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부산에서 열린 전두환정권 반대 집회에 참가했다가 구속기소된 학생이 44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
| 양은진 씨. 국제신문 DB |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지법 형사7단독 배진호 부장판사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양은진(65) 씨 재심에서 면소(공소권이 없어 기소를 면함)를 판결했다. 양 씨는 1981년 6월 11일 부산대에서 200여 명이 참가한 전두환정권 반대 집회에 동참, ‘언론 학원 자유 보장’ 등을 외쳤다가 구속됐다. 집시법 규정 중 ‘사회적 불안을 야기할 우려가 있는 집회’에 참가했다는 이유였다.
1980년 5·17 내란으로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돼 각 대학이 강제로 그 해 9월까지 휴교에 들어갔다. 비상계엄은 전년도 10월 부마민주항쟁을 계기로 발령됐다.
항쟁 여파로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전국은 ‘서울의 봄’으로 대표되는 민주화 열망에 부풀었다. 그러나 12·12 사태로 정권을 쥔 신군부는 이듬해 5·17 내란을 일으켜 찬물을 끼얹었다.
1981년 들어 대학가에는 항거 움직임이 나타났다. 부산대에선 4월 17일 중앙도서관에서 5·17 내란을 비판하는 유인물이 뿌려졌다. 그러나 군중 결집에는 실패했다. 이 시위를 계획했던 최병철 씨 등은 그 해 6월 재차 시위에 나서 학생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양 씨도 집결한 학생 중 하나였다. 그는 그 해 9월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최 씨는 이후 이 사건으로 ‘부림 사건’에까지 휘말려 고초를 치렀다.
당시 경찰은 최 씨 등 3명을 구속했다. 양 씨는 주동자가 아니었는데도 붙잡혔다. 학보사 기자로 일하면서 몇 차례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사실이 영향을 줬다. 양 씨가 징역형을 선고받게 된 근거가 된 규정은 1989년 부당성이 인정돼 삭제됐고, 이번 면소 판결로 이어졌다.
양 씨는 “면소 판결 직전 12·3 비상계엄이 있었다. 전두환정권 때의 꼴을 다시는 안 볼 줄 알았는데 만감이 교차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