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일본스러움’이 통했다…산골 료칸, 역발상으로 만실의 기적

목욕탕 엘레지 <9> ‘온천 왕국’ 오이타현

  • 글= 김태훈 PD
  •  |   입력 : 2024-08-25 18:34:18
  •  |   본지 11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원천 5000여 개 日 최대 온천지
- 벳푸·유후인 등 年 449만명 숙박

- 유노히라 마을은 명성 잃고 쇠락
- 50년 료칸 ‘야마시로야’도 타격
- 외국인 타깃으로 ‘전통미’ 어필
- 20대 여성 등 젊은 층 문전성시

- 벳푸는 치유관광으로 영역 확장
- 우리도 ‘한국스러움’ 고민해야

‘온천현 오이타’. 일본 오이타현의 별명이다. 한국인에게는 온천 관광지 ‘벳푸’와 ‘유후인’으로 잘 알려졌다. 일본에서 가장 많은 원천 수(5000여 개)와 용출량을 자랑한다. 이름난 관광지는 대부분 온천지이기 때문에, 온천에 몸을 담그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일본 오이타현 유후시 유노히라 마을에 위치한 료칸(일본식 온천여관) ‘야마시로야의 내부 온천탕과 전경. 5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곳은 연일 외국인 관광객으로 만실을 이룬다. 김태훈 PD
연일 푹푹 찌는 무더위에도 오이타현의 온천지는 북새통을 이룬다. 20, 30대 관광객들이 후끈한 온천 증기를 쐬며 족욕탕에 발을 담근다. 그야말로 ‘이열치열’이다. 료칸(일본식 온천여관)이 즐비한 거리에선 외국인들이 유카타(일본 전통의상)를 입은 채 기념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지난해 449만 명의 숙박객(당일치기 제외)이 오이타현을 찾았다. 팬데믹 여파를 잊은 듯 2019년에 견줘 90% 이상 회복된 수치다.

반면 동래온천은 다소 한산한 모습이다. 나이가 지긋한 동네주민 서너 명이 노천 족욕탕에 발을 담그고 갈 뿐이다. 목욕객 역시 50, 60대가 대부분. 당연히 외국인은 더 찾아보기 힘들다. 해운대구의 온천도 사정은 비슷하다. 해수욕장을 찾은 관광객의 발길이 ‘K-찜질방’까지 드문드문 이어지지만, 온천탕을 찾는 목욕객은 주로 50, 60대 주민이다.

부산에서 오이타현으로 가려면 비행편으로 후쿠오카 공항까지 이동해 2시간 이상 고속버스나 열차를 타야 한다. 대기 시간까지 감안하면 한나절은 훌쩍 흐른다. 그런데도 이곳을 찾는 한국인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오이타현을 찾은 외국인 숙박객(79만여 명)의 절반 이상(42만여 명)은 한국인이었다. 팬데믹 이전 2019년(34만여 명)보다도 늘었다. 지루한 건 못 참는 한국인이 국내의 온천을 마다하고 먼 곳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을 구하고자 ‘온천 왕국’ 일본 오이타현으로 향했다.

■시골 료칸의 ‘만실 비결’

50년 역사를 자랑하는 료칸 ‘야마시로야’는 하룻밤 묵으려는 외국인 손님으로 늘 만실을 이룬다. 교통이 불편한 시골에 자리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꽤나 신기하다. 소재지는 인기 관광지 유후인에서 15㎞ 정도 떨어진 ‘유노히라’. 관광객에겐 다소 생소한 마을이다. 이곳까지 닿는 도로는 차 한 두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험한 산길이다. 열차도 적어 1~2시간에 한 편 꼴로 운행한다. 이 때문에 야마시로야를 제외한 나머지 료칸은 손님의 발길이 뜸한 편이다.

