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직 33년… 전자정부 발전 기여
- 퇴직하고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
- 바른 생각과 행동의 가치 깨달아
- 알프스·킬리만자로·록키산맥 등
- 백 가지 길 걸어 ‘백길선생’ 별칭
- 자연서 느끼는 기쁨 끊을 수 없어
◇ 김경섭의 인생이모작 귀띔
- 날마다 기쁜 날을 만들며 살아라
어떻게 사는 것이 정답일까? 어떤 이는 재취업을 권하고 어떤 이는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라 한다. 어떤 이는 리타이어(retire) 단어에 착안해 타이어를 갈아 끼우라 한다. 그러나 산다는 일은 참으로 깊은 중층의 일인지라 정답이 없다. 이번에는 은퇴 후 오직 걷는 일에만 몰두해 온 이를 만났다. 그는 전 세계 트레일 코스를 주유해 온‘세계걷기여행자’다. 지금도 길 위에 있는 이 분과는 전화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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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섭(왼쪽) 세계걷기여행자가 2019년 1월 그의 아내와 함께 일반인이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산인 킬리만자로(해발 5895m)의 눈덮인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요즘은 피로도 풀 겸 쉬면서 그동안의 걷기를 챗 GTP를 활용해 기록화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실크로드 시작점과 종점인 중국 시안과 이탈리아 로마를 걸을 계획이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걸으셨나요?
▶2015년부터 지금까지 세계 10대 트레킹 코스를 포함해 주로 대자연과 함께하는 걷기를 즐겼습니다. 10년간 다닌 길을 다 합하면 3000㎞ 정도입니다.
이번에 만난 분은 전직 공무원 김경섭(71) 씨다. 그는 1980년 총무처 공무원으로 시작해 국가정보자원관리원장으로 퇴직한 고위공무원 출신이다. 지인들은 그를 ‘백길선생’이라 칭한다. 백 가지 길을 걷고 걷다 보니 그런 별칭까지 얻게 되었단다.
-어디를 얼마나 걸으셨나요?
▶여러 종류의 길을 걸었는데 우선 산길 코스는 6개 대륙별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유럽의 알프스산맥,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 남아메리카의 안데스산맥, 북아메리카의 록키산맥,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 그리고 BBC에서 선정한 세계 3대 트레일 코스인 뉴질랜드의 밀포드, 중국의 차마고도, 페루의 잉카트레일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남·북극권에서 걷기를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스웨덴의 쿵스라덴, 칠레의 파타고니아입니다. 일반 자연 길로는 영국을 대표하는 트레일 코스인 코스트 투 코스트를 걸었죠. 그리고 몽골초원 후지산 둘레길도 걸었습니다. 그랜드 캐니언과 함께 연이어 있는 미국의 그랜드서클도 걸었죠. 물론 우리나라의 백두대간도 섭렵했습니다. 백담사부터 봉정암에 이르는 길은 특히 제가 좋아하는 길입니다.
-일반인으로서는 도전하기 힘든 수준이군요. 트레일 코스를 한번 나가시면 며칠 정도를 걷고 돌아오시나요?
▶그건 코스 따라 다릅니다. 저는 몽골과 차마고도, 그리고 후지산의 경우 각 일주일 정도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유럽 쪽에는 몽블랑을 걷고 난 뒤 바로 돌아오기는 뭣해서 프랑스 남쪽의 프로방스를 방문해 더 걷고 왔죠. 이 경우 20일도 더 소요되었습니다. 산티아고 길은 40일이 걸렸죠.
-10년이나 그렇게 하셨다니 전 세계 유명한 트레일 코스를 걷는 것이 인생2막의 삶이 되셨네요. 젊은 시절에는 어떤 일에 종사하셨나요?
▶저는 행정안전부에서 총 33년을 재직했습니다. 재직 중에는 한국의 전자정부를 세계 최고로 만드는 영광을 함께 했습니다. 예를 들어 행정정보공동이용시스템을 구축해 이를 기반으로 2010년도에 ‘민원24’를 오픈해 전 국민이 안방에서 정부의 각종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게 했습니다. 2011년도에는 정부클라우드센터를 구축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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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3월 페루 마추픽추를 방문한 김경섭 세계걷기여행자. |
그는 현역으로 활동할 때 우리나라 전자정부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2016년에 OECD가 주관하는 세계 공공데이터 개방지수 평가에서 한국을 세계 1위에 올려놓게 했다. 다양한 공로로 2017년도에 있었던 전자정부 50주년 기념행사에서 한국 전자정부 발전에 뚜렷하게 기여한 3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공직에서 은퇴할 때 걷기만을 하기로 미리 계획하셨던 건가요?
▶그렇지는 않았어요. 저는 2015년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에서 부원장을 마치면서 공직을 완전히 떠났는데, 그때 젊은 시절 알게 모르게 마음에 상처를 주고받은 분들이 생각났습니다. 업무 중 관계한 분들과 화해하거나 용서를 하고 싶더군요. 그렇지 않고서는 인생2막이라는 남은 여정을 진군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그래서 이 짐을 해결하기 위해 인생짝꿍인 아내와 함께 800㎞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해서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인생의 숙제가 풀리던가요?
