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法 “내무부 훈령 발표가 1975년
- 市, 13년 앞서 재생원 조례 제정”
- 국가 나서기 전 단속 지침 마련
- 市 ‘하부기관 불과’ 주장 배척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부산시가 단독으로 피소한 소송에서 재판부가 피해자 측의 손을 들어줬다. 형제복지원 관련 소송에서 국가와 공동으로 시의 책임이 인정된 판례는 여러 건 나왔지만, 국가에 앞서 시가 저지른 죄책이 인정된 것은 처음이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지법 민사11부(이호철 부장판사)는 형제복지원 피해자의 유족 강모 씨가 부산시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을 지난 9일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강 씨의 아버지는 1985년 형제복지원에 끌려가 2년간 수용됐다. 강제노동에 동원되거나 약물을 투여당했고, 퇴소 후 정신질환을 앓았다. 강 씨는 지난해 2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로 아버지의 피해 사실을 인정받고 그 해 5월 제소했다.
시는 당시 형식상의 지자체로 사실상 국가의 하부기관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다. 1961년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 시행으로 지방자치제가 중단돼 자체적인 의사결정이 불가능했다는 취지다. 부랑인 단속·수용은 국가사무를 대신 수행한 것에 지나지 않아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지방자치제는 1992년 부활했는데, 형제복지원이 시의 부랑인 위탁 기관으로 운영된 건 이에 앞선 1975~1987년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시가 국가에 앞서 주도적으로 불법을 저질렀다고 봤다. 시는 1962년 자체적으로 ‘재생원 조례’를 제정, 부랑인 단속 등을 민간에 위탁할 근거를 만들었다. 형제복지원도 이 조례에 근거해 보조금을 받았다. 1973년에는 자체적으로 각 기초지자체와 경찰이 부랑인을 단속해 보호시설에 수용하도록 하는 지침도 마련했다. 반면 국가 공식 부랑인 단속 정책의 근거인 ‘내무부 훈령 제410호’는 1975년 12월에야 생겨났다.
재판부는 “피고(부산시)는 부랑인 단속과 그 수용시설에 관한 정책을 국가가 공식적으로 시행하기 전부터 선행했다. 당시 법률에 따라 법인으로서 독자적인 권리·의무의 주체가 됐으므로, 지방자치제도가 중단됐다는 사정만으로 국가의 하부기관에 불과했다 볼 수 없고, 형제복지원 단속·수용, 관리·감독 등 제반 행위 모두 피고가 했다”며 “국가배상책임이 아니더라도 소속 공무원의 불법행위에 대해 책임을 진다고 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형제복지원 사건 중 시가 단독으로 제소된 건 이번 사건이 유일하다. 국가와 함께 피고로서 수행 중인 소송은 현재까지 모두 28건으로, 이 중 17건은 국가와 시의 공동책임이 인정됐다. 이들 소송 대부분은 내무부 훈령과 재생원 조례의 위헌·위법을 지적하며 ‘광범위한 다수 공무원이 관여한 일련의 국가작용’에 의한 기본권 침해라고 판단했다. 이에 견줘 이번 판결은 훈령에 앞서 시 고유의 책임을 직접 언급하며 그 내용을 판결에 적시했다.
한편 시와 국가의 공동책임이 인정된 17건은 대부분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이 중 서울고법 민사19-1부가 심리한 항소심 사건은 지난 2일 형제복지원 피해자 측의 일부 승소를 판결했다. 2심 단계에서 시의 책임이 인정된 첫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