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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랑방이던 목욕탕, ‘때돈’ 번다며 부러움 샀던 시절

목욕탕 엘레지 <1> 마흔 살 목욕탕의 하루

  • 글·사진= 김태훈 PD
  •  |   입력 : 2024-06-30 18:36:20
  •  |   본지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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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디딜 틈 없이 붐비던 목욕탕. 목욕문화가 변화하며 점차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한국의 목욕문화와 애환을 10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주).


- 일본인이 동래온천 개발한 후
- 한국 목욕문화의 본산 된 부산
- 변변한 목욕시설 없던 주거환경
- 수많은 시민 위생 책임진 시설

- 불과 20여 년 전 목욕탕 황금기
- 아파트 보편화로 급격히 저물어
- 2004년 폐업 건수가 개업 추월
- 팬데믹 때 부산 117곳 문 닫아

- 노후주택·취약계층 주민에겐
- 기본적인 위생 위협받는 현실

새벽 4시. 아침 해보다 먼저 셔터가 오른다. 굳게 닫힌 문을 열고 영업을 준비한다. 불을 밝히자 탕마다 맑은 물이 가득히 찰랑인다. 한때는 사람이 새 물을 받아야 했다. 9t짜리 욕탕에 직접 물을 부어 1시간 30분가량 물갈이 작업을 해줬다. 최근에는 자동화 시스템이 갖춰지면서 옛말이 됐다. 물 상태를 점검하고 지난밤 청소했던 욕탕 내부와 탈의실을 다시 한번 정리한다. 3층 남탕과 2층 여탕을 확인하는 것으로 준비는 끝난다.
리모델링 공사를 하기 전 봉래탕의 내부. 봉래탕 제공
새벽 4시 50분. 카운터로 발길을 돌린다. 영업을 시작하려면 아직 10여 분 남았지만, 입구에는 벌써 2, 3명의 단골이 줄을 섰다. 목욕탕의 ‘핫 타임’은 이때부터 점심시간까지다.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장·노년층이 손님의 대부분이다.

오후 7시. ‘영업 종료’ 팻말을 출입문에 내걸고 청소를 시작한다. 남탕과 여탕, 탈의실 구석구석을 청소하려면 2~3시간은 족히 걸린다. 정리가 끝나고 밤 9시가 되면 동네목욕탕의 긴 하루가 비로소 끝을 맺는다.

부산 영도구 봉래동의 대중목욕탕 ‘봉래탕’ 이영훈(51) 대표의 하루다. 봉래탕은 38년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1986년 부모님이 개업한 이곳을 5년 전 이 대표가 물려받았다. 혼자서 목욕탕을 운영하는 지금 그의 근무시간은 하루 12시간을 훌쩍 넘긴다. “자는 시간을 포함해도 집에 있는 시간보다 목욕탕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길어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동네 목욕탕은 가족들이 다 같이 힘을 합쳐서 운영하는 것이 대부분이죠.”

이날 새벽부터 받은 손님은 100명 정도. 이마저 비수기인 여름에는 찾는 손님이 뚝 떨어진다. 해마다 전기·기름값이나 물값이 무섭게 뛰어오르지만, 이 대표는 봉래탕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때돈’ 벌었던 그 시절

캐비닛 위에 목욕바구니가 놓여 있다. 김태훈PD
20년 전만 해도 매일 욕탕은 손님으로 ‘몸 디딜 틈’이 없었다. 명절에는 일가족 모두가 목욕탕을 찾아 때를 밀었다. 이제 ‘목욕탕 집 가족은 부자’ 소리는 옛말이 됐다. 이 대표는 “초등학교 시절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 아버지가 월급이 30만 원이었다. 당시로선 정말 많은 금액이었다. 어느 날 목욕탕 매출을 정산하던 아버지가 ‘하루 매출 30만 원을 넘겼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며 “주변으로부터 너희 집은 그야말로 ‘때돈’을 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곤 했다”며 웃었다. 당시 목욕비는 1000원에 미치지 못했다.

지금은 버티는 게 용한 지경이다. 이런 사정은 부산온천의 상징 ‘동래온천’이라고 다르지 않다. 2대째 동래구 온천장에서 만수온천(1967년 개업)을 운영하는 이기희(62) 한국온천협회 동래지회장은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목욕탕 건너 목욕탕이 있을 정도였다”며 “그런데도 옷장이 부족할 정도로 손님이 많아서 소쿠리에 옷을 대충 넣어둔 채 탕에 들어가곤 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목욕문화의 본가 ‘부산’

봉래탕 이영훈 대표가 손님을 맞고 있다. 김진철PD
부산은 대중목욕탕이 가장 먼저 받아들여진 지역이다. 그 배경에는 지역의 역사와 지리적 특징, 산업구조가 깔려있다. 1898년, 입탕식 목욕 문화를 즐기던 일본인들에 의해 동래온천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1903년에는 일본인 전용 여관인 ‘광월루’가 세워지고, 4년 뒤 현 농심호텔의 전신인 ‘봉래관’이 세워졌다. 동래온천의 수요가 늘어나자 1915년 부산진에서 동래온천을 잇는 전차가 부설되기도 했다.

