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미애 의원 내부문건 공개 파장
- 계엄사례로 ‘부산소요사태’표기
- 관련 단체·학계 “역사왜곡” 반발
- “軍, 1979년 인식서 못 벗어나”
초유의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사전 모의 정황 의혹이 곳곳에서 제기(국제신문 9일 자 1면 등 보도)되는 가운데, 국군방첩사령부(방첩사)의 계엄 관련 내부 문건에서 부마민주항쟁을 ‘부산소요사태’로 표기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인다. 부마항쟁 관련 단체는 일제히 ‘역사 왜곡’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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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9일 오전 국군방첩사령부를 압수수색한 가운데 방첩사 앞에서 장병이 근무하고 있다. 연합뉴스 |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국회의원이 지난 8일 공개한 계엄사령부의 ‘계엄사-합수본부 운영 참고자료’를 보면 계엄 사태 예시를 들면서 부마민주항쟁을 ‘부산소요사태’로 표기했다. 문건에는 경비계엄과 비상계엄의 비교표가 담겼는데, 비상계엄의 선포 사례로 ▷부산소요사태(부마민주항쟁) ▷제주폭동(제주 4·3사건) ▷48년 여수순천반란(여수·순천 10·19 사건) ▷70년 10월 유신 ▷79년 10·26사태 등을 명시했다.
추 의원실에 따르면 이 문건은 여인형 방첩사령관 지시로 비서실에서 작성돼 지난달 여 사령관에게 보고됐다. 공개된 문건은 제보자 보호를 위해 가공됐으며, 계엄 선포와 운영의 구체적인 시나리오와 법적 근거가 담겼다.
보상 법률까지 제정된 부마민주항쟁과 관련해 ‘소요사태’라는 용어가 사용돼 논란이 증폭된다. 2022년 시행한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부마항쟁보상법)은 부마민주항쟁을 ‘1979년 10월 16일부터 10월 20일까지를 전후해 부산·마산 및 창원 등 경남 일원에서 유신체제에 대항해 발생한 민주화운동’으로 정의한다. 당시 박정희 정권의 유신 독재에 반대한 시민의 민주항쟁을 방첩사는 소요사태로 치부한 것이다. 앞서 2018년 공개돼 파문을 일으켰던 기무사 계엄 대비 문건에서도 부산소요사태라는 표현이 쓰여 논란이 있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부마민주항쟁 관련 단체는 역사 왜곡이라며 크게 반발한다.
정광민 10·16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장은 “1979년 당시 부산소요사태라는 명칭이 사용됐는데 그때의 낡은 역사 인식을 군이 아직도 갖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폭력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역사 인식에 굉장히 충격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마치 군대에 의한 진압을 정당화하는 인식이 없고서야 (해당 용어를) 얘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동일 상임이사는 “명칭은 역사적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을 드러내는데 부산소요사태라는 표현은 독재 정권의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옛 문건을 참고해 사용했다면 몰역사적 관점이자 역사 왜곡으로 볼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단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퇴행을 부르는 움직임으로도 보여 매우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두 단체는 이와 관련한 성명 발표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학계에서도 비판이 이어진다. 부산대 정대성(역사교육과) 교수는 “부마민주항쟁은 국가기념일로 지정되는 등 독재에 맞선 시민 저항의 역사”라며 “최근 비상계엄 사태가 벌어질 당시 국회 앞에 모였던 시민도 소요사태의 참가자로 볼 수 있다는 관점이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