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대한민국이 광복 80주년을 맞았다. 한반도에서 우리보다 앞선 시대를 살아간 세대의 처절한 투쟁과 노고로 이룩한 값진 결과물이다. 일제강점기 우리나라를 떠나 해외로 망명한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당시 망명은 개인의 거취를 단순히 옮기는 것을 넘어 조국의 독립을 위한 필수불가결의 선택이었다. 국내에서는 일제의 극심한 감시와 탄압 탓에 독립운동을 지속하기 어려웠고, 중국이나 미국 등으로 떠나 독립운동의 근거지를 마련하고 목숨을 건 투쟁을 펼쳤다. 이들이 당시 망명국에서 쫓겨났다면 과연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었을까. 아찔하다. 물론 이들은 1951년 국제사회가 마련한 난민 협정에 따른 난민은 아니지만 비슷한 처지였을 테다.
광복 후 수십 년이 흐른 지금 우리 국민은 개인의 양심과 인권 침해에 따라 해외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도 한다. 2009년 캐나다 이민난민심사위원회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였던 김경환 씨를 난민으로 인정했다. 김 씨는 자신의 평화주의 신념을 지키고 동성애자로 군대에서 겪는 인권 침해를 피하고자 캐나다로 망명을 신청했고, 캐나다가 이를 받아들였다. 당시 김 씨의 망명과 캐나다의 난민 인정은 우리 사회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독립운동가와 김 씨를 단적으로 비교하긴 어렵다. 다만 그들은 망명국에서 적어도 ‘기회’는 부여받았다. 한반도를 떠나 조국 독립을 위해 활동할 기회, 개인의 양심에 따라 난민으로 심사 받을 기회 말이다. 광복 80주년, 당당히 선진국 대열에 오른 지금의 대한민국은 아쉽게도 이러한 기회조차 인색하다.
지난 5월 조국혁신당 박은정 의원실이 법무부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 출입국항의 난민신청 회부 심사는 1096건이었는데 회부는 414건 불회부는 658건 신청 철회는 24건으로 집계됐다. 난민으로 인정받기 위한 심사 기회조차 박탈당한 비율이 60%에 달한다. 이 비율은 최근 들어 증가세다. 2020년 불회부율은 77%였다가 2021년 39% 2022년 38%로 감소하긴 했지만 2023년 71% 2024년 75%로 다시 높아지고 있다. 불회부 사유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난민 신청이 명백히 이유가 없는 경우(66.9%)’다.
최근 김해국제공항 출국대기실에서 5개월 가량 머물렀던 기니 국적의 한 난민 신청자도 우리 정부의 불회부 결정을 받아 난민 심사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법무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승소했다. 법무부는 항소를 포기했고, 이 난민 신청자는 이제 정식 난민 심사 기회를 얻었다. 그는 본국에서 군부독재 반대운동을 하다가 정치적 박해를 피하고자 자국을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말이 설득력 있는지는 기회를 가려내는 심사나 소송이 아닌 정식 난민 심사에서 다룰 일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무조건 기회를 주자는 게 아니다. 적어도 다툴 여지가 ‘명백히’ 있는 경우라면 기회를 주는 게 맞지 않을까. 늦긴 했지만, 기회를 주기로 한 법무부의 결단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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