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운대 고층건물 사이 불던 바람
- 뒤쪽 시장까지도 확산 피해 커져
- 성인 남성이 몸가누기 힘든 강도
- 강풍 없는 날조차 자체돌풍 형성
- 예보 따른 예방책 소용 없어져
지난 7월 11일 부산 해운대구 중동 엘시티 일대. 한여름 맑은 날과 어울리지 않는 강한 바람이 빌딩 숲 사이를 빠르게 누볐다. 100층 넘는 초고층 빌딩이 바다 바로 앞에 우뚝 솟아있는 가운데, 그에 못지않은 ‘키다리’ 건물들이 이에 질세라 주변에 즐비했다. 그 사이를 돌풍인 줄 알았던 강풍이 지속적으로 건물들 주위를 에워싸듯 몰아쳤다.
해안을 찾은 관광객들은 옆사람과 대화하기도 어려운 강풍에 당황해 서둘러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등 자리를 피했다. 취재진과 이곳을 방문한 부산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과 연구팀은 “빌딩 사이에서 복합적 요인으로 만들어지는 하강풍이 불면 바람이 강력해서 성인 남성도 제대로 걷기 힘들 정도”라며 “5년 전 측정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궂은 날씨가 아니라도 바람이 세게 불면 태풍급 재난 수준의 강풍이 휘몰아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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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일 국제신문 취재진이 부산 해운대구 엘시티 일원에서 빌딩풍을 계측하고 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
■내륙까지 뻗어가는 빌딩풍흔히 빌딩풍은 해안가 고층 건축물 사이에서 주로 발생한다고 알려졌으나, 실상은 달랐다. 이미 내륙까지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으며, 태풍이 몰아치는 상황에서 여러 피해까지 본 점이 확인됐다. 부산 해안가의 바람길이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2020년 9월 해운대시장 상인들은 태풍 ‘마이삭’이 할퀴고 가면서 많은 피해를 봤다. 시장에 고정해 뒀던 물품들이 흔적도 없이 날아가거나 설치했던 시설물이 하루아침에 부서졌다. 특히 시장 인근에 지상 33층 규모의 고층 호텔이 2019년 준공하면서 바람이 더욱 거세진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 특성상 좌판을 펼쳐 장사를 하는 경우도 많은데 바람이 거세지면 이마저도 힘들다.
20년 넘게 장사를 했다는 한 상인은 “바로 앞에 고층 건물이 들어서기 전에는 시장 안까지 이렇게 바람이 거세게 들이닥친 적이 없었다”며 “강풍이 길을 타고 흘러 바람 피해를 보는 특정 구역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또 다른 상인은 “그간 태풍이나 비바람이 예보되면 예방책으로 했던 여러 조처들이 이제는 소용 없어졌다”고 호소했다.
시장 인근 호텔은 빌딩풍이 심한 엘시티와 직선거리로 570m가량 떨어져 있다. 또 바다와 바로 맞닿은 엘시티와 달리 해안과 건축물 사이에 다른 여러 고층 건물이 있는데도 강풍 피해가 발생했다. 피해가 있었던 곳도 호텔 바로 뒷골목으로 나타났다. 고층 건축물이 들어서면서 일으킨 연쇄작용에 빌딩풍의 영향이 내륙까지 확산하는 것이다. 마이삭 내습 당시 엘시티 일대는 풍속이 일반지역에 비해 최대 2.3배까지 빠른 것으로 관측되기도 했다.
■관광객도 ‘깜짝’… 고통받는 이들빌딩풍의 무서운 점은 태풍이 휘몰아치지 않아도 강한 바람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빌딩풍은 바람이 건축물과 건축물 사이의 좁은 통경축(조망 등을 확보하도록 시각적으로 열린 공간)을 지날 때 가속하는 현상으로, 기상 상황에 따라서 강도가 비약적으로 세질 수 있다. 빌딩풍 발생과 강도를 계산하는 공식은 복잡하지만, 요인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들어오는 바람의 세기, 건물 사이의 폭, 높이다.
강력한 바람이 빌딩풍의 우선 요인이지만, 강풍 수준이 아니라도 빌딩 환경에 따라 돌풍이 발생할 수 있다. 부산 최고이자 전국에서 손꼽히는 마천루인 엘시티와 마린시티 일대가 대표적이다. 엘시티는 높이 411m(지상 101층) 건축물이 3개 동이며, 우동 일대는 186~300m에 이르는 초고층 건축물이 8개 동에 달한다. 최저 236m부터 최고 303m 높이의 5개 동도 준공 전이거나 건축이 예정돼 있다.
이곳 인근 상인들을 비롯해 주민도 빌딩풍 위협에 따른 불편을 호소한다. 여름이면 해운대해수욕장을 찾으면서 이곳 일대를 방문하는 관광객이 많은데, 갑작스러운 돌풍에 곤란을 겪는다. 지난 7월 친구와 함께 서울에서 해운대해수욕장을 찾은 관광객 정모(29) 씨는 구경 삼아 엘시티 근처를 산책하다가 돌풍에 깜짝 놀랐다. 정 씨는 “바닷가라 바람이 불겠다고 예상은 했지만 제대로 걷기도 힘들 정도의 강풍이 불었다”며 “엘시티 바로 옆은 돌풍이 바닷가 모래까지 실어와 마시던 음료와 옷에 모래 알갱이까지 들어갔다”고 말했다.
■보이지 않는 순간의 재난, 빌딩풍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순식간에 지나간다. 일정 규모 이상이 아니면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이른바 ‘순간의 재난’이다.
일반적으로 풍속을 측정할 때 1분 평균 최대 풍속 위주로 결과를 보기 때문에 한순간의 강력한 돌풍은 좀체 드러나지 않는다. 특히 바람이 가속하는 빌딩풍은 강풍을 발생시키는데, 한순간의 바람에도 사람이 넘어지거나 외벽이 파손되는 등 유의미한 피해를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지자체는 이를 상시 관측하지 않아 순간 최대 풍속을 제대로 알기도 어렵다. 부산기상청이 2021년 엘시티 일대 세 지점에 관측장비를 설치해 빌딩풍을 측정하고 있지만, 연구용으로 설치한 까닭에 관측값이 대외적으로 공개되지 않는다.
부산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과 연구팀은 “0.1초의 순간에도 바람은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며 “일반화의 오류라고 순간적인 강풍을 무시하기보다는 충분히 위협적인 재난으로 여기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