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Y 출신 등 성적 우수자 선발
- 배지 달기 유리한 과목에 편중
- 노동 전문가 꿈꾸던 최치원 씨
- 법조인 된 후 시간 쪼개서 공부
- 부산대·동아대 검사 임용 상위권
- ‘빅펌’서 푸대접…학벌주의 논란
- 자격시험화로 제도 취지 구현을
- ‘법정·사무 변호사’ 땐 과잉 해소
부산의 3년 차 법조인 최치원(29) 변호사는 산업재해·노동 분야 전문가를 꿈꾸며 법률 현장에 발을 내디뎠다. 대학 재학 무렵, 콜센터에 현장실습을 나간 고등학생이 실적 압박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접한 것이 계기였다. 먹고 살려고 시작한 일이 사람을 죽거나 다치게 만들어선 안 된다고 느꼈다. 자연스럽게 부조리한 노동 현실을 해소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법조인이 돼 현장의 목소리를 법정에서 풀어내기로 결심했다.
이처럼 노동 전문 법조인을 목표로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한 그는 변호사 시험(변시) 선택 과목으로 노동법 대신 국제법을 골랐다. 3학년 마지막 학기까지 재판연구원을 준비했던 터라, 노동법 같은 선택 과목에 시간을 들일 여유가 없었다. 변시는 필수 과목인 공법·민사법·형사법에 더해 7개 전문적 법률 분야 중 하나를 선택 과목으로 골라 치르게 된다. 국제법은 국제거래법 환경법과 더불어 ‘책이 얇은’ 과목으로 꼽힌다. 그만큼 공부할 양이 적으니 시험 선택 과목으로 애용된다.
그는 법조인이 된 뒤 비로소 시간을 쪼개 노동법을 공부하고 현장과 부딪히며 전문성을 좇는다. 그는 “학교에서는 일단 변호사가 되는 것 자체가 중요해 여러 법을 다양하게 공부하기보다는 필수 과목들과 선택 과목 하나를 집중해서 공부해야 한다”며 “시험 합격률이 50% 수준에 그치는 실정이라 수험에 적합한 것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고 말했다.
■“일단 법조인 되고 봐야” |
| 최치원 변호사가 부산법원종합청사 내 법정으로 출정하고 있다. 이원준 기자 |
낮은 합격률은 법전원 존재 이유인 ‘전문성을 지닌 우수한 법조인 양성’을 어렵게 하는 근본 원인으로 지목된다. 일단 법조인이 돼야 전문성도 발휘할 텐데, 그 통로인 시험이 어렵다 보니 필수 과목 위주로밖에 공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양한 법률을 익히거나 본인이 추구하는 전문성을 파고들기가 힘들다. 실제 최근 치러진 변시의 합격률은 53% 수준에 그친다. 2012년 제1회 시험에선 응시자의 87%가 붙을 정도였으나 시험 난도가 상승하고 ‘n수’ 수험생이 누적되면서 합격률이 크게 떨어졌다.
이런 사정에 학교들은 최소한의 합격률을 사수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합격률이 곧 학교의 위상이나 입학 관리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을 선발하기보단 법학적성시험(LEET) 점수가 높은 이들을 선호하게 됐다. 법전원조차 공부 머리를 전문적 경험보다 우선시하는 것이다. 지난달 종로학원이 전국 25개 법전원 중 합격자 출신 대학을 공개한 전국 22곳의 신입생 1865명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이른바 ‘SKY 대학’ 출신이 1090명으로 전체의 58.7%였다. 서울대가 429명(23.1%)으로 가장 많았고, 고려대 374명(20.2%), 연세대 287명(15.5%), 성균관대(7.7%), 이화여대(4.0%)가 뒤를 이었다.
