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대 부인, 진정서 9차례 제출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고 싶다는 내용의 유언을 남긴 남편을 위해 80대 노인이 홀로 남아 외로이 사투를 벌이고 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까닭에 진행 중이던 소송도 종결됐는데, 이를 몰랐던 노인은 수 년째 선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한다.

16일 국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이정희(80대) 씨는 최근 숨진 남편 김주득(사망 당시 79세) 씨를 공상군경으로 인정해달라는 취지의 진정서를 대통령실에 9번째로 제출했다. 부산보훈청은 잇따른 민원의 내용이 동일한 것으로 보고 답변을 생략하고 있다. 김 씨는 1959년 10월 육군으로 입대해 제1군 사령부 장성식당 요리사 보직을 받았다. 군 복무 중 식단관리 장교의 부주의로 휘발유 통에 불이 붙는 것을 발견, 식당뿐만 아니라 목조로 된 사령관실과 인근 민가까지 불이 번질 것을 우려해 휘발유 통을 끌어안고 바깥으로 뛰쳐나왔다. 큰 화재는 막았으나, 김 씨는 온몸에 화상을 입고 군 병원에 후송됐다. 그리고 결국 1년 뒤 의병 전역했다. 이후 그는 1978년부터 2014년까지 세 차례 육군본부에 ‘공상’을 신청했고 마지막 해에 인정받았다.

그러나 김 씨는 2015년 보훈보상대상자 7급 판정에 그쳤다. 보훈보상대상자는 국가의 수호나 국민의 생명·재산 보호와 직접적인 관련 없는 직무수행 중 다쳐 전역하거나 퇴직한 사람으로, 순직·전상군경에 포함되는 국가유공자와는 다르다. 이에 김 씨는 육군본부를 통해 인정받은 공상 결정 등을 토대로 부산보훈청을 상대로 판정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육군본부는 화재 당시 군 관계자의 진술 등을 참고해 식당 간부의 실수로 화재가 발생,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김 씨가 다쳤다는 사실을 인정해 공상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김 씨는 안타깝게도 소송 중 급성 심장사로 숨졌다. 생전엔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아 명예로운 군인이었다는 것을 후손에게 꼭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소송은 당사자가 숨지면서 종결됐다. 이러한 사실을 국제신문 취재를 통해 알게 된 이 씨는 “믿을 수 없다”며 현실을 부정하고 있다.

국가보훈부 관계자는 “육군에서 공상으로 인정했다고 해도 국가유공자는 관련 법에 따라 인정하기 때문에 우리 기관에서 다시 심사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씨는 “이재명 대통령께서 올해 보훈의 달을 맞아 보훈대상자 중 ‘공상’ 처리가 안 된 사람도 인정해 주겠다는 말을 듣고 다시 진정서를 제출하기 시작했다”며 “숨진 남편의 유언을 토대로 재심의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