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방 자립은 ‘국가 프로젝트’
- PK 2028년 로드맵은 무책임
- 권역 규모·성과별 인센티브를
- 재정 사용처 사회적 합의 필요
- 리더 결단과 통합 기본법 촉구
- 주민투표 실시 여부도 의견차
수도권 일극 체제 가속화로 지역 소멸의 위기가 현실화하면서, 부산과 경남의 미래를 결정지을 ‘행정통합’ 논의가 중대 갈림길에 섰다. 11일 국제신문과 부울경포럼이 공동 주최한 긴급토론회에서는 국립부경대 이재원(행정복지학부) 교수를 좌장으로 학계·정계·시민사회 전문가들이 모여 행정통합의 당위성과 추진 전략, 이를 둘러싼 쟁점을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이들은 부산·경남 행정통합이 단순히 행정 구역을 합치는 작업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토 이용 지도를 다시 그리고 지방의 자립 생태계를 구축하는 ‘국가 프로젝트’라는 점을 재확인했다. 시기와 방법론에 차이는 있었다. 그러나 ‘이대로는 공멸한다’는 절박함만큼은 같았다.
■“국가 시스템 구조적 변화 필요”
첫 토론자로 나선 김영재 부산연구원장은 현재를 ‘AI 시대이자 기후 위기 시대’로 정의하며, 과거의 관성으로는 현재의 위기를 타개할 수 없음을 강조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에서 최근 14위권으로 밀려난 점을 언급하며 “기존 국가 시스템의 한계에 봉착했다”고 진단했다. 김 원장은 “행정통합은 단순한 구역 조정을 넘어선 국가 시스템의 구조적 변화”라며 20년 넘게 논의만 반복된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최소 10년 단위의 ‘중장기 로드맵’과 독립성과 자율성을 지닌 ‘통합 추진 기구’ 설치를 제안했다.
오동호 경남연구원장은 이제 ‘통합 여부’에 대한 합의는 끝났으며, 핵심은 ‘방법론’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방정부가 자율권을 갖고 지역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체제로의 전환이 요체”라고 설명했다. 시기에 대해서도 2026년 2028년 2030년 등 여러 안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실행력’임을 강조하며 정치의 영역에서 행정의 영역으로 논의를 전환해 구체적인 설계를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오 원장은 재정 인센티브와 관련해 지역별 규모 차이를 고려한 섬세한 접근을 주문했다. 그는 “대구·경북이나 광주·전남에 비해 부산·경남의 재정 규모가 월등히 큰 만큼, 일괄적인 액수 제시보다는 지방재정 구조 자체를 개편하는 특별법 추진이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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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신문과 부울경포럼이 주최한 ‘부산·경남 행정통합 긴급 토론회’가 11일 부산 연제구 ‘하얏트플레이스 부산 연산’에서 진행되고 있다.
김동하 선임기자 kimdh@kookje.co.kr |
■“초광역 경제권은 생존 전략”
정현민 부산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은 행정통합을 ‘초광역 경제권’ 형성을 위한 국가적 생존 전략으로 봤다. 그는 중국의 장강 삼각주 경제권 형성 현장을 목격했던 경험을 공유하며 “개별 행정구역 단위의 분열적 정책으로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기술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다만 “인센티브가 단순한 축하금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광역사무 처리 성과에 따라 단계적으로 지원하는 원칙을 도입해 행정의 효율성을 담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현장에서 작동하는 세 가지 원칙으로 ▷국가 차원의 포괄적 권한 이양과 지역 특수성을 고려한 ‘포괄성 및 보충성의 원칙’ ▷특별지방자치단체를 선제적 실행 엔진으로 활용하는 ‘실행 효과성의 원칙’ ▷성과에 따라 재정을 단계적으로 지원하는 ‘성과주의 원칙’을 제안했다.
반면 이준호 부산시의원은 정부의 ‘속도전’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마산·창원·진해 통합 사례를 언급하며 “우선 통합하고 보자는 식의 접근이 얼마나 큰 사회적 갈등을 초래하는지 목격했다”고 지적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급하게 추진하기보다,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상세한 가이드라인과 재정 사용처에 대한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지방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 통합은 진정한 지방분권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도한영 부산경실련 사무처장 역시 재원 마련의 불투명성과 역차별 문제를 제기했다.