▶산티아고 길에는 은퇴자나 종교 순례자, 창작가들, 그리고 진로가 막혔거나 세상일에 탈진한 분들이 저마다 인생 샘물을 마시기 위해 찾아가요. 저의 경우 전체 길의 처음 3분의 1은 몸이 현장에 적응하는 기간이었어요. 하루에 20-35㎞를 걸었는데, 걷기는 훈련이 되어있었지만, 잠자리 등 모든 것이 낯선 상황이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렇게 계속 걷다 보니 어느 시점부터는 적응되는 대신 몸의 피로감이 누적되기 시작하더군요. 그러니 어떻게 하면 배낭의 짐을 간결하게 할까를 고민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게 배낭을 비워나갈 때마다 그렇게 얽혀있던 복잡한 생각들도 머리에서 하나씩 비워지게 되더군요. 공직생활 중 서운했거나 타인을 힘들게 했던 많은 것들이 객관화되는 거였어요. 800㎞의 긴 길에서 의미있는 경험이었죠. 그렇게 두 번째 3분의 1의 시간을 보냈어요. 한동안 그렇게 걷고 나니 앞으로는 어떻게 살 것인지가 비로소 생각되더군요.
-흥미롭군요. 그래서 어떤 방향을 잡으셨나요?
▶바른 생각과 바른 말과 바른 행동을 할 수 있는 지혜를 제 속으로 청원했습니다. 그리곤 인생2막 때 제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구분했죠. 그랬더니 귀국하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기업 영역에는 들어가지 않겠다는 결심이 서게 되더군요. 그런데 그렇게 비우거나 구상하며 걷던 중 충북대에서 초빙교수로 와달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3대 1의 경쟁이었는데 제게 연락이 온 거예요. 저는 ‘아 잘 되었다. 그러면 방학 때도 이렇게 전 세계를 걷고 걷자’고 짝꿍과 합의를 보았죠. 저의 짝궁은 실향민인 시어머님을 모셨고 제가 뒤늦게 박사학위를 받을 때도 고생을 많이 했어요. 저는 짝꿍과 세상의 좋은 자연을 경험하는 기쁨을 함께 키우기로 결심해 버렸어요.
그의 걷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지금껏 10년 이상을 걷다 보니 이제 ‘인생은 고향을 떠나 길 위에서 길 찾기’라는 깨달음을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렇게 오랫동안 걷는 생활을 지속하려면 걷기기술과 함께 생활의 기술도 필요하겠군요.
▶바른 걷기가 매우 중요하죠. 저는 실크로드 대상들이 하루에 50㎞ 걸은 보법을 익혔습니다. 들숨으로 4걸음, 숨을 멈춘 채 2걸음, 날숨으로 6걸음, 숨을 멈춘 채 2걸음을 하는 것입니다. 생활의 기술요? 생활은 공무원이었던 아내와 함께 우리 두 사람의 연금으로 가능합니다. 마침 제가 인공지능(AI) 로봇 자율주행차 쪽에 있었던 전문성으로 미국 중국의 주식을 했는데 그 수익에서 여행비용은 충당되더군요. 50대 후반부터는 잘 놀기 위해 사진 드로잉 요리도 틈틈이 배웠어요.
-트레킹만 하는 10년을 보내셨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이 그대로이고 무엇이 변하며 어떻게 변하는지 가르쳐 준다”고 했는데, 저는 70대에는 문명의 흐름대로 시간여행을 하면서 역사를 답사하고 싶습니다. 지금 디지털 문명이 확산되기에 디지털 실크로드 길을 설정해 답사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80대는 ‘독만권서 행만리로’(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를 여행하라)를 실천할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짝꿍과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했을 때 느꼈던 감격, 일반인이 올라갈 수 있는 최대 높이인 킬리만자로(5895m)에 도전해서 체력의 한계를 느끼며 밀고 당기면서 올라간 정상에서 느낀 뭉클한 감격을 계속 누리고 싶습니다. 인기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평생 성실하게 살아온 양관식이 “우리도 여행가자, 미국도 가자” 했으나 암으로 하늘나라 올라가는 것 보고 나의 걷기 선택은 참 잘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작년에는 손녀들과 함께 전 가족이 라스베가스에 모여 그랜드-자이언-브라이스 캐년을 걸을 때 엄청나게 웃으며 행복했던 적이 있어요. 그렇게 ‘날마다 기쁜 날’을 만들며 살고 싶습니다. 우리 부부는 유산을 가족이 즐거운 경험을 함께할 때의 경비로 사용하기로 합의했어요.
-은퇴를 준비하는 공직의 후배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은퇴 후 어떻게 살 것인지 삶의 목표는 빨리 결정할수록 좋습니다. 공직자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직무와 무관하게 경제공부를 많이 하기를 권합니다. 자신의 재무설계는 스스로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살아가는 어느 시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 보시기를 강력히 권합니다. 그리고 자칫 무미건조해지는 일상에서 ‘□자’ 7명과 친해지라고 하고 싶어요, 웃자(엔돌핀) 걷자(세로토닌) 놀자(다이돌핀) 주자(도파민) 그리고 읽자 쓰자 먹자입니다(웃음).
인간은 걷는 존재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고 했다지만, 우리는 말씀과 함께 길이 있었음을 안다. 태초의 인간은 길을 걷고 길을 만들었다. 인간은 길의 존재다. 길 앞에서 걷고 싶은 맘을 자제할 수가 없다. 그래서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셸은 인간을 ‘호모 비아토르’라 했다. 라틴어로 나그네, 여행자란 뜻이다. 인생2막기를 세계걷기여행자로 살고 있는 백길선생 김경섭은 오늘도 걷는다. 그의 길은 좋은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지구 한 바퀴의 길이다. 설레는 길이다. 세로토닌이 풍성한 길이다. 이 여행자는 길 위에서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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