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정분야 경험 뒤 변호사로 전향
- 관련 분쟁 사실관계 규명 명확
- 지역 ‘전문 변호사’ 338명 달해
- 서울 비해 수임 규모 적은 부산
- 변호사 본인 실무 살리기보다
- ‘경력’으로 앞세워 일감 끌어와
- 市·법전원, 전문성 살릴 고민을
공대를 졸업해 대기업에서 사회 첫 발을 뗀 변호사 A 씨. 변호사시험 1회 출신인 그는 회사원 시절부터 ‘건축·토목 관련 분쟁은 내가 맡으면 누구보다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때마침 법학전문대학원이 생기자 그는 번듯한 직장을 그만두고 법조인의 길을 걸었다. 변시에 합격하고 15년이 지난 현재, 그는 지역에서 제법 잘 나가는 변호사로 평가받는다. 건축·토목 사건만으로 일군 성과는 아니다. 본인의 전문 영역부터 과거사 사건 같은 비교적 작은 영역까지, 시간과 체력이 허락하는 데까지 사건을 수임해 사무실을 꾸린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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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아이클릭아트 |
법전원은 법조계 진입 문턱을 낮췄다. 덕분에 A 씨처럼 사회에서 실무 경험을 쌓아 온 이들이 법조인으로 거듭났다. 사법시험이 존치했다면 어려웠을 일이다. 수 년, 수십 년을 매달려도 합격을 장담할 수 없는 ‘고시’였다. 이미 사회적 자산을 형성한 이들이 구태여 위험 부담을 안아가며 도전할 이유가 없었다.
■‘전문 변호사’만 300명 넘어서사회에서 ‘현장’을 뛰다 온 변호사는 이밖에도 많다. 부산 1호 의사 출신 법조인 유희은(변호사 시험 2회), 간호사로 환자를 돌보다 법전원 문을 두드린 강민경(1회) 변호사 등 의료계 출신이 좋은 예다. 해기사 면허 소지자인 임장범(8회), 항해사로서 직접 선박을 몰았던 조묘진(2회) 변호사 같은 해운업계 출신도 눈에 띈다. 방송국에서 뉴스를 다루다 법조인이 된 유기환(12회), 박수경(6회) 변호사도 있다. 사시를 접고 경비원으로 일하다 법전원을 거쳐 결국 법조인이 된 권진성(9회·수영구의회 의원) 변호사는 ‘인간 승리’로 화제였다.
이처럼 자신만의 확고한 전문 영역을 가진 변호사들은 의뢰인의 소송을 지원하거나 자문할 때도 분명 강점을 보인다. 사시 출신 지역 법조계 B 변호사는 “사시 출신, 특히 법대를 나온 변호사들은 소송을 다룰 때 본인이 이해한 한도 내에서 설명한다. 때때로 본인도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은 상태로 판사에게 설명할 때도 있다. 그런데 예를 들어 건축기술사 출신 변호사가 관련 분쟁을 맡으면, 머릿속에 본인이 경험한 것이 명확하게 그림 그려진 상태로 설명할 수 있으니 사실관계에 부합하는 결과를 이끌어내는 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한변호사협회 인증 ‘전문 분야 변호사’도 대폭 늘었다. 전문 분야 변호사는 법조 경력 3년 이상인 변호사가 분야별로 10~30건의 사건을 수임했을 때 2개 분야까지 등록 신청할 수 있다. 법전원이 막 생겨난 2009년 기준 부산 개업 변호사는 총원이 368명이었는데, 이달 현재 전문 분야를 등록한 변호사만 338명(전국 6764명)에 이른다.
■‘셀링 포인트’ 그치는 전문성문제는 지역 변호사가 전문성을 발휘하기가 비교적 쉽지 않고, 여건 또한 날이 갈수록 나빠질 것이라는 점이다. 부산의 전문 변호사들은 현행 규정 기준 총 63개 분야 중 33개 분야에 등록돼 있다. 형사법이나 이혼 가사법 민사법 도산 부동산 정도를 제외하면 전문 변호사가 1, 2명에 그치는 분야도 적지 않다. 이에 견줘 서울회 소속 전문 변호사들은 전 분야에 걸쳐 다양한 변호사가 활동 중이다.
