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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토지 준다해서 황무지 일궜는데…그들은 쫓겨났다

집단수용 디아스포라 <4> 부랑인 노예-자립갱생 실체

  • 신심범 기자 mets@kookje.co.kr
  •  |   입력 : 2024-07-22 18:58:31
  •  |   본지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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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립 명분 ‘금성개척단’

- 1961년 부산서 붙잡은 부랑인들
- 금정산성 일대 불모지 개간 투입
- 주택비용 주고 합동 결혼도 시켜
- 가꿔진 땅, 1977년 민간에 팔려
- 따지던 부랑인 푼돈 받고 내몰려

# 영화숙도 개간사업 진행

- 1964년 신평 갈대밭 하천부지
- 농지 개척으로 자활의 장 계획
- 10대 마저도 노역 현장에 투입
- 市 행정처리 미흡에 허가 불발
- 결과적으로 불법 매립지 된 셈
<사진설명: 부산 합심원 자활대 발족식. 넝마주이 등 부랑아로 지목된 청년들이 제복을 입고 시내를 행진하고 있다. 현수막에는 ‘어제는 우름(울음)의 부랑아 오늘은 웃음의 재건의 일꾼’이라 쓰였다. 당시 부산 시내에서 단속된 부랑아 중 일부가 사하구 괴정동에 자리했던 외국인수용소에 강제로 모였다가, 이들을 개척단 격으로 꾸린 것이 합심원 자활대다. 오른쪽 사진은 금정산성 뒤편 산비탈에 농토를 개간 중인 금성개척단. 두 곳은 1960년대 부산지역의 대표적인 부랑인 정착사업단으로 알려졌다. 대한뉴스 1962년 8월 3일 자 방송 캡처·사진으로 보는 광복 60년사>

1960년대 박정희 정부의 국가 의제는 ‘재건’이었다. 무너진 나라를 다시 세우겠다며 5·16을 일으켰고, 집권 이후에도 국가 재건의 기치를 앞세웠다. 당시 정권이 지목한 ‘무너진 것’은 범주가 광범위했다. 경제나 안보와 같은 거시적 영역에 국한되지 않았다. 국민 하나하나가 성실한 산업역군으로 거듭나는 일에 ‘총력을 경주’하기를 요구했다.

부랑인이나 걸인, 양아치, 불량배 등으로 지칭된 이들은 자연스럽게 재건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떳떳하지 못한 일에 종사하거나 빌어먹었고, 때로는 소동을 일으키니 사회 명랑을 해친다고 지목됐다. 국가가 실행한 재건 방식은 수거와 분리, 그리고 강제노역이었다. 국가는 이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한 뒤 특정 공간에 구속했다. 이 중에서도 어른 만큼 일할 수 있는 이들은 따로 선별해 노역에 동원했다. 자립 의욕을 키워 자립갱생의 틀을 마련해준다는 명분이 뒤따랐다. 이렇게 국가에 의해 수집된 부랑인들이 전국의 황무지로 보내졌다.

그 시절 부산은 재건 사업의 선도를 자처했다. 5·16 발발로부터 불과 2달 뒤인 1961년 7월, ‘금성개척단’을 꾸려 부산 금정산성 일대 불모지를 개간한다는 계획이 세워졌다. 이후 시내 거리에서 붙잡아 온 부랑인들로 발단식을 가졌다. 국내 대표적 강제노역 사건이 자행된 ‘서산개척단’은 이로부터 두 달 뒤 발족했다. 이듬해 사하구(당시 서구) 장림동에는 재단법인 영화숙이 부산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한 성인 부랑인 수용시설 ‘재생원’이 들어섰다. 시는 이들에게도 자립의 터전을 마련해주겠다며 인근 갈대밭을 개척하도록 했다.

국가는 이들에게 자립갱생의 기반을 약속했다. 일궈진 땅을 개인에게 나눠줄 테니 정착하라고 했다. 자립주택을 짓는 비용을 대주고, 그곳에서 부부의 연도 맺게 했다. 일방적 수용과 구속적 생활, 그리고 강제노역의 대가였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개척단 단원들은 1975년 전후 상당수가 자신들이 가꾼 땅에서 쫓겨났다. 재생원 수용인들 역시 땅 한 마지기 얻어보지 못한 채 흩어졌다.