이후 동래온천은 전국적으로 입소문을 탔다. 일본인들조차 이곳에서 목욕을 하는 게 소원이었다. 2007년부터 목욕 시설에 관한 연구를 이어오고 있는 동명대 이승헌(실내건축학과) 교수는 “왜관이 있던 부산은 일본인들의 거주와 왕래가 활발했다. 자연스럽게 일본의 입탕식 문화를 빠르게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일본인이 물러간 뒤에도 온탕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전국 피란민이 부산으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해안이나 산자락은 물론 공동묘지 위에도 집을 지었고, 곳곳에 판자촌이 형성됐다. 당연히 제대로 된 목욕시설은 없었다. 1949년 47만여 명이었던 부산 인구는 1955년 100만여 명에 이르렀다. 1970년대 들어서는 신발·섬유·조선 및 수산업 종사자가 대거 유입되며 300만 명으로 폭증했다. 하지만 인프라가 갖춰질 겨를 없이 팽창한 도심은 거주환경이 열악했다. 노동자를 위한 대중목욕시설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행정안전부 목욕장업 현황에 따르면 부산의 인허가 건수는 ▷1960년대 78건 ▷1970년대 202건 ▷1980년대 578건으로 대폭 증가했다.

■온 가족 찾던 곳… 이젠 추억 속으로

영원할 것만 같던 황금기는 2004년부터 저물기 시작했다. 그 해 전국 639곳이 새롭게 문을 열었지만 726곳이 문을 닫으며 처음으로 폐업 건수가 인허가 건수를 추월했다. 직전해인 2003년만 해도 전국에 1442개의 찜질·목욕시설이 문을 열며 집계 이래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부산에서도 87곳이 개업했다. 영업 장은 약 1만 곳에 달했다. 이 교수는 “2000년대부터 아파트 문화가 더욱 보편화됐고, 집마다 욕실이 정착돼 목욕탕이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저물어가던 목욕장업에 치명타를 가한 건 2020년 코로나19였다. 행정안전부 ‘2023 전국 온천현황’에 따르면 팬데믹 직전인 2019년 6381만 명에 육박하던 전국 연간 온천객은 ▷2020년 4219만 명 ▷2021년 3435만 명 ▷2022년 4120만 명으로 급감했다. 같은 기간 폐업한 곳은 무려 1073곳(▷2020년 341곳 ▷2021년 371곳 ▷2022년 361곳). 부산에서만 117개 업장이 문을 닫았다.

팬데믹 사태가 끝을 맺으며 한숨 돌리나 싶었던 목욕장업은 공공요금 인상으로 다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대표는 “많아야 300만 원 선이었던 연료비가 이번 달에는 400만 원이 훌쩍 넘게 나왔다”며 “팬데믹 이후 발길을 돌린 손님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 상황에 난방비가 올라 많은 목욕탕이 부담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에도 전국에서 291곳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동안 목욕탕은 온 가족이 찾는 장소에서 소수의 어른들이 들리는 곳으로 바뀌었다. 부모님과 함께 등을 밀던 ‘가족 목욕 문화’도 젊은 층에게는 낯선 것이 돼가고 있다. 이 대표는 “부모님이 운영하실 땐 가족 손님이 많았는데, 요즘은 혼자 방문하시는 장·노년층 손님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어린이 손님이 찾아오는 날이면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말했다.

■줄폐업에 신음하는 취약계층

동네목욕탕 폐업은 단순히 ‘사라진 문화에 대한 향수’ 정도의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목욕시설이 없는 노후 주택에 거주하는 주민에게 기본적인 위생을 보장하기 위한 필수시설이기 때문이다. 문 닫는 목욕탕이 늘어날수록 취약계층에게도 타격이 가해지는 셈이다.

지난 3월 기준 부산의 업장은 687곳. 영업 중으로 분류되더라도 실제로는 운영하지 않는 곳도 있다. 지난해에는 남구 문현2동의 유일한 대중목욕탕이 문을 닫으며, 고령층 주민이 왕복 10차로를 건너 옆 동네로 원정 목욕을 다닌다는 소식이 전해져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다.

부산가톨릭대 박미진(노인복지보건학과) 교수는 “대중목욕탕은 취약계층의 위생을 위한 필수시설일 뿐만 아니라 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창구 역할을 한다. 목욕탕과 취약계층의 상생을 위해 공공목욕탕 건립과 목욕바우처 사업 확대 등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제작지원 : BNK 금융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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