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훈청 “고엽제 탓인지 불분명”
- 1심, 심사 질타·유족 손 들어줘

월남전에서 당한 고엽제 피해로 파킨슨병을 앓다 숨진 참전용사를 두고 ‘고엽제 탓에 질병을 얻은 것인지 불확실하다’는 취지로 고엽제 후유증 환자 등록을 거부한 국가보훈청 보훈심사위원회 판단이 법원에서 뒤집혔다. 이 참전용사의 진료기록 감정을 맡은 의사는 “보훈심사위 의학 자문과 소견에 동의할 수 없다”며 심사 결과를 강하게 질타했다.

국제신문 CG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지법 행정단독 박민수 부장판사는 월남전 참전용사 A 씨의 부인 B 씨가 부산보훈청을 상대로 제기한 고엽제 비대상 결정 처분 취소 소송에서 B 씨 승소 판결을 내렸다. B 씨는 특발성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뒤 숨진 남편에 대해 부산보훈청이 고엽제 후유증 환자 등록을 받아들이지 않자 이번 소송에 나섰다. 파킨슨병은 고엽제로 인해 발병하는 대표적인 질환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A 씨는 1970년 6월부터 1년간 월남 전선에 섰다. 1977년 3월 전역했다가 머지않아 대장암을 얻었다. 암을 근거로 A 씨는 고엽제 ‘후유의증’ 환자로 등록됐다. 고엽제 피해자는 ‘후유증’과 ‘후유의증’ 환자로 나뉜다. 고엽제 성분 탓에 질병이 생긴 사실이 증명되면 후유증, 발병 원인으로 의심은 되지만 분명치 않으면 의증이다. 후유증 환자는 국가유공자 예우와 지원을 받는다. 의증 환자는 ‘고엽제법’ 대상자로 혜택 수준이 비교적 떨어진다.

파킨슨병은 그의 생애 말년에 발현됐다. 2016년부터 걷기 어려워졌고, 2018년 들어서는 인지기능이 떨어졌다. 2022년 6월엔 부산대병원에서 ‘특발성 파킨슨병 또는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특발성’은 파킨슨병 발병 사유를 콕 집어내기 어려울 때 쓰이는 표현으로, 고엽제 후유증 등록 대상이다. 고엽제가 아닌 약물이나 뇌 질병 등 원인이 분명한 원발성(이차성) 파킨슨병 환자는 제외된다.

A 씨는 병 진단 이듬해 8월 숨졌다. 부인 B 씨는 지난해 1월 남편의 후유증 환자 등록을 신청했다. 보훈심사위는 같은 해 8월 A 씨가 후유증 지원 대상자가 아니라는 결정을 내렸다. 특발성 파킨슨병의 주된 증상인 안정시 떨림 같은 징후가 없었다는 이유였다. 또 A 씨가 뇌경색증을 함께 앓았고, 치매 증상도 호소했다는 점을 들어 ‘의증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고엽제가 아니라 지병이 파킨슨병을 낳았다고 볼 수 있지 않느냔 거다.

B 씨는 그 해 10월 소송에 나섰고, 법원으로부터 진료기록 감정을 촉탁받은 신경과 의사는 “특발성 파킨슨병이 맞다”며 소견을 적극 피력했다. 그는 A 씨가 보인 증상이나 도파민 약제에 호전되는 모습이 영락없는 파킨슨병 환자라고 설명했다. 또 보훈심의위가 등록 거부 사유로 꼽은 ‘안정시 떨림’은 전체 환자의 50~60%만 나타내는 증상으로, 필수 진단기준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 의사는 “보훈심사위 심의 시 이뤄진 의학 자문과 소견은 동의할 수 없다”며 “파킨슨 증상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원인은 확인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A 씨의 주치의 또한 감정 결과에 부합하는 소견을 냈다. 이 같은 점을 근거로 박 부장판사는 “보훈심사위의 심사소견 및 의학자문 결과는 감정결과에 배치돼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올 들어 지난 8월까지 접수된 보훈심사위 고엽제 후유증 심사 대상자는 모두 6833명으로, 5937명이 심사 결과를 받았다. 이들 중 ‘기준미달’, 즉 후유증으로 인정받지 못한 이는 1494명(25.1%)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