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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화 '뽕나무 위의 삭개오' |
키가 작은 어떤 사람이 "하나님, 사람을 흙으로 지으셨다는데 저를 만드실 때 이왕 쓰시는 거, 흙 한 덩이 더 얹어주시지 그러셨어요"라며 하나님께 원망 아닌 원망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성경을 읽고 하나님께 원망했던 자신을 회개했다. 구약성경 잠언 16장 4절에 나오는 말씀이다. "여호와(하나님의 이름)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그렇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작품이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시다. 완전하신 하나님의 작품도 완전하다. 문외한의 눈에 위대한 작가의 작품이 이상하게 보이고 마음에 안 들어 보인다. 그러나 전문가는 그것이 걸작임을 한 눈에 알아본다. 만일 누군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에 눈썹이 없어 이상하다고 눈썹을 그려 놓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오늘 '성경 속 인물'은 여리고라는 도시의 세리장(세무서장) 삭개오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도 세리장의 세도가 대단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인들은 세리들을 끔찍이 싫어했다. 세리를 창녀와 함께 대표적인 죄인으로 여겼다. 그들은 로마의 힘을 등에 업고 자기 동족의 피를 빨아먹는 매국노였기 때문이다. 로마로부터 할당된 일정 금액을 바치면 나머지는 모두 세리의 몫이었기에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세금을 거두었다.
그런 세리들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좋아할 리 없었다. 그럼에도 삭개오는 어릴 때부터 세리장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왜? 그는 유난히도 키가 작은 사람이었다. 늘 친구들에게 놀림 받고 왕따를 당했다. 그 때마다 삭개오는 복수를 다짐했다. 어떻게든 세리장이 되어 자기를 놀린 친구들을 발 앞에 무릎 꿇게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드디어 세리장이 되었다. 뒤에선 뭐라 할진 몰라도 앞에서 사람들이 절절맨다. 그러나 마음에 기쁨이 없었다. 진정한 친구도 없었다. 늘 외로웠다.
그런 그에게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다.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가신단다. 어떻게든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다. 예수님의 얼굴 한 번만 봐도 자기의 외로움, 인생의 허전함이 다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길로 달려 나갔으나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키 작은 삭개오로서는 도저히 예수님의 얼굴도 볼 수 없었다. 마침 옆에 뽕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기어올랐다. 그러나 그에게 체면 지위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오로지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었다. 드디어 예수님께서 뽕나무 아래까지 오셨다. 갑자기 걸음을 멈추셨다. 삭개오를 올려다보고 말씀하셨다. "거기서 내려와라. 오늘 내가 네 집에서 머물러야겠다." 삭개오는 깜짝 놀랐다. 얼른 내려와 자기 집으로 모셨다. 그런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예수님이 죄인의 집에 들어가셨다고 수군거렸다.
그러나 삭개오는 예수님께서 자기의 모든 것을 아시고 진정으로 자기를 한 인격체로 대해 주시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누구에게도,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따뜻한 사랑의 눈길이었다. 자기를 인격적으로 대해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에 삭개오는 감동했다. 예수님께 자기의 결단을 고백한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겠습니다. 남을 속이거나 억지로 빼앗은 것은 네 배로 갚겠습니다." 구약에서 정한 규례보다 훨씬 더 큰 보상을 택한 것이다. 삶의 가치가 바뀐 것이다. 참 행복의 비결을 터득한 것이다. 비로소 삭개오는 인생의 참된 행복을 찾은 것이다.
혹시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텅 빈 삭개오의 모습이 지금 나의 모습은 아닐까? 나에게도 삭개오가 그토록 바랐던 그런 진실된 만남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지금 행복하면 영원히 행복한 것이다. 지금 행복하지 못하다면 앞으로도 계속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행복은 진정한 만남을 통해 찾아온다.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진정한 자아, 참 행복의 길을 발견했으면 한다.
대연성결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