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소 15명, 260만 원 무료나눔
- 현장서 핫팩·간식 나눠주기도
- 추위에도 K-팝 음악과 응원봉
- “MZ 민주주의 의식 건전·순수”

“모르는 사람을 위해 상품을 선결제 해달라는 주문 전화를 받은 건 처음입니다. 부산시민의 민주주의 열망이 얼마나 큰지 새삼 느꼈습니다.”

윤석열 퇴진 집회에 MZ세대가 주축을 이뤄 집회 문화가 과거와 크게 달라진 가운데 집회에 참여하지 못한 시민이 참여자를 위해 상품을 선결제하는 문화까지 생겨났다. 사진은 지난 14일 오후 부산 부산진구 서면의 한 카페에 선결제 관련 안내문이 붙은 모습. 연합뉴스

부산 부산진구 도시철도 서면역 인근에서 프랜차이즈 카페를 운영하는 이모(30대) 씨는 최근 “정권퇴진 집회 참여자를 위해 선결제 해달라”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주문자는 카페라테와 리얼초코 음료를 각각 30잔을 주문하고 24만9000원을 결제했다. 주문 당일 곧바로 초코 음료는 다 나갔고, 다음 날 오전 카페라테도 모두 소진됐다. 이 씨는 이 주문을 포함해 이번 집회 기간 모두 4차례 선결제 주문을 받았다.

지난 14일 서면 집회 장소 인근 아파트 주민이 탄핵 촉구 팻말을 들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퇴진 집회에 MZ세대가 주를 이루면서 투쟁가나 노동가 대신 K-팝 음악이 울려퍼지고, 응원봉이 등장해 마치 콘서트를 방불케하는 모습이 연출되는 등 집회 문화가 과거와 크게 달라진 가운데 집회에 참석하지 못하는 시민이 참여자를 위해 나눔 활동을 펼치는 새로운 문화가 생겨났다. 이른바 ‘K-시위’ 문화가 자리잡은 것이다.

15일 ‘촛불집회 가이드’ 사이트에 따르면 지난 3일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전국에서 254명이 집회 참여자를 위해 2만4533개의 상품을 선결제 했다. 부산에서는 최소 15명이 개별적으로 서면역 근처 카페와 분식집 등에서 미리 결제해 집회 참여자에게 무료나눔했다. 상품은 커피가 가장 많았고, 김밥과 쿠키 핫팩 등도 있었다. 부산에서의 선결제 대금만 최소 260여만 원에 달했다.

선결제 문화 역시 MZ세대가 이끄는 것으로 보인다. 일반 시민이 선결제된 식음료를 수령하기 위해서는 주문자가 정한 ‘주문 코드’를 알아야 하는데, 코드명은 대부분 프로야구 선수나 아이돌 가수의 팬클럽 이름이었다. 이 씨가 주문받은 선결제 코드명은 ‘방탄아미’ ‘지오디’ 등이었고 롯데 자이언츠 선수인 ‘윤동희’ ‘나승엽’을 코드명으로 내세운 주문 코드도 있었다.

집회 현장에서 본인이 준비한 핫팩이나 간식 등을 나누는 시민도 많았다. 지난 14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한 시민은 ‘서면 집회에서 50분께 간식을 나눴는데 부족해 10만 원어치를 추가로 구매했다’고 적었다.

또 다른 시민은 ‘아직 세상을 잘 모르는 어린 딸과 함께 서면 집회에 갔는데, 나눔받은 롱패딩 덕분에 전혀 춥지 않았다’는 글을 올렸다.

동아대 송진순(행정학과) 교수는 “민주주의 사회 속에서 자란 MZ세대가 배운 민주주의 의식은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건전하고 순수하다는 것이 이번 시위를 통해 드러났다”며 “탄핵 정국이라는 나라의 위기 상황 속 MZ세대는 시위를 저항이라는 물리력보다 가치를 공유하며 향유할 수 있는 문화로 인식했다. 우리나라 교육과 의식 수준이 높아졌다는 증거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