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어느 학회 뒤풀이 자리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은 교수들과 대화를 했다. 나를 빼고 세 명의 교수들은 AI 조기 채택자들인 듯했다. 그 중 어느 교수가 자신은 글쓰기를 할 때 AI를 쓴다고 했다. 그 때 나는 AI와 글쓰기 시합을 하면 내가 100% 이길 자신이 있다고 했다. 나의 이 당돌한 발언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AI로 글쓰기를 하면 남는 시간을 더 유용하게 쓰면서 다른 능력발휘를 더 잘 할 수 있어요!” 아(Ah)! 더 이상 내 주장을 하면 격한 논쟁이 될 듯하여 그냥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 사람한테 가장 기본적 고등 능력인 글쓰기를 AI한테 떠맡기고 뭐 그리 대단한 다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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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공지능이 초래할 수 있는 무뇌적 인공치능 |
이런 나의 생각은 변함없건만 AI 열풍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언제부턴가 필자가 속한 광고홍보 관련 학회 세미나에서도 그랜드 토픽은 인공지능이다. AI 시대에 광고홍보를 어떻게 할 것인지 많은 발제가 쏟아져 나온다. 여기에 동참하지 않거나 못하면 뭔가 왠지 뒤떨어질 것 같은 강박감이 들기도 한다. 혁신의 확산과정에서 나는 혁신자→초기 채택자→초기 대다수→후기 대다수에 끼지도 못하는 느림보(laggard)다. 그런 나마저 하도 ‘AI AI’ 하길래 호기심이 발동해 사용해 보았다. 가히 도깨비 요술 방망이였다. “금 나와라 뚝딱” 하면 금이 나왔다. “은 나와라 뚝딱” 하니 은도 나왔다. 엄마에 관한 시를 써달라니 근사한 시가 나왔다. AI 고수들은 그림도 그리고 동영상도 만들고 소설이나 시나리오도 쓰고 설계도 하고 작곡도 한단다.
그런데! AI의 능력이 더욱 발전해 인간이 AI에 의존하는 정도가 더욱 높아진다면? 특히 글쓰기처럼 인간의 기본적 본원적 본질적 근원적 사고를 요하는 일을 AI한테 전적으로 맡긴다면? 이 질문에 나는 회의적인 답변을 할 수 밖에 없다. 인간의 사고능력은 뚝 떨어질 것이다. 아예 사라질 수도 있다. 노래방이 나오면서 가사화면 없이는 노래 못 부르는, 내비게이션이 나오면서 내비 없이는 운전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AI 없이는 글을 못쓰는 시대가 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인공치능(人空痴能)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사람이 인공지능에 너무 의존한다면? 사람(人) 머리가 비게(空) 되며 바보(痴)같은 재주(能)만 부리게 된다는 뜻이다. 사람인데 뇌가 거의 없는 무뇌자의 치능이다.
물론 AI가 효율적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는 분야는 아주 많다. 2024년 노벨 화학상은 AI를 활용해 단백질 구조를 예측한 연구자들에게 주어졌다. 이처럼 AI는 복잡한 패턴을 읽는 일을 하려고 과학적 기술적 공학적으로 쓰이면 유용하다. 하지만 글쓰기 등과 같이 인간의 기본적 본원적 본질적 근원적 근본적 사고력이나 작곡 창작 등 기획창의력을 요하는 일에 AI가 마구 쓰이면? 인간의 두뇌는 비고 만다. 바보들 세상이 된다. AI가 작동되는 딥 러닝 알고리즘을 만들어 인공지능의 아버지로 불리는 힌튼(Jeoffery Hinton)은 2024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오히려 그는 인공지능의 미래에 대해 암울하게 전망한다. 브레이크 없이 발전하는 AI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우리도 무분별한 AI 사용에 대한 자발적 통제가 필요하다. AI(Artificial Intelligence) 시대에 AI(Artless Idiot)인 무뇌적 인공치능자가 안되려면… 지금까지와 같은 글을 그 똑똑한 AI는 결코 쓸 수 없다. 감히 장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