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654> 이실식과 개암식 ; 자율인의 삶

  • 박기철 소락소암 암장·전 경성대 교수
  •  |   입력 : 2025-03-30 18:49:28
  •  |   본지 21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2004년 3월 경성대 교수로 부임받은 필자는 2025년 2월 정년퇴직했다. 이에 21년 동안 몸담았던 연구실을 나와야 했다. 처음엔 방의 짐들을 비우고 떠나면 그만인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떠나려니 그렇지가 않았다. 마치 정든 사람과 이별하는 마음 같았다. 그래서 이삿짐 운반회사에서 오는 4시간 전인 새벽 3시에 1시간가량의 긴 동영상을 찍어 유튜브 ‘글자따라 생각따라’ 86번째로 올렸다. 나름대로 이별의 세리머니를 한 것이다. 이실식(離室式)이라고 이름붙였다. 연구실(室)과 이(離)별하는 식(式)이다.

연구실과 이별하는 이실식과 소락소암 개암식을 거친 자율인.
그 많던 책들과 물건들로 가득 찬 연구실을 비우니 그야말로 휑했다. 남은 건 학교에서 받은 책장 책상 의자 캐비닛 밖에 없었다. 내 연구실이라는 장소(place)는 사라지고 텅빈 공간(space)만 남았다.

또 남은 게 있었다. 무생물이 아니라 생명체였다. 화분에 심어진 두 그루의 나무들! 21년 전 내 연구실에 왔을 땐 꼬마나무들이었다. 21년동안 키가 천장에 닿을 만큼 컸다. 내 곁, 내 옆에서 나랑 같이 살던 반려수(伴侶樹)들이었다. 허나 이사가는 곳에 이 두 나무를 놓아 둘 공간이 만만치 않았다. 두고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 두고 갈 수 없었다. 아무렇게나 쓰레기처럼 내다 버리기엔 내 마음이 용납치 않았다. 자주 오르던 산길에 심기로 했다. 두 그루의 나이든 키 큰 나무를 어깨에 메고 낑낑 산으로 올랐다. 호미로 구덩이를 파고 나무를 심고 원래 있던 나무에 슬쩍 걸쳤다. 연구실 화분에 있던 흙을 가져다 엎었다. 그렇게 위태로운 이별의 식재(植栽)를 하고 나니 마음이 짠해지며 기분이 먹먹해졌다. 내가 센티한 A형이라서가 아니라 20년 넘게 나무들한테도 정이 들면 원래 누구나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이삿짐이 왔다. 사나흘간 노동 끝에 연구실에 있던 짐들 정리가 끝났다. 분위기는 이실식 전의 연구실과 흡사했다. 두 그루 나무만 없을 뿐 새로운 터전이 마련된 것이다.

나는 그 터전의 이름을 진작부터 지어두었다. 내 호인 소락(素樂)의 둥지(巢)이자 초막(菴)인 소락소암(素樂巢菴)이다. 내 머릿속에 키우는 새가 알바트로스이기에 새의 집인 둥지이며 둥지에 주로 있는 것들이 나무를 원료로 만든 책들이기에 초막(草幕)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문 밖에 간판도 떡하니 걸었다. 소락소암 암장으로 취임했다. 소락소암이 완성된 날 나는 1시간가량의 긴 동영상을 찍고 유튜브 ‘글자따라 생각따라’ 87번째로 올렸다. 제목은 개암식(開菴式)이라고 했다. 나름 오픈 세리머니를 한 것이다. ‘칭구’를 여럿 불러 소락소암 개암기념 토크 콘서트도 열었다.

