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조업 내수 부진·납품단가 정체
- 은퇴 숙련공 단시간 재고용 만연
- 50인 미만 영세업장 밀집도 영향
- 전국 평균, 주당 16.4시간 기록
- “노동비용 급변구조 등 손질해야”
부산 비정규직 주당 평균 근로시간이 13.7시간으로 추락한 이면에는 한계에 내몰린 지역 산업계의 민낯이 있다. 초고령화에 따른 돌봄 일자리 쏠림, 제조업 쇠퇴, 영세 사업장 밀집 속에서 납품 단가 정체와 내수 부진에 시달리는 사업주들은 생존을 위해 ‘시간 쪼개기’를 택했다. 여기에 주 15시간을 넘기면 인건비가 급증하는 노동법 구조가 맞물려 일터 시계를 통째로 깎아내렸다. 내년 영세 사업장 근로감독권 지방 이양을 앞두고 법 사각지대를 메워야 할 지자체의 책무도 한층 무거워졌다.
■고령화에 제조업 추락 덮친 일터부산 강서구 녹산국가산업단지의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김모 대표는 지난해부터 공장 가동 방식을 바꿨다. 김 대표는 “원자재 값과 전기요금은 급등했는데 원청 납품 단가 상승률은 물가에도 못 미친다”며 “정규직을 계속 뽑으면 불황기에 문을 닫아야 해 인건비를 아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엔 정규직 잔업·특근으로 물량을 맞췄지만, 지금은 단순 검수·포장 라인에 주 14시간 파트타임 인력을 여럿 뽑아 교대로 돌린다”고 털어놨다.
사상구 15인 규모 금속가공 업체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 대표는 “주 15시간을 채우는 순간 주휴수당과 4대 보험, 퇴직금까지 얹어져 시간당 인건비가 30% 넘게 뛴다. 제자리인 납품 단가로 이를 감당할 영세 업체는 드물다”고 토로했다. 청년층 기피로 숙련공 고령화가 맞물린 점도 쪼개기 고용을 부추겼다. 그는 “은퇴한 베테랑 기술자를 정규직으로 재고용할 여력이 없어 물량이 몰리는 요일에만 주 14시간 안팎으로 부르는 초단시간 계약으로 겨우 버틴다”고 전했다.
쪼개기 고용이 일상화하며 부산은 주당 ‘13.7시간’이라는 유례없는 수치를 기록했다.
19일 국가데이터처 ‘지역별고용조사’(상반기 기준) 자료를 봐도 부산의 초단시간 노동 급증세는 전국 평균을 크게 웃돈다. 2015년 상반기 3.2%로 전국(3.0%)과 비슷했던 부산 초단시간 노동자 비율은 2022년 7.0%로 급등한 후 지난해 상반기에도 7.6%(전국 6.2%)를 기록했다. 단순 경기 변동을 넘어선 구조적 단절 신호로, 배경에는 세 가지 취약점이 자리한다.
우선 제조업 공동화다. 부산 제조업 취업자 수는 2016년 연간 30만1000명에서 지난해 24만8000명으로 17.6%(5만3000명) 급감했다. 정규직·전일제 중심이던 양질의 제조업 빈자리를 숙박·음식·도소매업 등 영세 서비스업과 단기 물류직이 채우면서 청년층마저 초단시간 일자리로 내몰렸다. 실제 부산 청년 초단시간 노동 비율은 2015년 3.3%에서 2024년 7.2%로 두 배 이상 뛰어 전국 평균(2024년 5.4%)을 크게 웃돌았다.
가파른 고령화는 이를 더욱 가속했다. 8대 특·광역시 중 고령화가 가장 빠른 부산은 노인 돌봄 수요가 폭증했다. 부산 고령 노동자의 초단시간 노동 비율은 2021년 13.4%로 전국(17.8%)보다 낮았으나, 2022년 21.5%로 급증해 전국(18.5%)을 추월한 뒤 2024년 22.9%(전국 19.3%)까지 치솟았다. 부산 고령 노동자 5명 중 1명 이상이 초단시간 일자리에 묶인 셈이다. 특히 고령 종사자와 프리랜서가 많은 방문·재가요양 등 돌봄 서비스는 초단시간 노동이 가장 깊숙이 침투한 업종이다.
■전국도 주 16.4시간 ‘턱밑’초고령화, 제조업 침체, 영세 사업장 밀집의 삼중고는 비수도권 도시 대다수의 현실로, 부산의 ‘13.7시간’은 한국 노동시장의 미래를 보여준다.
실제 단시간 일자리 확산은 전국 추세다. 고용노동부 조사에서도 단시간 근로자 월평균 근로시간은 2020년 79.4시간에서 지난해 71.3시간으로 8.1시간(10.2%) 줄었다. 1개월 평균 주수(4.345주)로 나누면 주당 16.4시간으로, 전국 평균 역시 머지않아 ‘주 15시간’ 아래로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핵심 원인은 현행 노동법이 만든 ‘노동비용 절벽’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에 따르면 주휴수당(기본급 약 20%)과 4대 보험, 퇴직급여 등은 주 15시간(월 60시간) 이상 근로자에게만 적용돼, 15시간을 넘기는 순간 시간당 평균 노동비용이 25~40% 치솟는다. 이를 피하려 현장에서는 주 14시간 30분, 14시간 55분짜리 기형 계약까지 횡행한다.
노동법 준수율이 높아진 역설도 작용했다. 과거엔 영세 사업장에서 주 15시간 이상 고용해도 법적 수당·보험을 안 챙겨주는 사례가 흔했으나, 일반 단시간 근로자 사회보험 가입률이 2012년 40%대에서 2024년 80% 수준으로 뛰며 법 적용이 엄격해졌다. 부담을 느낀 사업주들이 합법적으로 의무를 피하는 주 15시간 미만 고용으로 인력을 대거 돌리면서, 처우 개선과 초단시간 일자리 폭증이 동전 양면처럼 맞물렸다. 여기에 최저임금 인상(2017년 6470원→올해 1만320원·내년 1만700원)과 코로나19 이후 물류·배달업 중심의 청년 단기 플랫폼 노동 확산이 기름을 부었다.
■“지자체, 영세 사업장 감독 꼼꼼히”대다수 전문가는 주 15시간 기점의 과도한 노동비용 급변 구조를 손질하고 영세 사업주 부담 완화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내년부터 30인 미만 영세 사업장 노동감독 업무가 지방자치단체로 넘어온다. 지자체 감독 권한이 확대되는 만큼 부산시도 공공부문 쪼개기 채용을 선제적으로 금지해 모범 고용주 책무를 다하는 동시에, 취약 사업장을 향한 현장 근로감독 체계를 촘촘히 구축할 방침이다.
부산연구원 서옥순 책임연구원은 “AI 전환 시대를 맞아 필요할 때만 짧게 인력을 쓰는 추세는 전 산업에서 가속할 것”이라며 “초단시간 근로가 50인 미만 사업장에 집중된 만큼, 지자체로 권한이 위임되는 ‘30인 미만 사업장 근로감독’이 중요해졌다”고 짚었다. 이어 “법이 보호하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메우려면 지자체가 영세 사업장의 계약서 작성, 근로시간 준수 등을 촘촘히 점검해 노동 환경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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