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이 총통·TSMC 회장 등 만나
- 민주주의 수호·반도체 동맹 행보
- 中 ‘대만 포위’ 무력시위 나서
- 일부 수출입 중단 경제 보복도
- 美中 직접 충돌 가능성에 촉각
동아시아 순방 중인 미국 권력 서열 3위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중국의 강력한 반발에도 대만을 전격 방문해 미중 관계가 일촉즉발 대립으로 치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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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일 주홍콩 미국 총영사관 앞에서 친중 지지자들이 대만을 방문한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사진을 발로 밟으며 항의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
미군 수송기 C-40C를 타고 2일 밤 10시44분 대만 타이베이 쑹산공항에 내린 펠로시 의장은 3일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회담하는 등 거침 없는 행보를 보였다. 그는 공항에 내리자마자 “전 세계가 독재와 민주주의 사이에서 선택을 마주한 상황에서 2300만 대만 국민에 대한 미국의 연대는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말해 중국을 정조준했다. 특히 펠로시 의장은 이날 대만 도착과 동시에 공개된 ‘내가 의회 대표단을 대만으로 이끄는 이유’ 제목의 워싱턴포스트(WP) 기고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집권을 강화하면서 혹독한 인권 기록(탄압)과 법치에 대한 무시가 지속되고 있다”고 직격, 중국을 더 자극했다.
■“공산주의 맞서 민주주의 수호”
펠로시 의장은 이날 차이 총통과 만나 ‘민주주의 가치 수호’에 뜻을 함께 했다. 양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데 힘을 모으자는 결의로 풀이된다. 대만 중앙통신사 보도를 보면 차이 총통은 펠로시 의장과의 면담에서 “의도적으로 고조되는 (중국 측) 군사 위협에 물러서지 않고, 민주주의를 위한 방어선을 지키며 전 세계 민주 국가들과 단합하고 민주적 가치를 수호하겠다”며 “미국 의회, 행정부는 물론 공급망을 포함한 모든 방면에서 지속 협력함으로써 미국과의 관계를 한 단계 끌어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펠로시 의장은 “중국은 다른 미국 의원들의 대만 방문을 막을 수 없다”면서 “우리는 대만에 한 약속을 절대 저버리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 대만을 찾았다”고 화답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가는 중국을 견제·압박하는 것이 미국의 주요 목표이자, 펠로시 의장의 이번 대만 방문 목적이다. 이런 점에서 대만의 극진한 환대는 미국이 중국 팽창을 막을 ‘교두보’인 대만을 정치·경제적으로 확실히 우군화한 성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반도체 동맹’ 다지기 적극 행보
펠로시 의장은 이번 방문에서 ‘반도체 동맹’ 다지기를 통한 경제 행보에도 나섰다. 차이치창 대만 입법원(의회) 부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미국 반도체 법안(반도체 칩과 과학법)은 미국-대만 반도체 산업 협력에 좋은 기회”라며 ‘세일즈’에 나섰다. 지난달 말 미 의회를 통과한 반도체법은 2800억 달러(약 364조 원)를 투입, 미국에 공장을 설립·운영하는 반도체 기업을 지원한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의 류더인 회장도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TSMC는 미국과 서방에 반도체를 대량으로 공급하는 핵심 기업으로, 5나노미터(㎚=10억 분의 1m) 공정 반도체 제품을 생산할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공장을 내년 연말께 준공할 예정이다. TSMC는 피닉스 공장 설비 확대를 검토해왔는데 미국의 반도체법이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WP는 “펠로시 의장과 류 회장의 만남은 미국 경제와 안보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분석했다.
■중국 군사위협 불사, 격렬한 반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은 1997년 뉴트 깅리치 이후 25년 만이다. 대만 해협을 둘러싸고 미중 관계가 극단으로 치닫는 와중에 이뤄진 최고위급 방문이어서 중국은 격앙된 반응을 보인다. 더군다나 중국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이 올가을 제20차 당대회(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3연임 및 장기집권을 확정지을 시진핑의 ‘대관식’에 흠집을 낼 수 있다고 보고 더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시 주석이 그간 대만 통일에 강력한 의지를 보여왔는데, 미국 최고위급이 중국 허락 없이 대만을 방문하는 것은 주권 침해라고 인식한다는 것이다.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3일 발표한 담화에서 펠로시 의장 대만 방문을 두고 “미국은 대만 해협 평화와 안정의 ‘최대 파괴자’가 됐다. 대만 문제에서 도발해 문제를 일으키고, 중국의 장대한 발전을 지연시키고, 중국의 평화적 굴기를 파괴하려는 시도는 완전히 헛된 일이며, 반드시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리게 될 것”이라고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중국은 “대만을 사방에서 포위하는 형태로 무력시위를 벌이겠다”며 당장 무력시위에 나섰다. 중국 군용기가 2일 밤늦게까지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에 진입했고, 대만 주위의 해·공역에서 연합군사행동도 개시했다. 4~7일 중요 군사훈련과 실탄사격을 실시한다고 밝힌 해역을 연결하면 대만을 포위하는 형세다. 이를 두고 대만 국방부는 “중국의 훈련은 대만의 영공과 해상을 봉쇄하는 것과 같다”고 규탄했다. 별도로 대만을 상대로는 천연모래 수출과 감귤류 과일·냉장 갈치·냉동 전갱이의 수입을 금지하는 등 경제 보복에도 나섰다.
갈등이 최고조임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선 미중 간 직접적인 충돌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펠로시를 태운 항공기에 대한 격추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전용기는 중국군의 별다른 방해를 받지 않고 대만에 착륙했다. 중국 진안대 국제관계학 첸딩딩 교수는 “분명 매우 강한 반응이 있겠지만 통제불능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직접 충돌은 팬데믹 이후 가뜩이나 위기 상황인 중국 경제에 취약 요소로 작용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 행정부도 원하는 바다. 미 백악관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 도착 직후 “미국은 ‘하나의 중국’을 지지한다. 중국의 주권을 침해하지 않았다. 이번 방문이 위기나 무력 충돌을 야기하는 자극적인 이벤트가 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