이는 ‘규모의 경제’가 달라 빚어진 일이다. 지난달 기준 서울회 소속 회원은 총 2만9061명이다. 전국 변호사(3만 8124명)의 약 76%에 이르는 수치로, 부산(29일 기준 1372명)보다 약 21배 많다. 서울에 사람과 기업이 몰렸고, 그에 따른 사건 의뢰·자문 수요도 뒤따르기 때문이다. 기업이 많은 서울에선 직접 법정에 나가는 송무는 맡지 않고 업체 자문만 봐주는 법무법인도 더러 있다. 부산에선 그런 법무법인을 찾아보기 힘들다. 정부기관의 주 소재지가 서울인 점도 영향을 준다. 가령 ‘헌법재판’ 사건을 굳이 부산 법무법인에 맡기는 이는 드물다.
이처럼 지역의 현실에 비춰볼 때 법조인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지속해서 갈고 닦아 시민에게 제공하기란 쉽지 않다. 숫자가 보여주듯 법률서비스 수요 자체가 서울에 몰려 있으니 지역에서 전문 영역만 파다간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지기 십상이다. 형사·이혼 사건처럼 비교적 수임 건수가 안정적인 일도 맡아야 하는데, 가뜩이나 변호사 수가 늘어난 상황이라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결국 사시 출신 변호사와 변별되는 강점도 갖출 기회를 만들지 못한다. 전문성을 키우긴커녕 그나마 사건이 나오는 수도권으로 발길을 돌리게 된다. 법률서비스 이용자인 시민 입장에서도 15년 전과 무엇이 달라졌는지 체감하기 힘들다.
지역 C 변호사는 “결국 ‘○○ 전문 변호사’ 같은 호칭은 셀링 포인트로서 홍보 영업용으로 쓰이는 것이지, 실제로 한 분야에 정통하느냐를 확인해주는 지표라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법전원이 직접 전문가 키우자”앞으로는 전문성을 지닌 변호사를 배출하기 더욱 어려질 것이란 비관도 나온다. C 변호사는 “법전원부터 변시 합격률을 지키려 유명 학부 출신의 어린 학생을 선호한다”며 “이런 사정에다, 어린 학생들은 ‘사회 유경험자’들이 강점을 보일 만한 과목은 설사 자신도 관심을 가지더라도 성적을 고려해 수강을 포기한다. 당장 시험에 합격하는 게 중요한데, 밖에서 실무를 쌓고 온 이들과 경쟁하는 게 부담스러워 시험 필수 과목 외에는 공부하기를 기피하는 것이다. 그러니 법전원에서 전문성을 지닌 변호사가 점점 배출되기 힘들어지는 구조다”고 설명했다.
현행 법조인 양성 체계가 지역 시민에게 더욱 이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법전원은 물론 부산시가 ‘전문 변호사 육성’에 힘을 모아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실무 전문가가 법전원을 거쳐 법조인이 되는 구조에서, 법전원이 시 등과 함께 법조인과 그 지망생의 전문성을 길러주는 기관으로 역할을 확장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철우 변호사는 “법전원에서 학생들이 가장 많이 고르는 선택 과목이 국제거래법이다. 가장 얇기 때문이다. 그만큼 현재는 시험 합격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변시의 난이도나 합격률을 다소 조정하는 한이 있더라도, 지역 각 학교가 특성화·전문화 분야에 필요한 방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당장 부산에 해사법원이 생기는데, 지역 법전원에서 해사법에 관한 전문성을 갖춘 변호사가 배출되지 않는다면 서울 등 타지의 변호사들에게 일감이 생기는 것에 그친다”고 말했다.
김용민 부산변호사회장은 “지역은 수도권과 경제 규모의 차이가 많고, 법률 수요 다양성이 떨어져 젊은 변호사들이 정착하기가 어렵다. 지역이 전문화할 영역을 찾아 그 기반을 일찍부터 닦아줄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