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건·사회복지 종사 비정규직 다수
- “시간 단축 거부 땐 실직… 참고 다녀”
- 시급 올랐지만 통장 입금액은 줄어
- ‘들락날락’·학교 현장 수시고용 여전
- 행정 서비스 연속성·전문성 등 훼손
- 교육청 “비용 절감 아닌 맞춤형 채용”
월요일 3시간, 수요일 4시간, 주말 7시간. 부산 노동 현장에 일주일 14시간 안팎의 시간표가 넘쳐난다. 시급은 올랐지만 통장에 들어오는 월급은 오히려 줄었다. 하루 몇 시간만 더 일하면 붙어야 할 주휴수당과 연차휴가가 계약서 한 줄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수년을 쉼 없이 일한 노동자 손에 남는 퇴직금조차 없다.
민간 서비스업 관행이던 초단시간 고용이 공공부문에도 만연한다. 공공기관과 학교 현장은 주휴수당과 퇴직금 부담을 덜어내려 근무시간을 주 14시간 안팎으로 깎아낸다. 법 틈새를 노린 쪼개기 계약이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심화하고 취약 노동자를 벼랑 끝으로 몬다. 부산 노동 현장 밑바닥을 잠식한 초단시간 노동 실태를 추적했다.
■“3년 일했는데 퇴직금 0원”12일 만난 부산 한 재가요양센터 소속 요양보호사 김순임(가명·62) 씨는 매주 월·수·금 사흘, 하루 4시간씩 일한다. 노인 세 명을 찾아가 식사를 챙기고 목욕을 돕는다. 주 12시간 근무다. 3년째 같은 센터에서 일했다. 김 씨는 올해 초 센터를 그만두려 상담하다 퇴직금이 아예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주 15시간 미만 노동자라는 이유였다. 김 씨는 “도장 찍을 때 근무시간을 이렇게 따지는 줄 몰랐다. 일자리를 잃으면 갈 곳이 없어 참고 다닌다”고 털어놨다.
보건업 및 사회복지 서비스업은 부산 비정규직이 가장 집중된 업종이다. ‘2025 부산일자리종합실태조사’ 결과 해당 업종 비정규직은 9만5887명으로 집계됐다. 부산 전체 비정규직 가운데 43%에 달한다.
마트 계산원 박미경(가명·54) 씨는 2년 전까지 주 5일 일했다. 지금은 주 3회, 하루 4시간으로 계약이 바뀌었다. 주 12시간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시급은 올랐으나 통장에 들어오는 월급은 줄었다. 박 씨는 “시간을 줄이자는 요구를 거부하면 해고당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은 계속 필요해 공고를 내면서도 주 15시간 이상 계약은 끝내 피한다”고 지적했다. 부산 비정규직 연령대는 50~59세 28.1%, 60세 이상 26.5%로 나타났다. 50대 이상 장노년층이 절반을 넘는다.
청년층 상황도 비슷하다. 동래구 거주 이동준(가명·29) 씨는 주 8시간짜리 건물 청소 일자리와 배달 플랫폼 노동을 병행한다. 두 수입을 합쳐 월평균 170만 원 안팎을 번다. 월세 50만 원을 내고 나면 저축은 불가능하다. 이 씨는 “친구들이 직장에서 누릴 수 있는 연차와 퇴직금이 부럽다. 몸이 아파 쉬면 당장 그날 수입이 끊긴다”고 전했다.
해운대구 영어학원에서 일하던 보조강사 강지연(가명·24) 씨는 주휴수당을 받고자 주 15시간 이상 근무를 요청했다가 지난달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학원은 강 씨가 나가자 비슷한 시간대에 일할 새 강사를 뽑았다. 강 씨는 다른 학원에서 다시 주 12시간 계약을 맺었다.
■‘모범 고용주’ 부산시·교육청마저민간 영역을 지도·감독해야 할 공공 부문마저 시간 쪼개기 채용을 제도화했다. 부산시청, 산하 공공기관, 구·군, 교육청 채용 공고를 확인한 결과 주 15시간 미만 일자리가 줄을 잇는다.
지난해 부산사회복지종합센터가 낸 어린이복합문화공간 ‘들락날락’ 운영 기간제근로자 채용 공고가 대표적이다. 지원 자격 요건은 엄격하다. 아동학, 도서관학, 사회복지학, 행정학, 심리·상담학, 컴퓨터 관련 학사 학위 이상 소지자나 어린이 시설 업무 경력자를 명시했다. 고학력 전문 인력을 요구하면서 내건 근무 조건은 ‘주 5일(화~토요일), 1일 2시간(오후 3시 30분~5시 30분)’이다. 하루 1개 회차만 떼어내 채용했기에 주당 10시간에 불과하다.
부산시 문화시설 전시·공연·객석 안내원 채용도 사정은 같다. 주말 토·일요일 하루 7시간씩 주 14시간을 맞추거나 공연 일정에 맞춰 1회당 3~4시간 단위로 계약을 맺는다. 안내 인력은 관광객과 방문객을 직접 응대한다. 전시 해설, 시설 안내, 동선 관리, 비상 상황 대처 등 전문성과 연속성이 필수다. 방문객 응대 숙련도를 쌓기 어려운 초단시간 인력 배치는 관람 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진다.
학교 현장도 마찬가지다. 시교육청 산하 각급 학교는 특수교육 지도 지원 인력, 도서관 지원 인력, 방과후 돌봄 보조 인력을 주 14시간 안팎 초단시간 근로자로 수시 채용한다. 발달장애 학생을 밀착 보조하고 기초 학습을 돕는 업무는 아이들과 유대감 형성이 핵심이다. 단시간 쪼개기 계약으로 담당자가 자주 바뀌면서 교육 연속성이 끊긴다.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 몫이다.
공공부문 쪼개기 채용이 잇따르자 고용노동부는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노동자 채용을 원칙적으로 제한했다. 불가피한 경우에만 ‘공공부문 비정규직 채용 사전심사제’를 거쳐 필요성을 검증받도록 했다. 주휴수당 등 추가비례 수당 지급 조건도 붙였다. 인건비 절감을 노린 초단시간 채용을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부산 일선 공공기관과 학교 현장에서는 여전히 이 같은 채용이 이어진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인위적인 시간 쪼개기가 아니라 직무 특성상 실제 필요한 운영 시간에 맞춘 채용으로 모두 사전 심의를 거쳐 결정한다”며 “단순히 비용을 줄이려는 목적만은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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