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도매인 파산에 회수 못한 대금 20억
- 충당금 보전으로 법인 손해 끼친 혐의
- 관행 이유로 정산 시스템 개선 안해
- 어시장 측 “신용한도 도입 등 대책마련”
박극제 전 부산공동어시장 대표이사가 배임 혐의로 구속(국제신문 24일 자 온라인 보도)되면서 ‘공동어시장 법정 잔혹사’가 끊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행을 이유로 법인의 정산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는 등 ‘현대화’가 미진한 영향이란 분석이 제기되는 가운데 어시장 측은 중도매인 신용한도 도입 등으로 관리 방식을 고치겠다는 입장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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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구 남부민동 부산공동어시장 위판장에서 수산물 경매가 진행되고 있다. 국제신문 DB |
■‘관행’이 부른 비리 끊이지 않아
부산지법 엄성환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4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 혐의로 박 전 대표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부산해경은 그가 평소 출입국이 잦아 도망의 염려가 있으며 배임액이 20억 원으로 중대하다는 점을 들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엄 부장판사는 10시간의 검토 끝에 사전구속을 결정했다.
박 전 대표는 어시장 소속 중도매인 2명의 파산으로 생긴 미회수 대금을 어시장의 대손충당금으로 보전해 법인에 경제적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는다. 중도매인은 어획물에 대해 어시장 측에 ‘어대금’을 낸다. 그런데 두 사람은 지난해 6월 파산해 돈을 갚지 못하게 됐다. 한 명은 중국에 삼치를 판매해오다 현지 구매자가 잠적하면서 큰 피해를 봤고, 다른 이는 경제적 사정을 이유로 돈을 갚지 않았다. 미수금은 약 20억 원이다.
해경은 박 전 대표 등을 상대로 지난해 7월 내사에 들어갔다. 같은 해 10월에는 공동어시장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수사 과정에서 박 전 대표는 대금 관련 보고·지시가 없었다고 말한 반면, 직원 일부는 ‘대표 지시대로 했다’고 진술하는 등 말이 엇갈렸다. 박 전 대표 측은 다툼의 여지가 크다는 입장이다. 한 소송대리인은 “한 중도매인은 대표이사 취임 때부터 (어대금 미납으로) 매수 한도 초과 상태였다. 이 과정에서 어떻게든 담보를 확보해 거래하며 미수금액을 줄였다. 대표이사가 착복한 것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표에 앞서 어시장 수장을 지낸 이주학 전 대표도 재임 말기인 2018년 11월 구속기소됐다. 그는 신규 채용·승진 시험·정규직 전환 때 특정인을 지목해 필기시험 문제를 유출하는 등 약 20명에게 편의를 주고 7100만 원을 받은 혐의가 인정돼 징역 2년 6개월이 확정됐다.
■대책 마련 나선 어시장, 개선될까
공동어시장은 유사한 사고가 계속 발생하자 신용한도를 도입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지난 수십년간 매수한도를 넘겨 위판물(수산물)을 매입하는 관행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다. 공동어시장은 중도매인의 편의를 위한 외상거래가 일상화되면서 매수한도를 넘기는 것이 다반사였다.
현재 중도매인이 어시장에서 경매를 통해 선사로부터 위판물을 구매하면 어시장이 먼저 선사에 대금을 당일 지급한 뒤, 중도매인이 15일 내에 어시장에 정산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 과정에서 외상거래가 빈번한 수산유통업계의 특성상 어시장이 임의로 매수한도를 정한다. 중도매인의 자산 등을 계산해 매수한도는 대략 1인당 1억~4억 원에서 형성돼 있다. 문제는 매수한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사실상 주먹구구식으로 제각각 정해진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매수한도를 넘기더라도 관행적으로 이를 용인해왔다. 그러다 이번 사건과 같이 중도매인이 파산하거나 어대금을 내지 않으면 담보물 처리 후 남은 금액을 어시장의 대손충당금으로 처리해왔다. 특히 명확한 내부 규정이 없다 보니 사고가 나면 어시장 직원들마저 징계 조치를 받는 일이 잇따랐다. 이런 사고로 2021년 직원 3명이, 지난해에는 2명이 각각 징계를 받았다.
이에 어시장 안팎에서는 신용한도를 명확하게 설정해 중도매인에 대한 외상 한도를 시스템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위판물 매수한도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고수온 등으로 수산업 불황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는 무리한 거래를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어시장 규정에 신용한도 관련 내용이 있지만 관행을 무시하기는 힘들어 사실상 사장돼 있었다는 게 어시장 측 설명이다. 과거 두 차례 이사회에 관련 안건을 올렸지만 모두 보류됐다. 공동어시장 관계자는 “관련 시스템을 재정비해 중도매인들은 매수한도를 넘겨도 일종의 외상으로 물량을 사고 팔던 관행을 바로잡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