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대 ‘천지삐까리’던 잘피
- 산소 공급·수질 정화 해초지만
- 갯벌매립 탓 서식지 대부분 훼손
- 하굿둑 열자 다시 자라기 시작
- 애기거머리말 338㏊ 국내 최대
- 타 지자체선 복원사업까지 벌여
- 市 차원의 군락 보존 노력 필요
“낙동강 하구 을숙도 남단은 잘피의 한 종류인 애기거머리말의 전국 최대 군락지로 추정됩니다. 부산의 블루카본(해양 탄소 흡수원·Blue Carbon) 핵심 거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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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낙동강하구에코센터 박희순 박사가 을숙도 남단 개방형 기수 습지에 자라난 좀매자기 군락지를 살펴보고 있다. 수면 아래에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공식 인증한 해양 탄소 흡수원 ‘블루카본’인 잘피가 깔려 있다. 낙동강하구에코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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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시 경남대 연구실에서 김구연(MSC교육부 교수) 생물다양성센터장이 이같이 말했다. 김 교수는 낙동강 하구를 찾은 큰고니와 고니가 좀매자기(옛 새섬매자기)의 괴경(덩이줄기)을 먹는다는 사실과 좀매자기 성장에 봄철 낙동강 하구의 염분 농도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처음 밝혀낸 낙동강 하구 습지 연구의 권위자다.
■사라진 부산 ‘바다 숲’김 교수가 주목하는 ‘다음 타자’는 잘피다. 잘피는 맹그로브 숲, 염습지와 함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공식 인증한 해양 탄소 흡수원 ‘블루카본’이다. 블루카본은 바다와 습지 등 해양 생태계가 흡수하는 탄소로, 육상의 탄소 흡수원인 그린카본(Green Carbon)보다 흡수 속도가 50배 빠르고, 저장 능력도 5배 이상 높다. 이러한 생태적 중요성이 재조명돼 최근 부산시와 경남 남해군, 전남 여수 등 여러 지자체에서 ‘잘피 숲’ 복원 사업을 벌이는 등 큰 관심을 받고 있다.
과거 잘피는 낙동강 하구 갯벌에 ‘천지삐까리’였다. 김 교수 연구에 따르면 1980년대 전반까지 강서구 해역에 1362㏊에 달하는 거머리말 서식지가 존재했다. 이는 축구장 1900개를 세울 수 있는 광활한 크기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잘피는 총 9종으로 그중 낙동강 하구에는 거머리말과 애기거머리말, 줄말과 새우말이 자생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잘피는 살 곳을 잃었다. 주거 단지와 산업단지를 짓기 위한 갯벌 매립과 1987년 하굿둑 건설로 낙동강 하구 환경이 달라진 탓이다. 해류 흐름이 바뀌고 기수역이 담수(민물)로 변해 더는 잘피가 살 수 없는 곳이 됐다.
2000년대 초 눌차도와 진우도 사이 약 300㏊의 거머리말 서식지만 간신히 남았고 이후 잘피 서식지는 대부분 훼손된 것으로 보고됐다.
■국내 최대 서식지 영영 자취를 감출 줄 알았던 잘피가 최근 낙동강 하구 갯벌에서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 을숙도 개방형 기수 습지 복원과 하굿둑 개방 등에 따른 영향이다. 김 교수 연구팀이 2023년 6월 드론 항공사진으로 촬영한 결과 총 서식 면적은 432.5㏊로 거머리말과 애기거머리말, 줄말 등이 넓게 분포했다. 특히 애기거머리말 분포 면적은 338.2㏊로 전체 잘피 면적의 78.2%를 차지했다. 이는 그동안 국내에 보고된 애기거머리말 면적 가운데 최대 규모다. 지역별로 보면 을숙도 최남단이 122.6㏊로 가장 많았고 대마등(71.2㏊)과 명지 갯벌(52㏊)이 뒤를 이었다.
국내 최대 애기거머리말 서식지에 맞춰 활발한 연구가 필요하지만 낙동강 하구에서는 아직 찬밥 신세다. 대규모 겨울 철새 도래지라는 특성에 따라 잘피가 좀매자기처럼 겨울 철새의 먹이원이 될 수 있을지를 연구한 정도다. 북유럽에서는 고니류가 잘피를 먹는다는 연구가 있으나 낙동강 하구는 겨울철에 잘피 잎이 녹아 없어지는 탓에 먹이로 이용하기엔 어렵다.
다만 김 교수는 잘피의 존재 가치를 겨울 철새의 먹이원으로 두는 관점에는 의문을 표한다. 낙동강 하구 기온이 갈수록 올라가는 상황에서 ‘블루카본’ 잘피 군락지는 천문학적 가치를 지닌다. 게다가 낙동강 하구의 잘피는 산소를 공급하고 퇴적물 침식을 막아 수질을 정화한다. 또 다양한 어족 자원의 산란장이자 치어의 서식처로 습지 생태계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등 다재다능한 일을 한다.
김 교수는 “완전히 물에 잠겨 있는 형태로 서식하는 다른 잘피와 달리 애기거머리말은 조수간만의 차이가 큰 기수역 연안 등에서 관찰할 수 있어 희소성이 높다”며 “잘피 서식지의 경제적·생태적 가치를 환산하는 연구가 이뤄지는 동시에 국내 최대 서식지를 보호하는 노력을 동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걸음마 단계 연구 낙동강 하구 생태 전문가들은 앞으로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하구 생태계의 변화를 분석하는 연구가 꼭 필요해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관련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다. 부산연구원 여운상 선임 연구원이 지난해 출간한 ‘기후 위기 적응형 낙동강 하구의 생태적 관리방안’ 보고서로 첫발을 뗀 정도다. 그나마 국제신문 ‘낙동강 하구 0.9도의 경고’ 기획을 계기로 부산시가 최근 수립 중인 ‘낙동강 하구 일원 환경관리기본계획’에 기후 위기에 따른 생태계 변화 연구를 검토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낙동강 하구는 분명한 구조 신호를 보내고 있다. 어쩌다 한 번 생기는 이례적인 일, 별일 아니라고 치부하는 사이 낙동강 하구를 보호할 적절한 시기를 놓칠지 모른다.
겨울 철새가 낙동강 하구에 한 달이나 늦게 도착하고 쇠제비 갈매기는 주된 먹이인 멸치가 고수온 때문에 사라져 고향을 잃었다. 아열대 지방에 주로 사는 검은이마직박구리와 후투티는 이제 하구 텃새로 자리 잡았다. 낙동강 하구 대표 어종이던 숭어는 코빼기도 안 보인다.
여운상 선임 연구원은 “2003년부터 낙동강 하구 생태계 모니터링을 하고 있지만, 단순한 집계 수준에 그친다. 방대한 미가공 데이터를 토대로 추적 연구가 필요하다”며 “낙동강 하구의 기온 상승과 뚜렷한 생태계 변화에 이제는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고 강조했다.
▶인터랙티브 페이지 ‘낙동강 하구 0.9℃의 경고’(little-tern.kookje.co.kr)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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