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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아 국민들이 지난 9일 수도 다마스쿠스의 우마이야드 광장에서 커다란 시리아 반군 깃발을 들고 있다. 시리아인들은 이날 수도 다마스쿠스의 중앙 광장으로 몰려들어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의 축출 후 새로운 날을 기념했다. 알아사드는 이슬람 반군이 주도한 번개 같은 공세로 권력에서 축출된 후 전날 러시아로 도피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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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불사조’로 불리는 시리아의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몰락으로 53년간 이어진 아사드 일가 정권이 막을 내렸습니다. 24년간 시리아를 철권 통치해 온 알아사드 대통령은 해외로 도주했고, 반군은 수도 다마스쿠스를 접수하고 권력을 이양받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러시아, 이란, 튀르키예 등 외세의 개입 속에 난마처럼 얽혀 있던 시리아 내전이 종식 문턱에 다가서면서 관련국들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지중해와 아프리카로 이어지는 지정학적 중요성에 더해 중동 내 민족·종파 갈등의 중심지라는 측면까지 고려하면 향후 수립될 시리아 새 정부가 어떤 노선을 택하느냐에 따라 주변 열강들의 희비가 엇갈릴 수밖에 없을 전망입니다.
■도주한 알사드는 어떤 인물?
알아사드는 1971년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아버지인 하페즈 알아사드가 사망한 직후인 2000년 대통령직을 세습받았습니다. 취임 직후 과감한 개혁 과제를 추진하기도 했지만, 선대의 ‘철권통치’를 답습했습니다. 비판적 언론인과 인권 운동가들을 체포하며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막았고, 반정부 인사와 반군에 대한 탄압을 일삼았습니다. 민주화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는 다마스쿠스 근처 반군 지역에 화학 무기를 살포해 국제사회의 공분을 샀습니다. 알아사드는 국제사회의 비난과 여러 차례 위기에도 러시아 이란 레바논 헤즈볼라 등의 도움으로 권력을 유지해 왔습니다.
■시리아 내전 왜 발발했나?
13년간 이어진 시리아 내전은 2011년 알아사드 정권이 독재에 반대하는 반정부 시위를 잔혹하게 진압하면서 발발했습니다. 당시 튀니지를 시작으로 중동 일대에 번진 ‘아랍의 봄’ 시위는 시리아에서도 벌어졌는데, 정부군이 시위대를 유혈 진압하면서 내전으로 비화됐습니다. 하지만 반군은 여러 세력으로 갈라지며 정부군에 제대로 맞서지 못했습니다. 혼란을 틈타 이슬람국가(IS) 같은 테러 단체가 발호하기도 했습니다. 미국·러시아·이란·튀르키예 등 주변 열강과 강국들이 자국 이해관계에 따라 개입하면서 복잡한 내전으로 비화했습니다.
■반군 파죽지세 어떻게 가능했나?
8년 전 최대 격전지 알레포에서 정부군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했던 시리아 반군이 이번에는 불과 열흘 남짓 만에 알아사드 정권의 심장부인 수도까지 함락하는 속도전으로 국제 사회를 놀라게 했습니다. 반군의 파죽지세 진격이 가능했던 것은 오랜 독재 체제 아래에서 저임금과 부정부패에 시달리며 사실상 ‘오합지졸’로 전락한 정부군이 제대로 된 반격에 나서지 못한 탓이 큽니다. 또한 그동안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해온 러시아, 이란, 레바논 헤즈볼라가 처한 상황도 예전과 달라졌습니다. 아사드 정권의 지원국인 이란은 이스라엘의 적극적인 공세 의지로 시리아 지원을 줄였습니다. 또 다른 지원국인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 집중해 과거처럼 도울 여력이 없었습니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과의 전투에서 최고 지도자가 잇따라 공습으로 사망하는 등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시리아 앞날은?
시리아 내전은 지금까지 서방 세계가 반군을, 러시아와 이란 등 권위주의 세력이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하며 대리전 구도로 진행돼 왔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은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분쟁은 개입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히는 등 미국과 러시아·이란 등의 개입이 어려운 상황을 틈타 튀르키예가 중요한 역할을 맡으려 한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시리아 반군이 단일대오보다 극단주의 이슬람, 튀르키예와 오래전부터 대립해 온 쿠르드족, 친튀르키예 세력 등으로 분산돼 이들 간에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제2 내전이 벌어질 우려도 있습니다. 내전 발발 이래 지금까지 62만명이 숨졌고, 600만명이 넘는 난민이 시리아를 떠났습니다. 시리아에 진정한 ‘아랍의 봄’이 이번엔 진짜 오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