이는 결국 법전원이 ‘그들만의 세상’처럼 변했다는 견해로 이어진다. 지난해 6월 이재명 대통령이 광주 타운홀미팅 행사에서 한 발언이 대표적이다. 이 대통령은 한 시민이 사법시험 부활을 요청하자 “실력이 되면 로스쿨을 안 나와도 변호사 자격을 검증해서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며 “법조인 양성 루트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음서제가 되는 것 아니냐, 과거제 아니고. 그런 걱정을 잠깐 했다”고 말했다.
전문성이나 사회 경험과 무관하게 특정 대학 출신 등 주류적 배경을 가진 이들이 법조인이 되는 것으로 계층을 유지한다는 취지다.
■“낮은 합격률이 빚은 문제”법전원들은 낮은 합격률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한다. 동아대 송시섭 법전원장은 “동아대는 국제상거래 전문 인재 양성이 교육 목표다. 그래서 처음에는 외국에서 공부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을 10명씩 뽑았었는데, 최근에는 한 자릿수로 떨어져 소수만 들어오고 있어 안타깝다”며 “변시 합격률이라는 현실적인 제약이 있다 보니 학생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인재를 뽑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지역 법전원 입장에선 그 어려움이 유독 크다. ‘그들만의 세상’은 수도권을 가리키는 데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조 생태계가 수도권에 몰린 탓에 지역 학생은 취직 등에서 제대로 된 기회를 얻기 어려운 실정이다. 학생 사이에선 이른바 ‘빅펌’에 취직하려면 수도권 법전원을 나와야 한다는 게 정설로 통한다.
수도권 법전원 학생 중에는 학교를 졸업하기 전부터 빅펌이 접근, 몇 가지 역량 검증을 거친 뒤 취직을 보장하기도 한다. 우수 인재를 사전에 확보한다는 차원이다. 반면 지역 법전원은 검사나 재판연구원에 합격할 만큼 성적이 좋은 학생이 많은 데도, 학교 측에 제의되는 인턴 인원조차 1명 정도에 그친다. 실제 부산대와 동아대는 검사·재판연구원 등 공공기관으로 학생을 진출시키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올해 기준 부산대는 10명의 학생이 검사로 임용될 예정으로, 전국 공동 1위에 해당한다. 동아대 또한 7명이 검사 임용 예정으로, 전국 5위 수준이다.
부산대 김현수 법전원장은 “실력 면에서 검사나 재판연구원이 될 만한 학생들이 많은 데도 빅펌에서 지역 로스쿨 학생들에게 좀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지는 않는 실정이다”며 “지역 로스쿨에서는 반수 문제가 전혀 없다고 이야기하기는 힘들다”고 전했다.
■“변호사 늘리고 직역 일원화해야”낮은 합격률, 좁은 취업 문이 해소되지 않는 한 ‘우수한 전문 인재 양성’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정에 법전원들은 변시 합격률을 크게 늘려 ‘자격시험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미 법학적성시험으로 자질을 검증받은 학생들인 만큼, 소수를 선별하는 식의 시험에서 교육 과정을 제대로 이수했다면 변호사 자격을 내어주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법전원장은 “일정한 과목을 이수해 적정한 법률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변호사 자격을 주는 방식, 즉 자격시험화한다면 학생들이 변시에 그렇게 목을 맬 필요는 없게 된다”며 “로스쿨 제도 도입 취지를 살리려면 합격률을 일정 수준까지 높여 교육 중심의 구조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는 변호사업계의 거센 반발을 부를 수밖에 없다. ‘변호사 과잉’이라는 지적이 나올 만큼 법조시장이 포화를 이룬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송 법전원장은 ‘변호사 줄이기’가 아닌 ‘법률시장 넓히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체계적 법률 지식을 갖춘 이들이 늘어난 만큼, 각 공공기관이 의무적으로 사내 변호사를 둔다거나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은 자문 변호사를 고용하도록 만드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보인다. 지금까지는 법률 서비스 제공이 약했던 여러 기관, 여러 지역에 고루고루 변호사가 활동할 수 있도록 대한변호사협회 등이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