■국가의 약속 ‘자립갱생 선도’

‘부산시를 위시한 도내 각처에 방황하는 부랑자와 양아치를 집단수용해 유휴지를 개간시키는 동시, 주축농업을 형성하는 영농지대를 구성해 정착 안주시킴으로써 자립갱생의 직업보도를 선도코저 함.’1961년 7월 ‘부랑자수용에 따른 개간계획서’ 첫 장이다. 직할시 승격 전 부산시의 상급 행정기관이던 경상남도가 생산했다. 금정산성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정재국(67) 씨가 오랫동안 보관한 서류 중 하나다. 그는 금성개척단 2대 단장 박충근 씨의 조카사위로, 박 단장의 부인 최철자(84) 씨와 함께 이곳에서 산다. 그에게는 금성개척단의 옛 모습을 짐작할 만한 각종 서류·지도·사진이 가득하다. 개간계획서를 포함해 1961년 8월 금성개척단이 작성한 ‘사업계획서’나 ‘자활정착 구호 주택’과 관련해 부산진구 등과 주고받은 기안서 등이다.

개간계획서에는 당시 경남도가 구상한 부랑인 자립갱생 방안이 담겼다. 경남도는 부산 부근 동래군 구포 금정산성 일대를 제1지구, 마산 부근 창원군 북면(현 창원시 북면) 외감마을 일대를 제2지구(재건소년개척단 운영)로 정해 황무지를 개간하려 했다. 제1지구를 맡은 것이 바로 금성개척단이다. 재단법인 ‘대한갱생원’ 산하로 편성됐다. 대한갱생원은 부산지검 검사장 출신 소진섭 씨가 설립한 후생시설로, 당대 여러 향토기업을 후원자로 뒀다. 개간예정지 약 400정보(120만 평) 중 202정보(60만 평)가 이들 땅이었다.

단원 통제 방식은 여느 집단수용시설과 다르지 않았다. 특히 공간 구성이나 관리자 지정 방식은 서울시립아동보호소의 체계와 닮았다. 개척단은 5개의 통(統)으로 구성됐다. 각 통 아래에는 반(班)을 3개씩 총 15반을 뒀다. 한 반은 10명 내외로 채워졌다. 각 통은 통장과 부통장이 관리했으며 각 반에서도 반장을 뽑았다. 통장은 개척단 본부의 직원이 맡았으나 부통장과 반장은 단원 중에서 선정했다. 노역은 통·반 단위로 이뤄졌으며, 단원의 이탈 방지를 위해 자체 경비를 섰다.

개척단 운영은 정착 전부터 자립에 맡겨졌다. 경남도는 사업이 시작한 1961년 8월로부터 1년간만 비용을 보조했다. 양곡은 보리쌀, 밀가루 등이 1인당 하루 5홉씩 지급됐다. 그 뒤부터는 개척단 자체 수입으로 운영됐다. 작물은 1년간 공동소유, 그 뒤 5년은 대한갱생원에 2할 범위에서 납부하고 6년 차부터는 개인이 갖기로 했다. 작물과 함께 닭이나 돼지, 소, 산양(염소)을 기르는 목축 산업도 병행됐다. 교회 1곳과 외양간 2곳, 저수지 3곳, 양어장 1곳, 발전소 1곳도 함께 지어졌다. 현재 마을에서 금정산성 남문에 이르는 임도 역시 개척단이 넓혔다.

1963년 3월부터는 단원의 영구 정착을 위한 구호주택(벽돌 기와집 20동·사진) 착공에 들어갔다. 같은 해 11월에는 대청장 예식장에서 20쌍의 합동결혼식도 열렸다. 개척단 초기 인원은 170여 명이었으나, 부랑인 단속 등 ‘충원’이 꾸준히 이뤄져 약 300명까지 불어났다.

