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롯데호텔부산에서 열린 제3회 인생이모작포럼 2부에서는 ‘인생이모작 성공사례 토크 콘서트’가 진행됐다. 이날 토크 콘서트에서는 본지 시리즈 ‘고영삼의 인생 이모작… 한 번 더 현역’을 통해 소개된 우수 사례 세 편의 주인공들이 나섰다. 고영삼 인생이모작포럼 공동대표가 사회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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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일 롯데호텔부산에서 열린 제3회 인생이모작포럼 2부에서는 ‘인생이모작 성공사례 토크 콘서트’가 진행돼 고영삼(왼쪽) 인생이모작포럼 공동대표가 주인공들을 소개하고 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
# 퇴직 후 우연히 잡은 붓에 매료돼…유학 떠나 하루 18시간 그림 매진
■ 안창수 동양화 화백
“주변 사람들을 보면 ‘취미가 없다, 소질이 없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주어진 시간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친구나 지인과 이야기하며 좋아하는 것들을 찾도록 충분히 노력하세요. 무언가를 찾았다면, 그때부터 모든 힘을 쏟아부으세요.”
안창수(사진) 동양화 화백은 ‘나이 예순에 처음 잡은 붓… 中·日 동양화 대회 상 휩쓸다’(국제신문 지난해 2월 21일 자 12면 보도)로 독자와 만났다. 그는 ‘예순 넘어 시작한 동양화로 한·중·일 상 휩쓰는 영원한 청년’이란 주제로 변치 않는 열정을 보여줬다.
안 화백은 한국수출입은행에서 근무하다 정년 퇴직 후 대우조선 고문을 역임하는 등 그림과는 관계 없는 삶을 살았다. 퇴직 후 경남 양산으로 귀향해 쉬다가 닭띠 해를 맞아 닭의 그림을 그려본 게 계기가 됐다. 닭 그림을 그렸는데 주변의 반응이 너무 좋아서 중국 유학 권유를 받은 것이다. 안 화백은 중국 항저우 미술대학에 진학해 2년간 외국인 전문코스를 밟았다. 6개월 만에 수상하는 등 두각을 드러내자 이후에는 일본으로 유학했다. 이 기간 그가 공모전 등에서 수상한 이력은 30여 차례나 된다.
안 화백은 중국 유학시절 잠자는 시간 빼고는 기숙사와 교실만 오가며 하루 18시간 이상 그림에 매진했다. 그는 “6개월 만에 중국에서 그림으로 상을 받고 현지 방송에 나가게 됐다. 한 번 더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고, (예정보다) 유학 생활이 길어졌다. 지금도 그림보다 좋은 건 없다”고 강조했다.
동양화의 큰 줄기 속에 중국화와 일본화 등의 각기 다른 매력을 습득했고, 지금은 한국화에 매진하며 동양화 삼국의 매력을 융합한 작품을 구상 중이다. 안 화백의 최근 목표는 세계 무대에서 한국화의 진수를 알리는 것이다.
# 스시 매력 빠져 50대에 ‘주방 막내’…오너셰프 된 뒤에도 매너리즘 경계
■ 허동한 허교수스시 오너셰프
허동한(사진) 허교수스시 오너셰프는 ‘초밥에 빠진 교수님, 50대 주방 막내로 취업해 오너셰프로’(국제신문 2023년 9월 20일 자 12면 보도)로 독자와 만났다. 그는 이날 ‘50대에 일본대학 교수 그만두고 초밥집을 연 남자’로 꿈을 좇고, 결국 이룬 특별한 경험을 들려줬다.
허 오너셰프는 일본 후쿠오카현립대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스시로 진로를 바꾼 케이스다. 방학 기간 평소 좋아하던 스시학원을 등록한 것이 시작이었다. 결국 24년간 몸담은 대학을 나와 57세에 도쿄 긴자의 한 스시집에 주방 막내로 취업했다. 그렇게 7년을 배우고 부산으로 돌아와 2023년 매장을 오픈했다.
허 오너셰프는 “열정이 결국 꿈을 이루는 바탕이 된다”고 강조했다. 50대에 식당 막내로 일하는 것도 고난의 연속이었다. 칼과 불을 다루는 식당이다보니 조직 분위기는 엄격했고, 늦은 나이에 입문한 허 오너셰프에게는 모든 게 낯설었다. 하지만 포기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는 “(배우는 과정이) 힘들다기보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아직 교수의 때를 벗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출근할 때마다 초심을 잃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았다”고 말했다.
허 오너셰프의 좌우명은 ‘타성에 젖지 말라, 진짜 원하면 과감히 뛰어들어라’이다. 그는 한 차례 꿈을 이룬 지금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게 경계한다. 그는 “스시가 좋아서 시작했지만, 이마저 너무 익숙해져 나중에 타성에 젖을까 한 번씩 경계한다”고 했다.
그는 이날 각기 다른 꿈을 꾸는 참가자들을 향해 “(꿈을) 단기간에 포기하지 말고, 최소 1·2년은 투자한다 생각하고 3년 이상은 꾸준히 노력해보면 성과가 나타날 것”이라며 응원과 지지의 메시지를 전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 교직 떠났음에도 교육에 대한 열의…디지털 소외자 강연으로 봉사의 삶
■ 최정란 이모작지원센터협동조합 부이사장
‘어르신 스마트폰 교육봉사… 세상을 교실 삼아 평생 교육자로’(국제신문 지난해 7월 24일 자 12면 보도)의 주인공 최정란(사진) 이모작지원센터협동조합 부이사장은 ‘교직 은퇴자의 인생 2막은 어떤 스타일이 좋을까?’란 질문에서 새 삶을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최 부이사장은 2019년 중학교 교장 퇴임 이후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해외봉사를 접하며 본격적으로 봉사의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그는 아프리카 우간다에 있는 은산지중등학교에서 미술교육봉사를 시작했다. 최 부이사장은 “퇴직 후 할 일이 없는 게 힘들었다. 내가 배운 것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교육에 대한 열의도 여전해 ‘디지털에 소외된 사람’을 위한 교육봉사를 하기로 다짐했다”고 배경을 밝혔다.
그 이후에는 ‘무엇을 하며 살까’란 고민 끝에 경남행복내일센터(경남도+경남경영자총협회)와 협력해 ‘2모작지원센터협동조합’을 결성했다. 현재 디지털이 낯선 시니어에게 스마트폰 키오스크 교육을 하고 있다. 시니어들이 강연을 듣고 디지털과 익숙해지는 변화를 체감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최 부이사장은 “키오스크 앞에만 서면 주눅이 든다고 했던 어르신에게서 강연을 듣고 난 뒤 ‘키오스크에서 햄버거 주문 성공했어’라는 말을 들으면 말할 수 없는 보람을 느낀다”며 “관심을 가지면 나이가 많아도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고 응원했다.
꾸준한 봉사를 위해 자기관리도 철저히 한다. 최 부이사장은 “일주일에 이틀은 강연, 2, 3일은 공부에 매진한다. 디지털 환경이 급변하다 보니 강연자로서 먼저 배우기 위해서다”고 설명했다. 그는 ‘누구나 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갖고 찾아 나서라고 강조했다. 그는 “‘갖고 있는 재능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를 충분히 고민한다면 얼마든지 사회에 기여하고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독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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