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하원의 구제금융안 부결로 금융시장이 걷잡을 수 없는 위기감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월가에서는 이미 씨티그룹에 넘어간 와코비아에 이어 '다음 차례는 어단가'라는 살생부가 나돌고 있고, 금융시장에서는 안전자산에만 투자하고 자금거래는 찾아볼 수 없는 극심한 '몸 사리기'가 확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미 유럽의 은행과 모기지 업체들도 유동성 위기로 국유화 또는 구제금융을 받는 처지로 전락하는 등 월가의 금융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구제금융 지원이 늦어질수록 대형 금융회사들의 줄도산이나 인수·합병(M&A) 사태가 확산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살생부' 나돌고, 합병루머 확산

뉴욕 증시에선 전날 미 의회가 구제금융안에 합의했음에도 유럽은행의 위기와 와코비아의 매각 소식이 전해지면서 투자심리가 극도로 위축돼 다우존스 산업평균 지수가 한때 700포인트 이상 떨어지는 폭락장세가 연출됐다. 특히 미국과 달리 정부의 구제금융에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던 유럽에서도 구제금융을 받는 은행이 출현했다는 것은 그만큼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게 시급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금융권에서 신용경색 위기가 확산된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오자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어느 지역은행이 합병 파트너가 필요한 지에 대한 추정과 분석이 나돌기 시작했다. 이른바 '다음은 누구 순서냐'는 살생부인 셈이다. 평소 문제가 없는 금융회사라도 일단 시장에서 문제가 있다는 루머가 확산되면서 주가가 폭락하고 자금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위기로 빠져들게 된다는 점에서 심상찮은 조짐이 아닐 수 없다.

M&A 가속…구제금융 시급

미 의회의 구제금융안 처리가 늦어질수록 금융시장에 미칠 파장이 커질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구제금융안의 주요 내용은 이미 공개돼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7000억 달러를 투입해 금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부실채권을 정리해주는 미 정부 구제금융안은 금융시장 불안을 촉발한 불씨를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부시 대통령과 민주·공화 양당의 대선후보를 비롯한 미 정치권 지도부가 백악관에 모여 이견만 확인하는 사이 워싱턴뮤추얼(WAMU)이 JP모건체이스에 넘어가고 씨티그룹은 와코비아를 인수하는 등 금융회사의 M&A가 이어졌다.

만일 미 의회가 구제금융안의 처리를 지연시킬 경우 대형 금융기관들의 연쇄 도산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월가의 관계자는 "불안한 금융시장의 심리를 진정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 구제금융"이라면서 "대책을 신속하고 단호하게 실행해 심리적인 안정을 찾아주는 게 최선책"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