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어사·산성마을, 부정적 인식
- 사유지 79% 달해 지정 하세월
- 市 상생방안 용역·주민 공청회
- 강행 아닌 설득으로 지지 얻어
- UN공원 일대 규제 완화 목소리
- 국제관리위 “상징성 훼손” 반대
- 최소 개발 등 조정안 수년 설득
- 경관지구 해제 ‘동의’ 이끌어내
과거 부산의 도시개발은 ‘불도저’식이었다. 이해관계가 복잡해 실마리를 풀기 어려운 일이라도 일단 재빠르게 밀어붙이고 봤다. 이른바 불량주택으로 불린 원도심 판자촌을 싹 들어내고 정착민을 시 외곽으로 이주시킨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에는 이런 불도저식 행정이 ‘속도전’이나 ‘용단’ 같은 말로 꾸며졌다. 아무 것도 없는 땅으로 강제이주돼 살길이 막막해진 이들은 선의의 행정에 뒤따르는 부수적 피해자처럼 취급됐다. 행정이 시민 위에서 군림했고, 대화보다 대의가 우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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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시가 남구 유엔기념공원의 관리 주체인 재한유엔기념공원국제관리위원회와 일대 경관지구 현장을 돌며 규제 완화 필요성을 설득하고 있다. 부산시 제공 |
시민의식이 높아진 오늘날, 행정기관의 ‘추진’은 더 이상 ‘밀어붙임’을 뜻할 수 없게 됐다. 행정 사업에 얽힌 주민과 충분히 대화하는 것, 오랜 시일이 걸리더라도 지역사회 전반이 필요성에 공감하도록 설득하는 일이 됐다. 얼기설기 꼬인 문제더라도 대화와 설득으로 한 가닥씩 풀어나가야만 피해를 줄이고 지역사회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금정산 국립공원에 들인 10년민선8기 부산시정은 꾸준한 설득으로 지역의 난제를 풀어왔다고 자평한다. 금정산 국립공원 지정이 대표적이다. 부산의 진산인 금정산을 국립공원으로 만들자는 여론이 처음 물살을 탄 건 2005년이다. 금정산은 자연 생태계의 보고라 할 만큼 수많은 식생을 지닌 데다, 문화유산 또한 총 127점이 분포해 어느 국립공원보다도 많은 수를 자랑한다. 또 지역주민이 대중교통은 물론 걸음으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었다. 다만 시내 6개 자치구와 양산시 등 여러 지자체에 걸쳐있는 터라 통합적 관리에 애로가 컸다.
금정산 국립공원 지정을 향한 시민의 열망은 컸다. 이는 2014년 국립공원 지정을 바라는 10만 명 시민 서명운동이 전개되며 본격화했다. 2019년엔 시가 환경부에 정식으로 국립공원 지정을 건의하며 공개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문제는 금정산에 얽힌 이해관계자가 너무 많았다는 점이다. 금정산은 사유지의 비중이 79%(52.87㎢)에 달한다. 특히 범어사는 오랜 기간 그린벨트 해제 등을 요구하며 금정산 국립공원 추진에 반대해왔다. 범어사를 비롯한 사유지 소유자들은 국립공원 지정이 일대 발전을 방해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반대 의사가 강했던 범어사와 산성마을(금정구 금성동)의 마음을 돌리는 데 시는 10년을 들였다. 먼저 시는 금정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더라도 이들이 소외되지 않고 지정 효과를 함께 누릴 수 있는 방안을 찾고자 용역을 꾸렸다. 특히 범어사에는 수행 환경 보전과 산불 예방을 위한 숲길·탐방로 개설을 지원하고, 개발제한구역 해제를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해 12월엔 주민설명회·공청회를 열어 시민과 전문가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금정산 국립공원 지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노력에 범어사 등도 결국 마음을 열었다.
금정산은 내년 상반기 전국 24번째 국립공원이 된다. 시 관계자는 “높은 사유지 비율 등으로 불가능이라 여겼던 난제들을 끊임없는 대화와 소통, 상생·협력을 통해 대타협을 이뤄낸 공공정책의 모범사례”라고 말했다.
■국제사회 설득해 UN공원 제한 풀어지난달 23일엔 국제사회를 설득해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 주변에 붙은 오랜 규제를 풀어내기도 했다. 유엔기념공원 주변은 용도지역상 제1종 일반주거지역, 용도지구상 특화경관지구, 자연경관지구로 지정돼 있다. 공원 일대 26만 ㎡에 아파트 4~5층 높이 수준인 고도제한 12~15m가 적용돼 지역 성장이 상당히 지체됐다. 이런 사정에 공원 근처 대연·용당동 주민을 중심으로 건축 규제 완화 요구가 점차 커져갔다. 경관지구 해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규제를 풀려면 유엔기념공원국제관리위원회(CUNMCK) 동의가 필요하다. 공원 내 묘지는 1951년부터 조성됐는데, 한국이 유엔에 영구 기증했다. 이후 진행된 유엔 총회에서 공원의 관리자로 국제관리위원회를 지정하기로 결의됐다. 1959년 맺은 한국-유엔 간 협약에선 농업·주거 등 묘지 존엄성을 훼손하지 않는 영역에서만 일대를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됐다. 이후 1971년 처음 경관지구가 지정된 이래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땅의 용도를 바꾸거나 기준을 완화하려면 국제관리위원회의 합의가 필요해 주민 요구를 들어주기가 어려웠다.
시는 2021년부터 유엔기념공원 주변 지역의 정비와 경관지구 조정 필요성을 국제관리위원회에 전달하며 협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묘지 존엄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탓에 수년간 지지부진한 국면이 이어졌다. 상황 타개를 위해 시는 지난해 7월부터 남구와 함께 직접 합의 과정에 참여해 실무 논의를 주도, 유의미한 성과를 얻고자 했다.
구체적으로 시는 유엔기념공원의 존엄성과 상징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도시 기능 회복과 주거환경 개선을 병행하는 합리적인 도시관리계획 조정안을 마련하겠다고 설득했다. 경관지구 해제와 같은 규제 완화는 주민의 주거환경개선이 필요한 최소 범위 내에서 추진하고, 이 과정에서 국제관리위원회의 요청사항을 반영하겠다고 약속했다. 더불어 공동주택의 무분별한 난립은 경계하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각고의 설득 끝에 시는 국제관리위원회의 동의를 얻었다. 경관지구 해제에 대해 국제관리위원회 관계자는 “대한민국의 경제적 번영과 지역의 발전은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참전용사들이 바친 희생의 가치를 증명하는 산 증거라는 점을 깊이 인식한다. 본 계획이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뜻을 더욱 빛내는 방향으로 추진되길 기대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유엔기념공원 주변 경관지구 해제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도시 기능과 주거 환경이 동시에 개선될 것으로 시는 전망한다. 또 2026년 세계유산위원회 제50차 총회 부산 개최를 앞두고 유엔기념공원일대 정비와 주변 도시환경 개선에 긍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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