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 자국 어민 피격 사망사건과 관련해 필리핀을 전방위로 압박하면서 양국 관계가 급속경색되고 있다.

중국도 연일 '범 중화민족'을 내세우며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로 자국과 갈등을 빚는 필리핀 '때리기'에 나섰다.

대만 외교부는 13일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성명에서 필리핀 정부 차원의 정식사과를 거듭 요구한다고 밝혔다.

전날 필리핀 외교부가 필리핀 해양경비대의 총격에 사망한 어민 가족에게 진심 어린 애도와 위로를 표한다고 밝힌 것을 '공식 사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을 명확히 한 것이다.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은 이날 외빈을 접견한 자리에서 사과 시한으로 정한 14일 자정까지 아무런 대답이 없으면 즉각 제재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만 군 당국도 공세를 폈다. 국방부는 해군 함정의 남방 정찰·순시선(線)을 대만과 필리핀 사이 바시해협 남단으로 대폭 확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주변국과 갈등을 빚는 남중국해 난사(南沙)와 둥사(東沙)군도 순찰 범위도 어선조업활동 범위에 맞춰 조정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군 당국은 아울러 필리핀이 시한까지 사과하지 않으면 오는 16일과 이달 말 각각 F-16 전투기와 함대를 분쟁 해역에 보내 필리핀을 가상의 적으로 규정한 주권 시위 훈련을 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 대만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남중국해에서의 '발언권' 강화를 시도하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대만과 필리핀 간 해양 영유권 갈등이 '해킹 전쟁'으로까지 비화한 가운데 중국해커들도 필리핀 정부 기관 사이트 공격에 가세했다고 대만 중국시보가 전했다.

중국 해커들은 필리핀 정부 사이트를 공격해 자국 국기인 오성홍기 사진과 함께"중화민족을 화나게 한 자는 반드시 응징받을 것이다" "공식적으로 대만과 중국 정부에 사과하라" 등의 글을 남겼다.

대만 연합만보는 전날 밤과 13일 오전 사이 대만 해커들이 필리핀 정부 기관 사이트들을 재차 공격해 온라인 접속 비밀번호와 자료 등을 인터넷에 공개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대만 해커들이 13일 총선이 치러진 필리핀의 선거관리 관련 사이트를 공격해 업무를 마비시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어민피격 사건의 파문이 커지는 가운데 이날 오후 주타이베이 필리핀 대표부 앞에선 대만 어민 대표 등 2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필리핀을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이날 오전에는 홍콩 필리핀 총영사관 앞에서도 유사한 내용의 시위가 있었다.

중국 관영언론들도 대만의 대응이 '약하다'면서 더 강력한 대응을 거듭 주문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는 "필리핀은 외교문명이 모자라고 올바른 도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힘있는 국가만을 무서워할 뿐"이라면서 "필리핀의 세계에 대한 이해는 마치 외국에서 일하는 필리핀 노동자 수준"이라고 비난했다.

이 신문은 필리핀, 일본 등이 어민을 총격으로 살해하고, 신사 참배를 하는 등 극단적인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은 반드시 이에 반격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한편 베니그노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은 이날 외교부가 관련 사건을 조사 중이라며 신중한 행보를 나타냈다고 필리핀 ABS-CBN방송 등 현지 언론이 전했다.

그는 특히 필리핀 노동력 수입을 전면 동결할 것이라는 대만 정부의 위협에 대해서도 "필리핀 대표부의 공식 보고를 받은 바 없다"며 태도 표명을 유보했다.

대만 언론은 주타이베이 필리핀 대표가 이날 오전 본국에서 어민 피격사건과 관련 중요한 회의가 있다고 밝히고 일시 귀국해 조만간 돌파구가 마련될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