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합격자 32.9% 취직 못해
- 변협 주관 연수 프로그램 들어
- 경험 부족 … ‘생존 정글’서 일탈
- ‘네트워크 로펌’은 수임 싹쓸이
- 소액 민사사건 착수금 550만 원
- AI 등 스스로 법률 조력도 영향
- 형사공판 25% 변호사 없이 소송
부산의 30대 변호사 A 씨는 사무실 운영이 힘에 부쳐 현직 경찰관과 ‘은밀한 거래’를 텄다. 그는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2021년부터 약 2년간 지역 한 법무법인 소속변호사로 일했다. 2023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법률사무소를 냈지만 사건 수임에 어려움이 컸다. 그때 경찰관 B 씨가 그에게 ‘월 150만 원을 주면 사건을 소개해주겠다’고 제안해왔다. 두 사람은 A 씨가 첫 직장에서 일할 때부터 알던 사이로, 당시 B 씨는 해당 법무법인의 외근사무장으로 일하다 경찰로 복직했다. 위험한 제안이었지만 형편이 궁했던 A 씨는 승낙해버렸다. 그는 B 씨에게서 수임료 900만 원짜리 고소 사건을 소개받곤 580만 원을 대가로 줬다. 머잖아 검찰에 덜미가 잡힌 A 씨는 뇌물공여·변호사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해 10월 열린 결심공판에서 A 씨는 모든 혐의를 인정했다. 사무실 꾸리기가 녹록지 못한 나머지 변호사 윤리까지 저버리게 돼 참담한 마음이라고 했다. 검찰은 징역 10개월을 구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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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호사 배지가 법전 앞에 수북하게 쌓여 있다. AI 생성 이미지 |
■‘배고픈 변호사’의 무서움A 씨 사례는 ‘배고픈 변호사’가 어떤 일까지 벌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법조계는 변호사가 배를 곯게 되는 이유로 변호사 수 급증을 꼽는다. 법학전문대학원(법전원)에서 양성되는 변호사 수가 너무 많다 보니, 변호사 1명이 수임할 수 있는 사건 수도 줄었다는 취지다. 법전원 제도의 기원인 미국에는 ‘배고픈 변호사가 굶주린 사자보다 더 무섭다’는 말이 오랜 시간 통용돼왔다.
수임 경쟁은커녕 법무법인 취직조차 힘들다는 평도 나온다. 취업문이 좁아져 실무 연수조차 받기 어려워졌다. 변호사 시험 합격자는 6개월간 법무법인 등에서 실무 연수를 받아야 한다. 취직하지 못한 변호사는 대한변호사협회가 주관하는 합격자 연수 프로그램을 들어야 한다. 지난해 변시 합격자 1744명 중 574명(32.9%)이 이 프로그램으로 실무 연수를 때웠다. 로펌이나 법원·검찰에 취직한 합격자는 460명(26.4%)에 그쳤다.
변호사 수입도 10년간 정체됐다. 국세청의 법무법인·개인변호사 부가가치세 과세표준 신고액을 보면 2022년 기준 변호사 1인당 매출액은 약 2억5000만 원, 평균 소득은 약 1억 원으로 조사됐다. 10년 전이자 변시가 처음 치러진 2012년과 같은 수치다. 이 기간 법률시장 규모는 3조6096억 원에서 2022년 8조1861억 원으로 커졌다.
■법률시장 문턱은 낮아졌나‘배고픈 변호사’를 양산하며 변호사 수를 늘린 배경에는 법률 서비스 비용 문제도 자리한다. 제도를 도입할 무렵 비공식적으로는 법률 서비스 비용을 낮춰 일반 시민도 비교적 쉽게 변호사의 도움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판단이 있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사회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법률 비용은 그동안 상승 폭이 완만했다고 평가된다. 김용민 부산변호사회장은 “부산에서는 소액 민사사건의 착수금이 10년 전 기준 330만~440만 원이었는데, 요새는 550만 원 정도가 평균 가격”이라고 말했다. 100만~200만 원이 오른 셈인데, 이 기간 건물 임대료나 인건비가 오른 점을 감안하면 통상의 물가 수준만큼만 상승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도 변호사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나 홀로 소송(본인소송)’이 사건 대다수를 차지한다. 2025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민사본안사건(합의부·단독·소액) 78만6085건 중 52만9276건(62.3%)은 변호사 선임 없이 치러졌다. 2022년과 2023년엔 68% 수준이었다. 형사공판사건에서도 33만3291명 중 8만3751명(25.1%)이 변호사 조력 없이 법원에 자기 앞날을 맡겼다. 서민 입장에선 여전히 변호사 비용이 부담이라는 방증이다. AI 등 스스로 법률 조력을 찾을 방도가 생긴 것도 영향을 줬다고 보인다.