20조 원이라는 거액의 재원을 어디서 확보할 것인지, 통합하지 않는 지역과의 형평성은 어떻게 맞출 것인지에 대한 답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또한 주민에게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은 채 추진되는 점을 비판하며 “시민과 주민이 참여하는 과정을 더 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원식 전 부산경남행정통합 공론화위원회 경남공동위원장은 주민 주권을 강조했다. 그는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밀어붙이기식은 순행이 아닌 역주행”이라며, 지방자치법상 명시된 주민투표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단순히 돈을 받는 것보다 영양가 있는 자치권을 가져오는 것이 중요하며, 민주주의 가치는 재정 지원보다 선행되어야 함을 분명히 했다.
반대편에 선 반선호 부산시의원은 지금이 지방의 권한을 가져올 절호의 기회이며, 골든타임을 놓치면 미래 세대에게 폐허가 된 지역을 물려주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부산 인구가 30년간 60만 명 줄었다. 이건 개별 도시 정책의 실패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다. 우리끼리 경쟁하는 사이 수도권은 비대해졌다”고 비판했다. 이어 “배고픈 부산시민에게 28년까지 기다리라는 것은 무책임하다”며 정부가 제시한 20조 원의 인센티브와 국세·지방세 분권 의지를 ‘절호의 찬스’로 규정하며, 선제적 통합을 통해 법적·제도적 지위를 확보한 후 중앙정부와 협상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고 역설했다.
■“28년은 늦다…폐허만 물려줄 것”
전호환 전 부산경남행정통합 공론화위 부산공동위원장 역시 “상황이 급변했고 이제는 생존을 위해 신속히 배를 띄워야 할 때”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43차례에 걸친 공청회 경험을 언급하며, 현재의 논의가 단순히 행정을 합치는 수준을 넘어 ‘지방대학의 소멸’과 ‘인구 붕괴’라는 절벽 앞에 서 있음을 경고했다. 전 전 위원장은 “부산대 총장 시절부터 부울경 통합을 주장했던 이유는 80년 뒤 미래를 결정할 아이들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대학 10개 중 8개가 문을 닫아야 하는 참혹한 현실 앞에서 ‘신중론’만 외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 변해온 통합 논의를 비판하며 “리더는 상황이 변했을 때 과거의 결정을 수정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며 “과거 메가시티나 경제동맹에 머물렀던 판단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믿는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통합의 걸림돌로 지목되는 명칭 문제와 절차적 복잡성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4개 광역단체가 각자 특별법을 들고 나오면 중앙정부가 어떻게 감당하겠느냐”며 “지방자치법 기본법에 통합의 근거를 담고, 대통령이 직접 9개 시장·도지사와 앉아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그는 “합천의 한 해 출생자가 69명에 불과한 현실은 더 이상 기다릴 여유가 없음을 증명한다”며 “이번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경수 지방시대위원장은 토론회 내내 제기된 “재정 지원을 왜 통합의 조건으로 하느냐”는 비판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그동안 시·도별로 예산을 나눠주던 방식은 결국 지역을 살리는 데 실패했다”고 진단하며, 이번 행정통합 지원금은 단순한 보조금이 아닌 ‘혁신에 대한 투자’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중앙정부가 돈과 권한을 주고 싶어도 지방이 시·도별로 쪼개져 있으면 행정 효율이 나지 않는다”며 “권역별로 최소한의 생활권과 경제권을 갖춘 ‘체제’를 지방이 먼저 갖춰달라는 것이 정부의 요청”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우려에 대한 대안으로 ▷5년간 20조 원 규모의 파격적 재정 인센티브 ▷대규모 여론조사와 사회적 합의를 통한 주민 동의 확보 ▷대통령이 직접 약속한 특별지방행정기관(노동·환경·국토관리청 등)의 완전한 이양을 제시했다. 특히 “대통령이 통합 시 권한 이양을 약속하셨고, 기획재정부 역시 ‘초광역 계정’ 신설을 통해 재원 마련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다”며 정부의 강한 의지를 전했다.
토론회를 마무리하며 좌장인 이재원 교수는 “결국 시민의 눈높이와 신뢰가 핵심”이라며 “행정 중심의 논의를 넘어 시민이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통합 성공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