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이 여러 경영상의 어려움에 직면했다는 소식은 참으로 참담하다. 부산의 대표적인 언론사가, 부산의 숨결과 이야기를 담아낸, 부산사람의 삶의 일부인 국제신문이, 다른 지역에 거주하면서 신문사를 그저 개인적으로 소유하려는 자본주의적 욕심 때문에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서 있다는 사실이 분노를 넘어 자괴감마저 느끼게 만든다.
국제신문에 대한 부산 사람의 생각은 저마다 특별하겠지만, 나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깨알같이 작은 활자의 4면 국제신보(國際新報)를 읽는 아버지의 무릎 위에서 시작된 나의 국제신문 열독(熱讀)은 강제 폐간의 1980년대 일부를 제외하고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말하자면, 나는 국제신문을 통해서 세상을 배웠고, 지역을 알게 되었고, 부산사람이 되어 갔다.
신문은 단순한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가 아니라, 해당 사회가 갖는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면서 사람의 마음을 함께 만드는 정체성의 거울 역할도 함께한다. 오죽하면 베네딕트 앤더슨 같은 학자는 민족주의라는 정체성 형성에 인쇄물, 특히 신문의 역할에 주목했을까? 이러한 맥락에서 77년 역사를 가진 국제신문은 부산사람에게 세상을 보는 창이며, 부산이라는 공동체를 보는 거울 역할을 자임(自任)한다고 하겠다.
따라서 국제신문이 겪는 상황을 단순히 지역의 노쇠한 레거시 언론의 위기로만 받아들여져서는 안 될 것이다. 국제신문의 위기는 지역이 겪는 문제로 환치되어야만 한다. 자신이 소유한 한 신문사가 지역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 한 개인의 욕심이 국제신문을 어려움에 내 몰듯이, ‘경쟁력’과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지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서울만 고려하는 작금의 대한민국 상황은 거울의 양면처럼 서로 닮아 있다.
이렇듯 국제신문의 위기는, 이처럼 지역사회가 갖는 구조적 문제를 반영한다. 제2의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부산에서, 현재 많은 지역대학이 직면한 여러 어려움과 닮아있는 듯하다. 지역대학들이 ‘지역사회’와의 협력과 공생을 통해서 위기를 극복하려는 것처럼, 국제신문 또한 지역사회의 진정한 공공재로 기능 하면서 그 위기를 극복하도록 지방정부와 지역 기업은 도와야만 할 것이다. 지금처럼 소유와 운영이 특정인에게 맡겨져 있는 상황에서는 지역사회의 다양한 요구를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마지막으로, 국제신문 구성원의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 부산이라는 지역사회를 위한 여러분의 헌신은 부산사람과 부산이라는 지역으로 화답받을 것으로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