‘변호사를 믿기 어렵다’는 인식이 점차 커지는 점도 지적된다. 변호사 수임 경쟁이 과장 광고로 이어지고, 의뢰인이 기대한 만큼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서 ‘차라리 혼자 해결하자’는 생각을 갖게 된다는 취지다. 2023년 3월부터 ‘나 홀로 소송’을 치르고 있는 전모(50대) 씨가 그 중 하나다. 그는 “‘100% 승소율’ ‘수천 건 무죄·무혐의’ ‘사무장이 아닌 변호사와 일대일 진행’ 등의 광고를 보고 한 변호사를 선임했지만 알고 보니 승소율 등은 사실이 아니었다”며 “해임하고 나서 소송 비용도 돌려 받지 못했다. 그때부터 변호사를 믿지 못해 나 홀로 소송을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2023~2024년 변호사에게 내려진 징계 360건 중 광고 규정 위반이 101건을 차지했다. 품위유지의무 위반(102건)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사유다.
■서비스 품질은 지켜졌나이런 배고픈 사정에 ‘네트워크 로펌’(전국에 분사무소를 둔 기업형 로펌)으로 향하는 변호사가 적지 않다. 네트워크 로펌은 전관 변호사를 앞세운 억대 규모 광고로 사건을 쓸어 담는다. 유명 재력가 등이 찾는 ‘빅펌’과 매출액을 견줄 정도다. 웬만한 일반 사건은 상당수가 네트워크 로펌에서 처리된다는 의미다. 사건이 많은 만큼 소속 변호사도 적잖게 두는데, 연봉이 통상 1억 원 전후다. 전국 변호사의 중위소득이 연 3000만 원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아주 세다.
문제는 네트워크 로펌 소속 변호사 한 사람이 맡는 사건 수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매출액이 전국 상위권인 한 네트워크 로펌의 경우 변호사 1명당 평균 80~90건을 맡는다. 법조윤리협의회 규정상, 최근 6개월 간 수임한 형사 사건이 30건 이상이고 소속 지방변호사회 구성원 평균 수임 건수의 2.5배를 넘으면 특정 변호사로 지정돼 수임 경위를 소명해야 한다. 부산에선 40~50건 수임하면 지정되는데, 이를 넘어 사건을 수임하는 것은 정상 범주가 아니라는 의미기도 하다.
■“법률 문턱과 품질 동반 하락”이런 점들이 종합돼 시민이 누릴 법률 서비스의 질은 결국 하락하게 된다. 이와 관련해 고위법관 출신의 지역 변호사 C 씨는 법정에서 몇 차례 인상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약 5년 전 그는 임대차 관련 소송의 피고를 대리했다. 원고는 임대차 관련 비용을 청구할 생각으로 네트워크 로펌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을 제기했다.
사건을 맡은 재판부는 양측에 합의를 권했다. 원고 측 변호인이 대뜸 이를 받아들이곤 청구를 포기했고, 소송비용 또한 양측이 각자 부담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결과적으로 C 씨는 별 품도 들이지 않고 소송에서 이겼다. 원고는 ‘이럴 거면 뭣하러 내가 소송을 걸었느냐’며 자신의 변호사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C 씨는 몇 해 뒤에도 네트워크 변호사가 상대방 측으로 참여한 유류분 청구 관련 소송을 맡았다. 형제 10명이 원고였는데, 바빠서인지 그중 일부만 청구하고 나머지 형제들은 기간을 넘겨버린 탓에 재판을 포기하는 것으로 조정을 끝냈다. C 씨는 “법률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는 입장에서도 변호사가 너무 많으니 옥석 가리기가 어려워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법률 문턱만 낮추고 품질은 유지해야 하는데 둘 다 하향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