■‘재건의 꿈’에 부쳐진 계고장

기존 산성마을 사람들 눈에 개척단의 삶은 무척 어려웠다. 온 국민이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이들은 유독 못 먹고, 못 입고 살았다. 기존 마을 주민과는 왕래가 적었다. 동정심에 밥을 지어주는 주민도 있었지만 부랑아 출신인 이들을 경계하는 이 역시 적지 않았다. 실제 야밤에 민가로 넘어와 장독을 훔치거나, 동네 꼬마를 겁주는 등 불화를 일으킬 때도 있었다고 한다. 금성동 주민 김완태(66) 씨는 “생활이 피폐했고, 먹고살기 바빠 보였다. 그래도 규율이 있어서 도둑맞거나 할 때 그쪽 리더(단장)에게 항의하면 한동안은 잠잠했다”고 회상했다.

개척단 안에서도 점차 불화와 갈등이 빚어졌다. 개척단에서의 생활은 대부분 조를 짜서 이뤄졌다. 바깥출입을 했다가 외부인과 마찰을 빚는 등 규율에 어긋나는 일이 생기면 폭력으로 단죄했다. 합동결혼식으로 맺어진 급조된 인연들은 하루가 멀다고 싸웠다. 풍진 인생을 살아서인지 명도 길지 못했다. 박 단장 부인 최 씨는 “시내에서 자유롭게 살던 사람들이 여기 정착하며 사니 구속감을 느꼈던 것 같다. 채석한 돌을 내다 팔고, 저수지에서 붕어나 잉어 잡아 팔고, 염소 기르던 정착민들도 점점 하나둘씩 흩어졌다”고 말했다.

우여곡절 속에서도 마을에 남은 개척단원들은 머지않아 뒤통수를 맞았다. 약속의 땅 ‘자립 터전’이 1977년 지역 민간 기업가에게 팔려버린 것이다. ‘땅을 판 돈으로 단원들의 뒷일을 챙기겠다’며 개척지를 매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성개척단 ‘사업계획서’(1961년 8월)를 보면 개간지는 1963년 분배된 뒤 1968년 대한갱생원에서 각 단원으로 명의가 옮겨져야 했다. 그러나 분배는 1975년이 될 때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같은 해 박 단장 역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행정 공백이 발생했다.

단원들은 이 황당한 사태를 바로 잡으려 했다. 대한갱생원에 왜 단원 동의 없이 땅을 팔았느냐고 따졌다. 그러나 결국 대부분이 마을을 떠나야만 했다. 최 씨는 “폭력단이 낫과 칼을 들고 밤낮으로 ‘마을을 나가라’고 위협했다. 결국 40만~80만 원씩 받고 쫓겨났다. 1979년에는 동래구(관할 지자체)가 자립주택이 불법이라며 철거 계고장을 보내 애먹었다”고 전했다. 마을주민들 또한 개척단의 집이 별안간 죄다 철거됐다고 기억한다. 오늘날 마을에 거주하는 단원 가족은 최 씨 집을 포함해 두 가구뿐이다.

오랜 다툼 끝에 결국 최 씨 집안은 2001년 공시지가대로 값을 지불하고 땅을 매입해야 했다. 정 씨가 옛 기록을 보관해야 한다고 느낀 계기다. 국가에 의해 모였고, 헐값 노동 끝에 얻은 땅이었다. 분명 자활의 터전으로서 개인에게 나눠주기로 한 땅이었다. 그런데도 국가는 개척단의 땅이 개인에게 넘어갈 때 아무런 제재도 하지 않았다. 결국 상당수가 정착에 실패했고, 강제로 떠돌이가 됐다.
대한갱생원 금성개척단의 사업계획서 중 ‘(10)개간농지의 처리’에는 ‘개간농지는 개인에게 분배. 5년 후에는 개인별로 소유권을 완전이전하되 이는 당국의 지시를 받는다’고 기재됐다. 그러나 개간농지는 단원에게 불하되지 못했으며, 토지 소유주인 대한갱생원에 의해 지역 실업가에게 매매됐다. 정재국 씨 제공
■“갈대 채찍질로 노예 부리듯”

부산시의 재건 사업은 금성개척단으로 그치지 않았다. 재차 부랑아를 부려 ‘자립 터전’을 조성하고자 했다. 1964년 7월 시는 사하구 신평동 일대 갈대밭 하천부지 14만 평을 농지로 개척해 자활의 장으로 꾸리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당시 시장은 훗날 ‘불도저 시장’으로 불린 김현옥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육군사관학교 후배이자 5·16에 동참해 당시 부산시정을 접수한 이다. 갈대밭 매립 사업을 두고 김 시장은 “착수 2년 내에 시에 산재하는 약 2000명의 걸인을 모조리 여기에 정착시켜 보겠다”고 자신했다.

