몰랐다. 일을 그만두고 싶어도 배곯고 학교도 못 다닐 동생들을 생각하면 ‘나는 가장이다. 동생들을 위해서 이겨낼 수 있다’고 최면을 걸었다.

40년 넘게 해온 일이지만 매일 아침에 눈을 뜨고 대문을 열고 차를 타고 가서 공장 문을 여는 그 과정이 정말이지 까무러치게 싫었다. 틀에 쇳물을 붓고 시뻘겋게 달아오른 쇠를 뜯어내는 그 위험한 일을 하면서도 소주와 담배를 입에 물고 살았다. 큰 사고를 당한 동료도 여럿 봤는데 ‘끊어야지’ 하면서도 안 됐다. 맨 정신으로 일할 수는 없으니까. 산업재해로 죽는 사람도 많다고 하는데 그렇게 일하면서도 안 죽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여름철이면 죽을 맛이다. 냉방은커녕 환기도 안 되는 곳에서 쇳물을 들이붓다가 머리가 아찔해서 기절할 뻔한 적도 여러 번. 그래서 내 나이 예순하고도 오월 첫째 날 여름이 시작하기 직전에 일을 그만뒀다.

■평생 일했지만 연금도 퇴직금도 없다

부산시가 고령화 시대를 맞아 시니어에게 취업 기회와 정보를 제공하고자 마련한 노인 일자리 박람회에서 노인들이 채용정보를 살펴 보고 있다. 국제신문DB
65세인 취업준비생 김대훈(가명) 씨의 이야기다. 김 씨는 50년 넘게 부산 울산 경남 지역 주물공장에서 일하다 5년 전에 일을 그만두었고 이후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있다. 그는 국제신문과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퇴직 후에는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마련한 적이 없다고 한다. 가끔 주물공장에서 하루나 이틀 일을 거들어주고 일당을 받은 적도 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쇳물을 틀이 아닌 발등에 끼얹었기 때문이다. 이후 제대로 된 치료도 못 받아 다리를 절게 됐다.

그럼에도 김 씨는 자신의 사정을 주변에 거의 알리지 않았다. 친한 친구 몇몇 정도다. 아내나 자녀는 애초에 없고 형제는 연락이 끊기지 오래다. 김 씨는 “국민연금은 물론 그 흔한 퇴직금도 없었다. ‘주변에서 모아둔 돈이 정말 하나도 없느냐? 그동안 뭐 했느냐’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내 인생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평생 물질하며 살아온 75세 김종학(부산 기장군) 씨는 현역이다. 과거부터 기장지역은 미역으로 유명해 마을사람 대부분이 한평생 어업에 종사했다. 게다가 1968년 미역·다시마 종묘 개발로 국가로부터 포상까지 받은 친형을 둔 덕에, 일찌감치 종묘 생산·가공 공장을 운영하게 됐다. 잘 나갈 때는 월평균 500만 원 정도 벌었으니 당시 웬만한 대기업 월급쟁이보다 훨씬 잘 벌었다. 생활비를 뺀 나머지 금액 대부분은 양식장을 키우는 데 재투자했었다. 지금도 사업에 매진하는 통에 땅을 사들이거나 연금에 투자하는 등 노후 준비는 못했다.

그의 현재 월 수입은 고작 100만 원 안팎. 미역은 겨울의 찬 바다에서 자란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재배 환경이 바뀌어 바다 수온이 불규칙해졌다. 인근 고리원전에서 나온 온배수(원자로를 식힌 뒤 바다로 배출되는 따뜻한 바닷물)도 문제다. 김 씨는 “미역을 좀 오래 길러야 수출도 할 수가 있는데, 지금은 빨리 채취하지 않으면 미역에 ‘바늘구멍병’에 걸려 수산물 검사소에서 불합격되는 바람에 공장 운영도 어렵다”고 했다.

■은퇴 준비는 연금·주택이 전부

내년에는 부산 인구 넷 중 한 명이지만 은퇴 이후를 제대로 준비하는 이들은 드물다. 본지가 이미 은퇴한 부산시민 70명을 대상으로 각각 실시한 대면·전화를 통한 심층 인터뷰 결과에 따르면 국민연금 외에 따로 노후 준비를 하거나 했다는 이들은 각각 14명에 그쳤다. 노후 준비를 안 하는 이유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봉급이 많아 두둑하게 연금을 받거나 자산이 많은 경우 별다른 필요를 못 느꼈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IMF 시기에 직장을 잃고 그 이후 자산을 축적할 수도 없었다. 이 때문에 연금이나 거주하는 주택 외에 2억 원이 넘는 주식 저축 부동산 등 처분할 만한 자산이 있다고 대답한 이들은 11명에 그쳤다.

정부의 노인 일자리 정책에 대한 인식 차이도 드러났다. ‘노인일자리 정책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에 21%만이 ‘만족한다’고 답했고 45%는 ‘불만족하거나 매우 불만족스럽다’고 밝혔다. 노인일자리로 기대할 수 있는 소득이 적다 보니 자신이 경제적으로 중상이나 상이라고 생각하는 노인은 부정적으로 봤으며, 하층에 해당하는 이들은 노인일자리 때문에 기초노령연금이 줄거나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할 수 있어서 매우 부정적으로 봤다. 다만 월 소득이 100만 원 안팎인 노인에게는 일자리 만족도가 높았다. 적은 시간 가볍게 일하면서도 최저시급 이상 벌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같은 노인들 사이에도 처지나 형편에 따라 정부 제공 노인자리에 대한 인식 차이가 크다는 의미다.

■“국민연금 소득 대체율 올려야”

현재 한참 활동하는 30·40대, 그리고 50대 초반은 이들 베이비부머 세대보다 사정이 나을까. 아이 하나를 둔 정영우(43·부산 동래구) 씨 부부는 맞벌이지만 노후 준비는 엄두도 못 낸다. 정 씨는 “둘이 벌어도 생활비와 교육비, 그리고 얼마 전에 분양 받은 아파트 대출금을 갚기도 힘들다”며 “아이가 중학교에만 가면 교육비가 치솟을 예정이라 퇴근 후 배달일이라도 해야 하나 고민”이라고 말했다.

이들 세대는 천정부지로 치솟은 주거비와 교육비를 감당해야 해 노후 자금을 마련하기 어렵다. 국민연금이 유일한 노후 대책이 될 수 있지만 소득 대체율은 점차 떨어지고 개시 시기도 점점 늦춰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책에 변화가 없다면 청년들은 더 팍팍해진 노후를 견뎌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당장 노인일자리 소득을 높이는 한편, 연금 재정에 국고를 투입하는 형태로 국민연금 소득 대체율을 높여야 한다고 제안한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 자문단으로 참여하는 동아대 남찬섭(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제 은퇴를 시작하거나 은퇴를 앞둔 현재 60대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이 높은 시기에 연금을 부었기 때문에 상당수는 국민연금 위주로 노후를 보낼 수 있다”며 “가장 심각한 문제는 지금 40대 중반 이하 세대다. 국민연금을 이대로 두면 소득대체율이 계속 낮아져 제 기능을 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영상=김채호·김태훈·김진철 PD

※제작지원 : BNK 부산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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