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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블랙 비너스' 포스터. |
레이철 홈스의 '사르키 바트만'(문학동네)이라는 기묘한 제목의 책이 나왔다. 책의 제목인 '사르키 바트만'은 남아프리카에서 런던으로 건너온 19세기의 흑인 여인의 이름이다. 그녀가 책의 이름이 될 정도로 유명세를 떨칠 것은 각종 쇼와 과학적 탐구라는 이름 아래 세기의 구경거리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유럽인들이 그녀를 부르는 이름은 '호텐토트의 비너스'였다. 호텐토트는 남아프리카 '부시맨'을 이르는 경멸적인 표현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가 생존했던 19세기는 유럽이 영토와 세력을 확장하던 제국주의의 시대였고, 케이프타운에서 온 그녀는 거대한 엉덩이를 가진 여성, 독특한 생식기를 지닌 비너스라 불리었다. 그녀의 일대기는 영화로도 옮겨져 지난해 베니스 영화제 경쟁부문에 '블랙 비너스'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바 있다. 세 시간이 조금 못되는 시간 동안 '사라 바트만'(이것이 유럽에서 불리던 그녀의 이름이었다)은 런던에서는 하층민을 대상으로 온갖 핍쇼를 선보이며 술에 빠져 세월을 보낸다. 영화와 '사르키 바트만'의 내용 사이에는 다소 차이가 있는데, 책에 비해 영화를 만든 모로코의 감독 압델라티프 케시시는 그녀가 얼마나 외롭게 살았는가를 주목한다는 점에서 인본주의의 관점을 강조하고 있다.
남아프리카의 여인 사라의 유럽 여정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하나가 런던에서 하층민들을 대상으로 공연하던 시절이었다면, 다른 하나는 프랑스로 건너가 귀족들 앞에서 성기를 노출하는 쇼를 벌이는 것은 물론이고, 프랑스 과학자들에 의해 연구대상으로 전락하는 과정이 묘사된다. 그녀는 온갖 계급이 추구하는 진기한 구경거리였을 뿐만 아니라 과학자들에 의해서도 유럽인과 다른 '동물'적 인종의 표본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학적 시선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일 거라 생각하지만 19세기에 과학적 시선이 찾아다닌 것 역시 자신들의 문화와 이론을 합리화할 수 있는 표본들일 뿐이었다. 그녀는 프랑스의 귀족들이나 런던의 시정잡배들보다 과학자들을 더 끔찍하게 여긴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녀의 말년은 사창가에서 병들어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죽음이 된 시체를 은밀히 구입한 것은 프랑스 왕립원의 과학자였다. 끝내 거대한 표본으로 만들어진 그녀의 신체는 오랫동안 박물관의 표상으로 남게 되었다.
비록 표본의 삶을 살았지만 영화에서는 그녀가 절실하게 원한 것인 인간다운 최소한의 대접이라는 것을 여러 장면을 통해 확인시켜 준다. 과학자들의 요청에 의해 화가들이 신체를 스케치 할 때, 한 프랑스 화가의 따뜻한 시선이 그녀의 마음을 움직이는 대목이 있다. 런던과 파리에서 공연을 할 때 그녀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자신의 성기를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돈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과 계약을 맺은 남자에 대한 애정 때문이기도 했다. 그녀의 삶을 서구인들의 강력한 반성의 서사인 탈식민지의 눈으로만 볼 수도 없는 일일 것이고, 그녀의 사생활의 추적을 통해 확언할 수도 없는 것일 것이다.
상대적으로 레이철 홈스의 '사르키 바트만'은 '사라'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한 여인의 삶과 정체성을 돌려주고자 그녀의 본명을 되살린 제목을 사용하였으며, 좀 더 냉정한 목소리를 유지하고 있다. 사실, 표본이 되어버린 그녀의 삶에는 여러 관점이 쏟아져 나왔다. 유럽에서 이들 작품 이외에도 그녀에 대한 책과 영화가 쏟아져 나와 과거를 반성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야만성과 폭력성에 대해, 유럽이 기초한 야만에 대한 비판들이 진행되었다. 결국, 그녀의 삶은 한 세기의 그늘이자 반성의 사유로 남게 되었다. 우리에게 사르키 바트만은 지난 시간, 먼 나라의 일이 아니라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또 다른 잠재성이기도 하다.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