유노히라는 1960년대만 하더라도 일본 최대 온천도시 벳푸에 버금가는 온천지로 여겨졌다. 당시 이 지역의 료칸은 55곳에 달했다. 분위기가 바뀐 건 1975년 무렵이다. 바로 옆 마을 유후인에 미술관·카페 등이 들어서며 관광객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내 유후인은 오이타현을 대표하는 인기 온천지로 자리매김했다.

반면 유노히라는 쇠락을 면치 못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자 이곳 료칸은 19곳으로 줄었다. 야마시로야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관광객이 자취를 감추며 몇 안 되는 단골손님이 올려주는 수입에 경영을 의지해야 하는 상황에 빠졌다.

만실의 기적은 10여 년 전 니노미야 켄지(63) 대표가 장인에게서 료칸을 물려받으며 시작됐다. 타깃층을 현지인에서 외국인으로 재설정한 것이다. 그는 “이곳은 지역 어디에나 있을 법한 작고 오래된 료칸이다. 일본인에겐 특별한 매력이 없을 것이라 판단해 외국인 손님으로 눈을 돌리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외국 잡지사에 료칸 취재를 제안했다. 요청에 응한 한국의 잡지사 두 곳을 시작으로 대만 언론사, 홍콩 잡지 등의 취재가 이어졌다. 이를 계기로 야마시로야가 외국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손님들은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풍경을 이곳의 매력으로 꼽는다. 오래된 목조 건물 사이로 깔린 돌길과 붉은 등불, 하얗게 핀 온천 연기가 마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한 장면 같다. 특히 20대 여성에게 인기다. 니노미야 대표는 “숙박객 절반 이상이 20대다. 여성이 전체 손님의 60%를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손님이 느낄 안도감’에 주목했다. 낯선 곳에서도 손님이 안심할 환경을 만드는 것을 모토로 삼았다. 그의 홈페이지는 외국인 손님을 위해 4개 국어(일본어 영어 한국어 중국어)를 제공한다. 손님의 내일 일정에 맞는 식사시간과 교통편 등도 짜준다.

교통 불편 해소에도 직접 나선다. 유노히라역은 역무원이 없어 손님이 제때 내리지 못하는 일이 잦다. 이런 불상사를 막고자 숙소까지 오는 법을 동영상으로 안내한다. 이 같은 노력 끝에 30여개 국 외국인이 야마시로야를 찾았다. 숙박객 90%가 외국인이며, 특히 한국인이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했다.
일본 오이타현 벳푸시 전경. 김태훈 PD
■‘오감’으로 즐기는 온천

오이타에서 최고의 온천도시를 꼽는다면 단연 벳푸다. 2019년에는 833만5773명의 관광객이 찾았는 데, 외국인 관광객 62만여 명 중 약 40%가 한국인이었다. 벳푸는 ‘지옥온천 순례’로 유명하다.

▷푸른 바닷빛 온천 ‘바다 지옥’ ▷붉은 핏빛 온천 ‘피의 연못 지옥’ ▷간헐적으로 온천수가 솟구치는 ‘소용돌이 지옥’ ▷청백색 온천 ‘흰 연못 지옥’ ▷진흙 속 온천 기포가 스님의 머리와 닮은 ‘스님 지옥’ ▷과거 온천 증기로 밥을 지었다고 해 이름 붙은 ‘가마솥 지옥’ ▷악어가 사는 것으로 유명한 ‘귀산 지옥’ 등 온천명소를 둘러보는 관광 코스를 일컫는다. 이른바 ‘눈으로 보는 온천’이다. 이곳 주민이 펄펄 끓는 탕과 그 열기를 보고 지옥을 떠올린 것에서 유래됐다.