소락소암에서 나는 앞으로 어떤 인간으로 살아갈 것인지 다짐했다. 지금껏 지인들로부터 자유로운 영혼의 자유인이라는 평가를 많이 받으며 살아왔다. 그렇다고 산에서 사는 자연인이 될 수도 없는 처지다. 이제 초등학교 입학 후 60여 년 만에 맞는 무소속이다. 나는 나를 자율인이라 명명하며 그렇게 살고자 했다. 유튜브 ‘글자따라 생각따라’ 91번째로 올렸다. 나 스스로의 사유(Reason) 습성(Routine) 율동(Rhythm), 3R 방침으로 살아가는 자율인! 대충 그러려니 하고 살련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정부, 공연장 겸 돔구장 추진…북항 돔 아레나 ‘기회’
  2. 2폭발음 뒤 불길…인근 7000명 대피(종합)
  3. 3프로야구 역대급 흥행에도 쪼그라든 ‘거인 팬심’
  4. 4부산시, 퐁피두 분관·라 스칼라 공연 백지화(종합)
  5. 5[단독] “어? EBS서 봤던 문젠데” 부산 고교 118명 중간고사 재시험
  6. 6‘신천지 與 입당 정황’ 친청계 반발…“김 대표, 조사 과정 제대로 밝혀라”(종합)
  7. 7[속보]홈플러스 희망퇴직 신청자 몰리는 바람에 접수 조기마감
  8. 8구·군은 맘대로 불법 현수막…민간엔 과태료 폭탄
  9. 9호텔 셔틀 타고 황령산 야경 보러가요
  10. 10이기대 예술공원 사업도 차질
  1. 1‘신천지 與 입당 정황’ 친청계 반발…“김 대표, 조사 과정 제대로 밝혀라”(종합)
  2. 2北 "전날 동해서 2종 잠수함발사 전략순항미사일 시험발사"
  3. 3신임 靑 비서실장에 임광현 국세청장(종합)
  4. 4김민석 격주 부산행 PK 민심잡기…부마항쟁 기념식 찾는다
  5. 5김민석, 강훈식 서울시장 후보론에 “가능성 열려있다”
  6. 6김지용 “정치검사 1호는 尹”…과거 행적 놓고 與 집안싸움(종합)
  7. 7이 대통령 "부마항쟁 헌법 조문화, 이제는 실천할 때"
  8. 8李 대통령 지지율, 2주 전보다 소폭 오른 44%…부정 평가 49%
  9. 9박형준 “새로 할 일 없는 사람들, 전임 시정 뒤집기 집착”
  10. 10선관위 특검, 중앙선관위 등 7곳 압수수색…투표자수 허위입력 확인”
  1. 1[속보]홈플러스 희망퇴직 신청자 몰리는 바람에 접수 조기마감
  2. 2호텔 셔틀 타고 황령산 야경 보러가요
  3. 3올해 자사주 62조 태웠다…‘삼전닉스’ 과반
  4. 4부산 호텔업계 “바가지요금 논란 되풀이 막자”
  5. 5삼전닉스 급락에 코스피 5600선까지 추락…매도사이드카 발동
  6. 6금융사 AI해킹 16곳으로 늘어나…130곳은 ‘보안 미흡’
  7. 7‘8% 넘게 폭락’ 두 달만에 코스피·코스닥 1단계 서킷브레이커 발동
  8. 8친환경에너지·AI기술 각축…업계 트렌드 읽고 미래로 항해
  9. 9[속보]“편의점 김밥 잘 골라야”… 속 재료·영양·가격 등 제품마다 제각각
  10. 10현대차, 인도에 20조 통 큰 투자…생산·연구개발 거점 강화
  1. 1폭발음 뒤 불길…인근 7000명 대피(종합)
  2. 2부산시, 퐁피두 분관·라 스칼라 공연 백지화(종합)
  3. 3[단독] “어? EBS서 봤던 문젠데” 부산 고교 118명 중간고사 재시험
  4. 4구·군은 맘대로 불법 현수막…민간엔 과태료 폭탄
  5. 5부산도시철 교대인력 공백 떠안은 직원들…현장 아우성
  6. 6변성완·박상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송치
  7. 7市 ‘시간 쪼개기 계약’ 채용 관행 전면 손질
  8. 8해인사, 팔만대장경 한 본 더 제작한다…29일 판각 시작 알리는 고불식
  9. 9근무 중 헬스장 222차례 간 경감…법원 “강등 정당”
  10. 10부산중수청장 “지방청 중심 수사…기존 검찰 구조와 다를 것”
  1. 1프로야구 역대급 흥행에도 쪼그라든 ‘거인 팬심’
  2. 2인종차별 당한 엄지성…英 경찰 수사
  3. 3[뭐라노] 롯데, 이젠 성찰할 때
  4. 4거인 3년 연속 7위…레이예스·한동희는 날았다
  5. 5황성빈은 첫 도루왕…끝까지 뜨거웠던 타이틀 경쟁
  6. 6한화, 새 사령탑에 류지현…3년 20억원
  7. 73년 無가을로 계약 만료…김태형 감독 운명은?
  8. 8프로야구 한화, 신임 사령탑으로 류지현 국가대표 감독과 계약
  9. 9최동원 어린이 야구교실, 출범 11년 만에 프로선수 배출
  10. 10HJ重·동부건설, 소외층·골프 꿈나무에 3000만원 기부
우리은행
민선9기 지역일꾼 만나다
“나노산단 분양률 50% 고무적…미래전략 앵커기업 유치 목표”
고영삼의 인생 이모작…한 번 더 현역
배우 강석우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