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연말예정 연수 대부분 취소
- “목적 불분명 외유성 자인한 셈”
해외 정책 연구라는 본래 목적 대신 ‘술 파티’와 같은 외유성 출장으로 비판받아온 기초의회 공무해외연수를 두고 부산지역 구·군의회 상당수가 출장 계획을 취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책 연구’에 충실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대신 논란을 피하고자 아예 출장 계획 자체를 없애는 현상에 대해 시민사회와 전문가는 “면피용 결정”이라고 질타했다.
27일 국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부산지역 구·군의회 대부분은 올해 예정된 공무해외연수를 취소했다. 지난 5일부터 7박 9일 일정으로 이탈리아로 간 수영구의회와 지난 9월 21일부터 6박 8일 출장을 다녀 온 동래구의회, 지난달 26일부터 지난 2일까지 두 팀으로 나눠 베트남을 방문한 사하구의회를 제외한 나머지 13개 지방의회가 연수 계획을 취소했다. 대부분 의회가 보도자료 등을 통해 출장 예산 반납을 홍보했고, 부산진구의 경우 출장 예산을 민생쿠폰 구비분으로 돌렸다고 ‘셀프 칭찬’했다.
이는 기초의회 해외 연수에 외유성이 짙다는 지적에 ‘눈치’를 본 조처다. 기초의회 공무해외연수는 과거 구·군의회 의원이 무보수 명예직으로 일할 때부터 관례화했다. 해외여행이 어렵던 시절, 월급 없는 기초의원에게 해외 정책 연구를 장려하려면 세금을 들여 해외로 보내줘야 했다. 그러다 1994년 의정활동비가 신설됐다. 2006년엔 기초의원 월급 격인 월정수당이 도입됐다. 뜻만 있다면 자력으로 해외 연수를 갈 만한 사정이 됐지만, 출장 예산은 관습처럼 매년 편성됐다. 돈 있으니 일단 쓰고 보자는 인식이 퍼졌고, 외유성 출장이 빈번해졌다.
‘외유’라 지적받는 주된 이유는 출장 목적과 실제 방문지에 연관성이 없다는 점이다. 계획서엔 도시재생을 연구하겠다고 적혔으나 실제로는 마천루가 밀집한 상업가만 방문하고 오는 식이다.
속을 살펴보면 더욱 심각하다. 서부산 소재 한 기초의회는 과거 해외에서 ‘술 파티’를 벌일 생각에 의회 직원을 시켜 소주를 팩에 분배해 담도록 지시했다. 기내 액체 수화물 규정 때문으로, 출장 당일 의원들은 봉지에 팩을 넣어 수화물 검색을 통과했다. 해당 의회는 출장 뒤 작성해야 할 보고서를 여행사에 위탁 작성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 출장을 다녀온 의원들이 의회 직원에게 보고서 작성을 떠맡긴다는 것은 대부분 지역에서 공공연한 사실이다.
결국 중앙정부가 제동을 걸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26일 ‘지방의원 임기만료 전 외유성 공무국외출장 방지 대책’을 냈다. 임기가 1년 이하로 남으면 외국정부 초청 등 불가피한 경우에만 출장을 허용하고, 일반 국외 출장은 긴급성과 출장결과 활용 가능성 등 요건 충족 시에만 의장이 허가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행안부는 지난 1월에도 출장계획서 사전 공개, 출장 후 심의 의무화 등을 도입했다. 지난해 12월엔 국민권익위원회의 기초의회 실태점검에서 항공권 위·변조, 경비 부풀리기 등이 지적돼 전국 다수의 기초의회가 수사의뢰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초의회들이 ‘목적에 충실한 출장’을 약속하는 대신 ‘출장 포기’를 결정한 건 여론 면피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부산참여연대 양미숙 사무처장은 “해외에 나가지 말라는 게 아니다. 그곳에서 공부한 바를 주민에게 성실히 설명하고 구정에 적극 반영하라는 것이다”며 “해외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고민하기 전에 일단 예산이 있으니 쓰고 보자는 식의 출장은 피하고, 실질적 효과를 가져올 출장을 계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는 해외 출장의 결과물인 보고서 작성·공개에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고 주문한다. 동아대 김형빈(행정학과) 교수는 “보고서의 내용 자체도 부실하지만, 보고서가 구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출장에 간 의원이 직접 개별 보고서를 쓰도록 하고, 그 결과를 설명회 등을 통해 주민에게 공개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