입으로도 온천을 즐긴다. 채소·고기·해산물을 온천의 증기로 쪄 먹는 지역 전통요리 ‘지옥찜’이나 온천수로 익힌 달걀은 벳푸를 대표하는 먹거리다. 온천 증기를 코로 맡고 피부로 쐬거나, 온천수를 직접 마시는 체험도 인기다. 10여 년째 벳푸에서 ‘하나미즈키 료칸’을 운영하고 있는 신현욱(60) 대표는 “벳푸에서는 오감으로 온천을 즐기는 독특한 관광문화가 자리 잡았다. 온천자원을 활용한 다양한 콘텐츠가 다른 지역과 구분되는 이곳만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벳푸 온천 산업은 지금도 발전을 지향한다. 치유 관광으로의 영역 확장을 꾀하고 있는 것. 벳푸 칸나와 지역은 과거 온천으로 질병을 고치는 ‘탕치’ 명소로, 온천이 딸린 숙소에 한 달 이상 머물며 요양했다. 벳푸시 관광산업부 마키 코지 과장은 “요가 등 건강 프로그램 운영, 온천 효능 연구 사업 등 웰니스 요소를 제안해 나가고 있다. 이른바 ‘신 탕치’다. 1, 2박 머무르는 관광객의 체류기간을 좀더 늘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국스러워야’ 푹 빠진다

벳푸지역 전통요리 ‘지옥찜’. 지옥찜공방 칸나와 홈페이지
일본에 견줘 국내 온천은 아직 목욕시설로서의 역할에 그친다. 오감으로 즐길 수 있는 독특한 ‘온천 문화’를 만들어낸 벳푸와 대조적이다. ‘목욕 원툴’ 한국온천의 관광 매력도가 점차 떨어지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한국 온천만의 정체성을 찾아 관광자원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나미즈키 신 대표는 “일본식 료칸을 그대로 한국으로 옮겨가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해외여행이 어려웠던 시기에는 반짝 인기를 끌었겠으나,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좋은 방법이 아니다. ‘한국스러운’ 요소가 가미돼야 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일본 온천 관계자들은 일본온천의 인기 비결로 ‘일본스러움’을 꼽았다. 니노미야 대표는 “한국 잡지사 취재진으로부터 ‘유노히라의 풍경이 가장 일본스럽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평범한 시골 온천마을 풍경이 외국인에게는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고 설명했다. 야마시로야는 숙박객에게 유카타와 일본식 우산을 무료 대여한다. 목욕을 마친 뒤 유카타를 입고 기념사진을 남기는 게 이곳의 필수 코스다. 손님에게 내는 음식도 오이타현의 특산물 분고규(소고기)를 포함한 일본 가정식으로 준비한다. 방문객은 씻고, 입고, 먹으며 ‘일본스러운 정취’를 느낀다.

동서대 권장욱(관광·컨벤션경영학과) 교수는 “한국온천은 1990년대 이후 전통적인 온천 역사와는 동떨어진 대규모 스파 리조트·워터파크 위주로 발전해 독특한 온천 문화를 만들지 못했다”며 “오감적 부분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접객 태도·경관·수질과 온도·청각 요소·몸을 닦는 동안 느껴지는 수건의 향기까지 우리만의 고유 영역을 만들어내야 한다. 부산의 경우 온천지와 인접한 금정산과 해운대에서 유래되는 자원들과 연계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상= 김태훈 김진철 김채호 PD

