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관 부마항쟁기념재단 이사
- 尹 계엄 뒤 고문 후유증에 공포
- “정신과 약 먹고 술기운으로 버텨”
- 정광민 기념사업회장 역시 고통
- “후배들 제2 부마항쟁 선포 대견”
- 1만여 명 尹에 위자료 소송 착수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헌정사상 세 번째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화면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회복력이 확인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사태가 진행되는 동안 과거 긴급조치 9호와 비상계엄 사태 때 체포·구금당한 국가폭력 피해자들은 되살아난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45년 만의 비상계엄으로 당시 트라우마를 떠올린 부마민주항쟁 참가자들은 현재도 흉터처럼 새겨진 끔찍한 기억에 몸서리치지만, 그날 피 흘려 심은 민주주의 씨앗으로 비극적인 역사가 재현되지 않았다며 시민 주권에 의한 민주주의 정상화가 이뤄졌다고 소회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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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 당시 부산 중구 중앙동 옛 부산시청 앞에서 계엄군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국제신문 DB |
이동관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이사는 지난 3일 밤 집에서 TV 뉴스를 보던 중 속보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비상계엄 선포’라는 자막을 보고 두 눈을 의심했다. 급히 채널을 돌리자,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 긴급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었다. 어안이 벙벙하던 그는 이내 불안에 사로잡혔다. 과거의 기억이 머릿속을 엄습했기 때문이다.
이 이사는 1979년 10월 16일 부산에서 들불처럼 번졌던 부마민주항쟁 당시 동아대 시위의 주역이었다. 부산대 시위 소식을 듣고 17일 학우들과 거리로 나선 그는 20일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가 박정희 정권이 무너지고서야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45년 만에 악몽을 다시 마주한 이 이사는 비상계엄이 국회에 의해 가로막히는 모습을 보고도 도저히 잠에 들 수 없었다. 계엄이 성공하면 예전처럼 다시 군경이 자신을 잡으러 오리라는 공포 때문이었다. 항쟁 당시 고문 트라우마로 4, 5년 전부터 정신과 약을 복용 중인 그는 술 없이는 잠들 수 없어 그날 밤 홀로 만취했다. 이 이사는 “당시 폭행은 말할 것도 없고 물고문 등으로 비명이 가득했다”고 쓰라린 기억을 떠올렸다.
부산대 시위의 주역이었던 정광민 10·16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장 역시 비슷한 심정이었다. 항쟁 당시 체포돼 모진 가혹행위를 당한 그는 이번 계엄 사태 때 당시 고통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항쟁 주역이자 당시 부산대 학생이었던 전도걸 전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이사는 “국회에 헬기가 상륙하고 군인들이 내부로 진입하는 모습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며 “‘처단’이 언급되는 등 포고령 만큼은 오히려 군사정권 때보다 더 강력했다”고 말했다. 전 씨의 딸은 비슷한 아픔을 겪은 아버지 생각에 이른 아침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기도 했다.
이들 모두는 항쟁 때 강제구금됐다가 5·17 비상계엄 당시 또다시 체포되는 수난을 당했다. 부마민주항쟁 참가자 대부분은 시위 전력 때문에 비상계엄 때도 아픔을 겪었다. 심지어 정광민 씨는 계엄 당시 체포돼 실형 10개월을 살았다.
당시 시위 정보를 캐내는 군 편의대로 활동한 사실을 증언한 홍성택 씨 역시 트라우마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홍 씨는 “몇 시간 만에 계엄 사태가 진압됐지만 국회 앞 군인을 보자 심장이 크게 뛰어 불안이 가라앉지 않았다”며 “총칼을 준비하고 열차로 부산과 마산, 서울을 오가는 등 극단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던 당시 상황이 계속 생각났다”고 말했다. 그는 부마민주항쟁과 12·12 군사반란, 5·17 비상계엄 등에 출동했다.
비상계엄 사태로 부마민주항쟁 참가자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도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이가 많다. ‘윤석열 내란 행위에 대한 위자료 청구 소송 준비 모임’은 두 차례에 걸쳐 1만165명의 소송 참여자를 모집, 윤 대통령을 상대로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을 진행한다. 부산에서도 약 461명이 참가했다.
항쟁 참가자들은 트라우마를 호소하면서도 이번 사태가 수습되는 과정을 보며 큰 감명을 받았다. 이번 계엄 사태 때도 군경이 움직였지만, 상관에 항명하고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며 과거와 확연히 다른 변화를 체감했다. 정 씨는 “과거 선배들을 등불 삼아 ‘제2의 부마민주항쟁’을 선포하며 이번 사태에 맞선 후배들이 대견스럽고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전했다. 전 씨는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체감했다”며 “앞으로 이와 같은 계엄이 수없이 시도되더라도 시민 주권에 따라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