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기념관은 1994년에 개관했다. 그 이름에 익숙해졌는지 무디어졌는지 그냥 그렇게 그러려니 한다. 세상에서 가장 폭력적인 전쟁을 기념한다? 흥분해서 시비를 걸자는 게 아니라 차분하게 옳음(是)과 그름(非)인 시비를 가릴 필요가 있다. 이름에 대해 논란은 있었지만 아직도 그 이름은 건재하다.
 |
| 기념을 기록으로 바꿔야 맞지만 |
국어사전에서 기념 기록 기억은 이렇게 정의되어 있다. ▷기념(紀念, 記念 memorial, commemoration): 어떤 뜻깊은 일이나 훌륭한 인물 등을 오래도록 잊지 아니하고 마음에 간직함. ▷기록(記錄 archive, record): 주로 후일에 남길 목적으로 어떤 사실을 적음. ▷기억(記憶 memory, remember):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냄. 이러한 사전적 정의는 우리가 오랫동안 단어를 사용하면서 지니게 된 언어적 관습의 소산이다. 이에 따르면 전쟁과 기념은 어울리지 않는다. 전쟁에서 참전용사를 기념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전쟁 그 자체는 기념할 만한 감동적 사건이 아니라 배척해야 할 참혹한 사건이다. 그래서 전쟁과 기념의 조합인 전쟁기념이란 말은 언어의 폐단, 어폐(語弊)다.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Korean War Veterans Memorial은 한국전이 아니라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기념하는 곳이다. 링컨 기념관(Lincoln Memorial)과 가깝게 있는 World War Ⅱ Memorial은 참전한 미국 군인들을 추모하는 곳이다. 미국인들이 전쟁과 관련해 쓰는 메모리얼(Memorial)에는 전사한 고인을 향한 추모나 현충의 의미가 배어 있다. 전쟁에 참전한 용사를 기념(Memorial)하는 곳이 아니라 전쟁 그 자체에 대한 기록물을 주로 전시하는 곳이라면 전쟁기록관이 맞겠다. 물론 기록관(Archives)만은 아니기에 전쟁박물관이 더 낫겠다. 하지만 박물관(Museum)은 예술적 학문적 흥미적 요소가 강하기에 전쟁과는 적합하지 않겠다. 전쟁기념관 설립 목적은 추모공간보다 대한민국을 지켜온 항쟁과 전쟁에 대한 기록의 수집과 보존이다. 이로써 전쟁을 예방하고 평화통일을 목적으로 하는 곳이다. 그렇다면 전쟁기억관이 좋겠다. 좀 어색하게 들린다면 전쟁역사관이 알맞겠다.
 |
한 국가가 기억하는 역사가 있듯이 한 개인에게도 기억하는 역사가 있다. 개인사(個人事)를 기억하는 개인사(個人史)다. 필자는 그런 개인사를 책으로 냈다. ‘박교수의 21년’이란 제목이다. 경성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로 21년간 재직하며 이룬 일들을 기록했다. ‘정년자축 기념문집’이라는 부제목을 달았다. 그런데! 책이 다 인쇄되어 나온 후 기념문집이라는 말이 내심 거슬렸다. 아무리 정년을 자축한다지만 내가 나를 기념하다니? 전쟁기념관처럼 어폐다. 남이 나를 기념해 주어야 기념이 기념답다. 기록문집이라고 했어야 했다. 심리학에서 인지부조화라는 게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중요한 행동을 하면 그 행동에 맞춰 자기합리화를 한단다. 이 책은 기록문집이 맞지만 이미 책이 발간되었기에 나는 기념문집으로 자기합리화를 하겠다. 그러니 나중에라도 기념문집이라는 부제목이 바뀔 것같지 않다. 마찬가지로 전쟁기록관 등이 맞지만 이미 전쟁기념관으로 각인되었기에 전쟁기념관으로 자기합리화를 하겠다. 그러니 나중에라도 전쟁기념관이라는 이름이 바뀔 것같지 않다. 웬만해선 그렇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