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예금 인출 사태와 주가 폭락으로 지난 10일(현지시간) 파산한 가운데 12일 뉴욕주 소재 상업은행인 시그니처은행도 폐쇄됐다. SVB발 위기가 금융계 전반으로 확산할 조짐을 보이자 미 정부는 긴급 진화에 나섰다.
로이터통신은 미국 뉴욕주의 규제당국 금융서비스부가 이날 시그니처은행을 인수하고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파산관재인으로 임명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말 기준 시그니처은행의 총자산은 1103억6000만 달러(약 146조 원), 예치금은 885억9000만 달러(약 117조 원)다. 주로 상업용 부동산과 디지털자산 은행 업무 등을 했으며, 가상화폐 거래 주요 은행으로도 꼽혀 왔다.
당국은 SVB 파산 여파가 다른 금융기관으로 번지는 것을 막고자 고객이 맡긴 돈을 보험 대상 한도와 상관없이 즉시 전액 인출할 수 있도록 하고, SVB와 같은 위기가 닥칠 수 있는 금융기관에 자금을 대출하기로 하는 등 적극 개입에 나섰다. 미국 재무부와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FDIC는 이날 공동성명을 내고 “우리는 미국 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결정적인 행동에 나선다”며 이같이 밝혔다.
재무부 등은 성명에서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이 연준과 FDIC의 권고를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모든 예금주를 완전히 보호하는 방식의 사태 해법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재무부는 이로써 SVB 고객은 13일부터 예금 전액에 접근할 수 있으며, 시그니처은행에 대해서도 비슷한 대책을 마련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주식과 채권은 보호 대상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은행이 파산하면 연방예금보험이 한 은행 계좌당 최대 25만 달러까지 보호하지만,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등 기관을 주로 상대하는 SVB는 전체 예금의 거의 90%가 보험 한도를 초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재무부 등은 미국 연방예금보험법상 특정 은행의 파산이 광범위한 금융시스템 리스크를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보험 한도를 초과한 예금도 보호할 수 있다는 조항을 찾아 적극적인 예금자 보호 조치를 강구하고 나섰다.
또 연준은 이번 조치와 관련, 은행에 유동성을 지원하고자 새로운 기금(Bank Term Funding Program)을 조성한다고 밝혔다.
미 정부는 이번 조치가 미국인의 세금을 공적 자금으로 투입하는 ‘구제금융’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바이든의 경쟁자인 민주당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미국인의 세금으로 SVB를 구제할 때가 아니다”며 꼬집는 등 논란도 낳았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조치를 “이례적 개입”이라고 평가하며 캘리포니아의 테크기업과 벤처캐피털, 부유층의 자산을 보호한다는 결정이 정치적 불씨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