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中 연결 가교 역할 맡고
- 北 문제 이니셔티브 취해야
미국 대선에서 치열한 승부 끝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다. 그의 재선은 단순히 정권의 연장이 아니라 세계 질서 주도국으로서 미국에게 전진의 리더십을 위임한 것이다. 오바마의 승리가 확정된 다음날, 중국에서는 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가 시작됐다. 이번 대회에서 시진핑을 당 총서기로 하는 제5세대 지도부가 선출된다. G2시대를 이끄는 미국과 중국에서 새로운 정치리더십이 등장한 것이다.
세계는 두 강대국의 리더십 변화가 가져올 영향에 주목하고 있다. 한반도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두 나라와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다. 더욱이 남북한과 미국, 중국은 물론 러시아와 일본에서도 정치리더십의 변화가 있었거나 있을 예정이다. 한반도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미국과 중국의 리더십 변화는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가져올 것인가. 먼저 두 나라의 관계 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냉전 종식 후 미국은 유일초강대국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탈냉전의 시대가 미국의 세기, 즉 미 제국의 시대는 아니었다. 9·11테러사태는 미국의 상대적 쇠퇴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제국의 미망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테러와의 전쟁은 자신을 제국으로 착각한 미국의 오만이었다.
사회주의 경제방식을 포기한 중국은 경제발전의 길을 걸었다. 20세기말 짧은 미국의 세기에 중국은 도광양회(韜光養晦)로 힘을 길렀다. 중국의 경제력은 스스로도 기대하지 못한 만큼 빠르게 성장했다. 중국의 경제적 힘은 미국의 쇠퇴와 맞물리면서 차이아메리카의 경제를 탄생시켰다. 미국의 달러는 이제 중국의 경제와 맞물리게 되었다.
결국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인정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G2시대의 등장이다. 그러나 미국이 생각한 G2는 중국에게 '책임있는 역할자' 지위를 부여해 미국의 리더십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2011년 1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아시아에서 미국의 전통적 이익을 인정했다. 그리고 중국은 미국으로부터 세계질서를 함께 논의하는 상대국으로 인정됐다.
그러나 중국은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막강해진 경제력을 배경으로 화평굴기(和平
崛起)와 유소작위(有所作爲)를 넘어 대국굴기(大國
崛起)의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금년 5월 3일 베이징에서 열린 제4차 미·중전략경제대화(SED)에서 '신형대국관계'의 발전을 주창했다. 이어 시진핑도 7월 7일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평화포럼 개막식 연설에서 이를 반복했다. 중국은 이를 두 나라가 "상대방의 전략적 의도를 객관적, 이성적으로 파악하고 각자의 이익을 존중하며 중대한 국제·지역문제에서 협조와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미국의 '아시아로의 회기'를 중국 포위전략으로 보는 중국의 속뜻은 중국의 힘을 무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바마와 시진핑의 시대는 이러한 배경 위에서 출발한다. 그들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G2로서의 양국 관계를 잘 정립하는 것이다. 오바마는 미국 경제의 회복을 위해서도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을 우선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 중국에 대해 영국과 같은 전략적 신뢰를 쌓기는 어렵겠지만 당당한 미국의 파트너로 대접해야 한다. 시진핑은 패권을 추구하지 않을 것임을 강조하며 미국과 주변국의 경계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중국의 힘을 보여주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중화(中華)의 모습은 종종 강대국에 약하고 약소국에 강했다.
미국과 중국이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두 강대국으로서 관계를 정립한다면, 이제 한반도는 또 한 번의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오랜 국제정치의 역사는 강대국 간 이익의 교환에 약소국들이 희생되었음을 보여준다. 중국이 G2로서 더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은 아시아이다. 중화의 회복은 동아시아에 대한 영향권(sphere of influence)을 인정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러한 전략의 추진에서 중국에게 북한은 포기할 수 없는 전략적 카드이다. 미국으로서도 한미동맹으로 엮인 한국카드를 포기할 수 없다.
결국 한국에게 주어진 상황은 더 복잡하게 되었다. 미국과 중국 간 질서구축의 경쟁 속에서 한국은 두 강대국의 이익교환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이익을 찾아야 하는 혜안을 발휘해야 한다. 미국과의 전략 동맹을 중국의 영향력을 헤징하려는 수단으로 삼기도 어려우며,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 발전을 미국에 대한 지렛대로 삼기도 어렵다. 모험을 시도할 경우 위험한 선택의 순간이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은 더 이상 과거의 약소국이 아니다. 한국은 강한 중견국으로서의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싸이(Psy)의 강남스타일이 교훈을 준 것은 소프트파워 능력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서가 아니라 양자를 연결하는 가교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또 두 국가와 일본과 러시아도 함께 연계하는 동아시아 네트워크 구축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의 힘을 업고 북핵 및 북한 문제를 해결하려 할 것이 아니라 강한 중견국으로서 남북문제를 풀기 위한 이니셔티브를 취해야 한다. 그것이 G2시대의 변화를 선제적으로 수용하는 길이다.
박영호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