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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655> 독립과 고립 ; 두 나라 삶 비교

  • 박기철 소락소암 암장·전 경성대 교수
  •  |   입력 : 2025-06-01 18:55:05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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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긴 나라는? 구글에서 검색하든, 인공지능에서 질문하든 답변은 똑같다. 칠레라고 뜬다. 틀렸다. 시각의 착각이거나 인식의 착오다. 폭이 좁기에 길게 보일 뿐 칠레보다 긴 나라는 많다. 캐나다 중국… 단연코 1위는 동서 길이 1만 km가 넘는 러시아다. 인도네시아도 칠레보다 길다. 수마트라섬 서쪽 끝에서 파푸아섬 동쪽 끝까지 동서 길이가 5120km다.

동티모르의 맨홀(점선 내)이 덮개가 없는 상태로 방치돼 있다.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했으나 국민의 삶은 여전히 빈곤하다.
필자는 이 길이 중 절반에 해당하는 약 2500km를 왕복했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티모르섬 국경 넘어 동티모르 수도 딜리까지 비행기 안타고 기차 버스 배로 갔다가 딜리에서 자카르타까지 버스 배 기차로 돌아왔다. 그야말로 현지인 삶속에 풍덩 들어갔다 나왔다. 37박38일 기행(紀行)을 유튜브 ‘글자따라 생각따라’ 93회부터 131회까지 매일 기록했다.

인도네시안은 신분증에 6개 종교(이슬람 힌두 불교 천주교 개신교 유교) 중 하나를 꼭 넣어야 한다. 종교의 자유는 있어도 무교의 자유가 없다.

사람들은 온화했다. 인도네시안이 큰 소리 치는 걸 본 적이 없다. 구걸하는 사람도 거의 본 적이 없다. 이 나라의 공식적 정체성은 국장(國章)에서 국조(國鳥) 가루다의 두 발톱이 쥐고 있는 글귀에 있다. 비네카 텅갈 이카(BHINNEKA TUNGGAL IKA). 이들 말로 다양성 속의 통합이다. 극단적 공산세력도, 극단적 이슬람세력도 없다. 좌우 구분도 흐릿해졌다. 세계시민국가가 생긴다면? 인도네시아가 가장 잘 이끌 것 같다.

1300여 민족과 700여 언어, 1만8000여 섬과 2억8000만 인구를 이끌며 극단화를 지양하고 절충화를 지향해온 이들의 신통한 통치실력 때문이다. 하지만 다양성 속의 통합이라는 인도네시아 국정철학을 무색케 한 전력이 있었다. 동티모르의 분리 독립이다. 인도네시아 전역이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반면에 대한민국 3분의 1 크기인 티모르섬의 동쪽 절반은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다.

1975년에 포르투갈이 물러나자 인도네시아는 동티모르를 하나의 주로 세웠다. 반발세력이 있었다. 군대를 보냈다. 아버지가 포르투갈 사람인 구스망(Xanana Gusmao 1946~)은 게릴라 독립투쟁을 이끌었다. 이 공적으로 그는 2002년 독립 후 초대 대통령이 되며 현직 총리다. 인도네시아 군대의 학살 만행을 전세계에 알리는 외교활동은 성공적이었다. 로마교황청과 UN을 움직였다. 이에 1996년 노벨평화상은 두 동티모르인에게 돌아갔다. 그 중 한 명이 역시 포르투갈계 혼혈인 오르타(Jose Ramos-Horta 1949~)로 2대 대통령이며 현직 5대 대통령이다.

인구 2억8000만 명 인도네시아에서 겨우 130만 명 동티모르가 독립했으니 0.005%가 이룬 기적이다. 대한민국에서 울릉도 동쪽 절반이 독립한 셈이다. 독립했으니 동티모르는 잘 살고 있을까? 독립했지만 고립된 채 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인도네시아로부터 생필품을 수입한다. 고위층 자식들은 인도네시아로 유학간단다. 수도 딜리엔 뚜껑없이 방치된 맨홀들이 많았다. 딜리 시내 유일한 최신식 재정부 건물 주변 시민 삶은 빈곤했다. 동티모르국립대학교 강의실도 열악했다.

무엇을 위한 독립이었을까? 왜 독립했나? 위정자들의 알량한 권력을 위한 독립이었나? 고립에서 벗어나 민생을 위한 독립이어야 할텐데…. 국민의 삶을 위하는 진정 탁월한 지도자가 나오기 전엔 국민의 삶이 편해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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