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동부 최대 격전지인 바흐무트 내 전세를 두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의 입장이 엇갈린다. 러시아는 이 지역의 ‘완전 점령’을 선전하며 “난공불락의 요새가 깨졌다”고 주장하지만, 우크라이나는 “격전지에서 잠시 빠져 포위공격을 가하기 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러시아 외신 “난공불락의 아르툐몹스크 신화 깼다”
23일 외신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국영TV 방송 등은 지난 20일 러시아의 바흐무트 점령 소식을 전하며 축하 분위기를 조성했다.
지난 21일 저녁 러시아 국영방송 ‘제1채널’의 한 앵커는 “아르툐몹스크가 난공불락의 요새라는 신화가 깨졌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전했다.
방송은 러시아 군인들이 ‘승리했다’는 구호를 외치며 백·청·홍색의 3색 러시아 국기와 민간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의 검은색 깃발을 파괴된 고층 건물 위에 게양하는 모습을 전했다.
또 다른 군인은 인터뷰에서 “(2차대전 당시) 우리 할아버지들이 베를린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바흐무트 점령을 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5년 소련 적군이 나치 독일의 수도 베를린을 점령한 사건에 빗댄 것이다.
다른 국영 TV 방송 ‘로시야 1’은 “이제 러시아군은 세베르스크(우크라이나명 시베르스크), 콘스탄티놉카(콘스티안티니우카), 크라마토르스크 등의 도시는 물론 심지어 (훨씬 더 서쪽에 있는) 드네프르(드니프로)까지 진격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신문들도 바흐무트 점령 소식을 1면 머리기사로 전했다. ‘콤소몰스카야 프라브다’는 붉은색 글씨로 “바흐무트가 점령됐다. 다음은 어디인가”란 요란한 제목을 달았다. ‘모스콥스키 콤소몰레츠’는 “아르툐몹스크 전환점”이란 큰 제목 아래 “우크라이나군이 중요한 요새 도시인 바흐무트를 지키는 데 실패했다”고 썼다.
관영 리아노보스티 통신은 칼럼을 통해 “러시아가 224일간의 전투를 통해 우크라이나군의 최정예 사단을 분쇄하고, 그들의 장비를 대규모로 파괴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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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이나 바흐무트에서 힘겹게 버티는 중인 우크라이나 군인.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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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P 우크라 군 인용 “일부 지역 통제 중, 포위 작전일 뿐”
러시아군이 점령한 바흐무트는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주도 도네츠크에서 북쪽으로 약 55㎞ 떨어진 도시로 소금과 석고 광산으로 둘러싸인 산업 중심지다.
러시아 침공 이전까지 7만 명이 살던 곳으로, 러시아가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래 최장기간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구 소련 시절인 1924년 볼셰비키 혁명가의 이름을 따 아르툐몹스크로 명명됐으나, 우크라이나에서 반러 친서방 노선이 노골화되던 2016년 이름이 바흐무트로 바뀌었다.
러시아는 지난해 7월부터 민간용병그룹 바그너를 앞세워 바흐무트를 공격했고, 우크라이나가 결사 항전에 나서면서 양측에서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그러다가 지난 20일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바흐무트 점령을 선언했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해방 작전 완료’ 발표와 함께 바그너 용병과 자국군을 치하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대응 전략이 바뀌었을 뿐 전투에서 패배한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바흐무트 주변 고지대를 중심으로 러시아군 병력을 반원 형태로 에워싸는 대형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세르히 체레바티 우크라이나군 대변인은 “우리 부대는 계속 바흐무트에서 전투 중”이라고 반박했고, 한나 말랴르 우크라이나 국방부 차관도 “현재 우리 방어군이 바흐무트의 산업 및 기반 시설 일부를 통제하고 있다”고 맞섰다.
우크라이나는 상황이 바뀌면 다시 도시 중심부로 진격할 것이라는 계획이다. 이 같은 주장은 22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바흐무트에서 여전히 포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당분간 교전이 이어질 것”이라고 관측하면서 뒷받침했다. WP에 따르면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우크라이나군 동부 사령관은 21일 바흐무트 최전선을 방문해 “우크라군이 작은 부분 만을 통제 중”이라면서 “새 목표는 바흐무트를 에워싸는 ‘전술적 포위’”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바흐무트 전체가 현재로서는 러시아로 넘어가지 않은 채 교전이 계속될 것으로 WP는 전망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주장이 엇갈리자 군사 전문가들은 “실제로 누가 바흐무트를 장약했는지와 무관하게 우크라이나가 교전을 이어가겠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고 봤다.
다만, 우크라이나 군 일각에서 바흐무트 도심에서는 승세가 이미 기울었다는 판단이 나오는 것으로 전해진다. 20일 우크라이나 군인은 WP에 “바흐무트는 끝났다”고 비관적으로 상황을 설명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