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들의 안식처 역할을 했던 부산 동구의 소위 ‘게이 거리’가 아파트 재개발로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지난 20일 오후 부산 동구 범일동 범일2재개발구역의 한 게이 바에서 철거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백창훈 기자

지난 21일 부산 동구 범일동 범일2주택재개발구역. 1차선 이면도로를 중심으로 양옆의 상업시설 외벽은 철거를 알리는 ‘X’ 자와 함께 ‘출입금지’ ‘주차금지’ 문구가 붉은색의 페인트로 곳곳에 표시돼 있었다. 업주들이 두고 간 김치냉장고와 제빙기 등이 거리에 어지럽게 놓여 있어 철거가 임박했음을 실감케 했다.

이곳은 부산에서 유일한 성소수자들의 공간이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가라오케·오뎅바 등 동성애자를 위한 업소 30곳이 성행했다. 업소 대부분이 특별한 공간임을 알리기 위해 ‘멤버십’ 안내판을 붙이고 영업을 이어 나갔다.

동성애자가 이곳을 자주 찾게 된 데는 과거 인근에서 영업했던 극장의 영향인 것으로 알려진다. 부산 지역 동성애자들은 인근 삼성극장(2011년 폐업)·보림극장(2007년 폐업)에서 주로 만났는데, 최초 이들 극장 근처에서 영업했던 가게들이 극장 폐업 등을 이유로 점차 인근의 월세가 낮은 가게로 옮겨가면서 현 위치에 자리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부는 인근에서 영업을 재개할 움직임도 보인다. 범일동 조방타운에서 만난 업주 A 씨는 “지난 9월 이곳으로 옮겨 와 영업 준비 중이다. 재개발 구역에 있던 일부 가게는 이미 근처서 영업 중으로 안다”면서도 “예전처럼 가게가 가깝지 않아 서로의 사정은 잘 모른다”고 말했다. 소외된 성소수자의 안식처 역할을 한 거리였던만큼 대체할 만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재개발지역 인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모(60대) 씨는 “2000년대 초부터 동성애자들이 자주 보였다. 다른 손님들과 크게 다를 것 없이 조용히 머물다 돌아갔다”며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이곳을 찾은 것일 텐데, 이들을 위한 거리가 새롭게 조성될 필요도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