이 계획은 사실상 재생원을 위탁 운영한 재단법인 영화숙이 세운 것이었다. 영화숙은 1963년 9월 20일 해당 하천부지를 부랑아 자활 정착 사업으로 개척하겠다고 신평동 주민을 설득해 동의를 얻었다. 사흘 뒤인 같은 달 23일엔 영남국토건설국에 이 하천부지를 노숙자·걸인 정착사업을 위한 농지로 개간하겠다는 취지의 허가 요청을 보냈다. 이와 동시에 김 시장에게는 영남국토건설국에 이 사업을 추천해 줄 것을 의뢰했다. 실제 시는 같은 달 27일 보건사회부 명의로 해당 신청을 추천했다.

애초 매립에 동원되는 재생원 수용인은 ‘가동 능력이 있는 19세 이상의 무의무탁한 부랑아’로 한정됐다. 그러나 실상 재생원에는 어린이·성인 가릴 것 없이 마구잡이 수용이 이뤄졌다. 중학교 들어갈 나이의 아이도 노역 현장에 투입했다.

1966년 12살의 나이에 재생원으로 끌려간 송태호(70) 씨가 그랬다. 그는 “신평동 쓰레기장에서 연탄재나 음식물 쓰레기를 담아 갈대밭으로 싣고 가서 평탄화 작업을 했다. 땅을 넓히려면 쓰레기가 강으로 넘치면 안 되니까 강가에 둑을 쌓는 작업을 같이 한다”며 “옷이 한 벌밖에 없으니 강가에서 작업하려면 옷을 홀딱 벗어야 했다. 고참이 갈대를 자르면 우리가 뚝뚝 꺾어 얹혔는데 속도가 느리면 노예처럼, 갈대를 회초리 삼아 거침없이 쳤다. 정말 죽어버리거나 도망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다. 땅 준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다”고 증언했다.

■수면 아래로 파묻힌 ‘자활 터전’

그런데 해당 사업은 ‘불법’이었다. 농지 조성용 매립 허가 없이 진행된 것이다. 영화숙의 신청을 받은 국토건설국은 이 하천을 농지로 조성하려면 농림부의 허가가 필요한 데다, 이미 이곳을 두고 먼저 접수된 신청들이 존재한다고 통보했다. 영화숙은 재차 농림부에 부랑자 자활 정착 사업 목적의 개간 청원서를 냈다. 그러자 농림부는 농경지 조성법에 의한 개간이 아닌 일개 사회사업에 불과하다며 부산시로 청원을 이송했다. 이렇게 약 10개월간 서류가 공회전하는 동안, 지역의 한 기업체가 계획 부지 일부를 포함한 땅의 공장부지 조성을 먼저 승인받았다.

상황이 이런데도 시는 영화숙의 계획을 승인했다. 이미 부랑자의 자립갱생을 위해 정착민 100명에게 1인당 1000평씩(총 10만 평)을 주기로 약속한 상황이었다. 시는 부랴부랴 건설부에 공장부지 일부의 매립 승인을 취소해달라고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영화숙은 송 씨와 같은 수용인을 동원, 1963년부터 1971년까지 8년에 걸쳐 제방을 구축하고 매립용 쓰레기를 투입해 3만8242평을 농지로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불법 매립지였다.

‘자립갱생의 장’이 만들어지는 동안 새 부산시장이 부임했다. 하천부지 도시계획도 공업단지 조성으로 전환했다. 당시 시는 해당 부지에 직접 매립 면허를 신청해 공업단지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승인받았다. 재생원 수용자들이 개척한 땅도 1974년 5월에 사들였다. 영화숙은 부산시장의 추천을 받아 사업을 벌였다가 낭패를 봤으니 보상금을 달라며 1978년 시에 소송을 걸었다. 그러나 법원은 하천부지는 국유지므로 그 관리권이 지자체인 시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고 청구를 기각했다. 결국 땅을 일군 재생원 수용인은 약속받은 땅의 한 뼘도 얻지 못했다.

영상= 박세종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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