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녹지훼손·법적문제 등 제한 많아
한국 4대 민주항쟁이자 부산시민의 민주 정신을 상징하는 대표적 거사 ‘부마민주항쟁’이 수 년째 기념관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기념관 최적지를 찾기 위한 시민사회 토론회가 열려 재차 건립 논의에 불을 지폈다. 역사성과 접근성이 핵심 잣대로, 부산시민공원과 송상현광장이 유력하게 거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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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일 오후 2시 부산시의회 2층 중회의실 '부마민주항쟁기념관 건립 부지 선정을 위한 시민토론회' 자리에서 박상도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이사장이 인사말을 건네고 있다. 재단 제공 |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은 8일 ‘부마민주항쟁기념관 건립 부지 선정을 위한 시민토론회’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토론회는 지난 6일 부산시의회에서 김형기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원장과 정광민 10·16부마민주항쟁기념관 건립추진위원장의 발표와 종합토론으로 진행됐다.
부마항쟁은 한국 4대 민주항쟁으로 꼽힌다.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6·10항쟁과 궤를 같이한다. 다른 항쟁은 기념관이 조성돼 그 정신이 기려지고 있다. 그러나 부마항쟁은 여전히 마땅한 기념관을 갖지 못한 상태다. 2020년 제정된 부산시 ‘부마민주항쟁 기념 및 지원에 관한 조례’에 기념시설을 조성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으나, 추진되지 않았다. 한때 부마항쟁 발생지인 부산대 캠퍼스 내에 세우는 방안도 논의됐으나 이를 공약으로 삼았던 차정인 전 부산대 총장이 물러나면서 흐지부지됐다.
김 위원장은 부산시민공원을 최적지로 지목했다. 시민공원은 접근성이 좋고, 현재 부산독립운동기념관이 조성 중이라 부마항쟁을 이와 연계하면 상징적인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시민공원은 과거 일제에 의해 경마장으로 조성됐다가 주한미군 기지(하야리야 부대)를 거쳐 부산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정 위원장은 송상현광장을 활용하자고 제언했다. 과거 이곳 일대에는 육군 제15헌병대가 자리했다. 1979년 10월 부마항쟁 당시 계엄군에 붙잡힌 시위대 다수가 이곳에 수감돼 군사 재판에 넘겨졌다. 또 이곳 일대는 항쟁 당시 부산대 시위대와 부산여대 시위대가 도심으로 행진하며 거쳐간 곳이기도 하다. 이 같은 장소적 역사성을 지닌 공간을 기념관으로 승화하는 것이 ‘부산 정신’을 상징적으로 구현하는 길이라고 정 위원장은 강조했다. 정 위원장은 1979년 10월 당시 처음으로 항쟁의 불씨를 댕긴 인물이다.
종합 토론에선 양쪽 안의 장단점이 검토됐다. 특히 안용대 가가건축사무소 대표는 입지의 법적·기능적 사안을 검토했다. 그에 따르면 시민공원은 법적으로 ‘근린공원’으로 분류된다. 근린공원은 자연녹지 보존 차원에서 전체 면적의 40%까지만 인공물을 들일 수 있다. 그런데 시민공원은 지난해 기준 39.84%에 달한다. 신축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송상현광장은 이런 점에서 자유롭지만, 광장 본연의 탁 트인 개방감을 훼손하지 않으려면 설계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상 건축물을 최소화하고, 선큰(Sunken) 구조 등을 활용해 건물을 지하로 숨기는 방식의 설계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안 대표는 “이 경우 보행자의 안전한 접근로 확충, 부설주차장 설치 등이 숙제가 될 것이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