※제작지원 : BNK 금융그룹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직무정지 새마을금고 이사장, 여전히 경영 관여
  2. 2경정 승진자도 전국 교류…경위 이하 5년씩 부서순환 추진
  3. 3[속보] 롯데百 센텀시티점, 신세계 품으로
  4. 4지광 70억 있다면서…세금도 34억 10여 년 체납
  5. 5[근교산&그너머] <1484> 통영 학림도 망산
  6. 6롯데 수석코치 허문회, 2군 감독 박승민
  7. 7아직 관객 많은 ‘오디세이’인데…아이맥스관에서 내린 사정
  8. 8송파 247만 장 검증, 신분확인·촬영요구로 시작부터 차질(종합)
  9. 9‘가덕 증액 문서화’ 쳇바퀴…우선시공분 내달초 착공 희박(종합)
  10. 10신임 부산시 행정부시장에 김성기 행안부 인사기획관
  1. 1송파 247만 장 검증, 신분확인·촬영요구로 시작부터 차질(종합)
  2. 2대한항공 말흐리기…실체없는 통합LCC 부산 허브
  3. 3[뉴스 분석] 종교인·언론사주가 국회 권위 훼손…도덕성 논란까지
  4. 4부울경 광역의회 협력강화 선언 “미래산업 함께 육성”
  5. 5李 대통령 지지율 2%p 오른 46%…조희대 탄핵 반대 45%
  6. 6李 대통령 “국민 생명·안전 지키기가 최우선”
  7. 7북한 ,‘탄도미사일 10여발’ 무력시위
  8. 8‘가상자산 과세 유예’ 결론 못낸 당정
  9. 9여야 ‘조희대 국조’ 두고 공방 격화
  10. 10밤샘농성 장동혁 "피의자 선관위가 새벽 4시에 투표용지 가져가"
  1. 1[속보] 롯데百 센텀시티점, 신세계 품으로
  2. 2지광 70억 있다면서…세금도 34억 10여 년 체납
  3. 3‘가덕 증액 문서화’ 쳇바퀴…우선시공분 내달초 착공 희박(종합)
  4. 4'부캉이 오기 전' 부산 2분기 인구감소지역 체류인구 5% 증가
  5. 5퇴직금 2028년부터 사외적립…체불 예방
  6. 6부산시 “부산에 글로벌 AI 허브 유치하겠다”
  7. 7미래에셋·대신증권·빗썸도 뚫렸다(종합)
  8. 8사실상 금융업 전체가 다 털릴 판…靑, 긴급 대응회의(종합)
  9. 9첫 100조 분기매출 하닉 “100조 주주환원 하겠다”(종합)
  10. 10전용터미널·화주 인센티브 등 북극항로 상업운항 지원 요구
  1. 1직무정지 새마을금고 이사장, 여전히 경영 관여
  2. 2경정 승진자도 전국 교류…경위 이하 5년씩 부서순환 추진
  3. 3신임 부산시 행정부시장에 김성기 행안부 인사기획관
  4. 4후배 경찰 신체 ‘덥석’…파출소 팀장 추행 혐의 피소
  5. 5영업중단 이어 단전 위기…피가 마르는 홈플러스 입점업체들
  6. 6아울렛서 만나는 김해 도자기
  7. 7부경대 5108명 정보유출…위탁보안 비상
  8. 8“일부 수사 강압·부실” 부산변회, 권한 커진 경찰 첫 평가
  9. 9김해 어르신 생활 불편 해결해 드립니다
  10. 10“부캉이 등장, 바다생명 중요성 깨닫는 계기되길”
  1. 1롯데 수석코치 허문회, 2군 감독 박승민
  2. 2모레노, 은퇴소동 ‘96라인’ 달랜다…대표팀 내홍 풀까
  3. 3부산시대 2년차 읏맨 “홈팬 응원에 성적으로 보답”
  4. 4경남 생활체육 대축전 30일 개막…3일간 31개 종목 열전
  5. 5롯데, 공격서 수비로 중심 이동…주전 새판짜기 예고
  6. 6‘무관의 제왕’은 옛말…케인 발롱도르 품었다
  7. 7‘은퇴 기로’ 손아섭, 2년 만에 NC로…3000고지 향한 행진 계속
  8. 8허구연 KBO 총재, 3연임 사실상 성공
  9. 9K리그2 준PO 12월 2일 개최
  10. 10김해FC, 제6대 사령탑에 설기현 감독 선임
우리은행
위기가정 긴급 지원
홀로 질병과 생활고 견디는 독거노인…수도까지 끊겨
민선9기 지역일꾼 만나다
“노후 산단을 스마트 밸리로 혁신…구 소유 건물 팔아 재정 안정화를”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