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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곳의, 詩와 그곳 <29> 이효림 시인 ‘서류를 주세요’

  • 김곳 시인
  •  |   입력 : 2021-07-25 09:3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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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류를 주세요



이효림







내 얼굴은 구비서류가 아니었어요 서류 주세요 얼굴을

턱 앞으로 밀었어요 얼굴에서 내가 보이지 않았어요 그는

이름을 크게 불렀어요 다시 대답했어요 그는 빤히 봤어요

목구멍을 뒤지듯 신분증을 살폈어요 본적이 어디인가요 나

를 본 적이 없는데요 본인이 맞는지 본인이 몰라요 만난 적

이 없어서 미안해요 본인 오라 했을 텐데 새를 데려왔군요

개가 멍 뛰어나오다니, 주소 불러보세요 부산 식물원로…

내가 발견될 수 있을까요 지문이 숲처럼 흔들리는 걸 몰랐

다니 그러니까 내가 왔잖아요 너무 파랗잖아요 머리도 꼬

리도 없는 것이 … 그는 빤히 봤어요 등에 점이 있는데 호랑

이 껍질을 붙었는데 입에서 자꾸 풀이 돋아났어요 발끝에

서 도넛이 부풀어 올랐는데 내가 어떻게 발견될 수 없을까

요 유사 얼굴 조심하세요 비밀 없는 얼굴을 어디다 씁니까

돌아가세요 서류 모셔오세요





  시집 ‘위대한 예측불허’에서



서류에 글자가 빼곡히 많이 들어섰다고 해서 그 서류가 나를 대신할 수 있을까? 사진은 중국 상하이국립박물관에 전시된 명나라 때 학자이자 서예가 축윤명의 세필 문서.


<내 느낌으로 바라보기>

관공서의 사전적 의미는 관서(官署)와 공서(公署)를 아울러 이르는 말로 나라나 지방자치 단체의 사무소를 말한다. 국가나 지방의 행정을 맡아 보는 여러 관청과 그 보조기관, 공공단체 등을 통틀어 이르는데, 많은 기관 중 일반인이 찾게 되는 곳이라면 주로 시청이나 구청, 경찰서, 세무서, 주민센터 등일 경우가 많다.

시의 배경은 일상에서 누구나 한번쯤 경험했을 듯한 풍경이다. 관공서는 행정적인 일을 진행하기 위해 찾게 되는데 상황에 따라 ‘구비서류’가 까다로운 경우에는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아 서툴기도 하고 이해력이 떨어져 소통이 더딘 면도 있다. 그렇다고 불친절한 자세로 고객을 대하는 직원의 태도를 보게 되면 덩달아 마음이 불편해진다. 직장에서 매일 업무로 생활화된 사람과 처음 일을 접한 사람이 같을 수는 없지 않나.

‘내 얼굴은 구비서류가 아니었어요’와 ‘서류 주세요’로 대비되는 이 두 문장에서 벌써 시적 화자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밝혀진다. ‘얼굴에서 내가 보이지 않‘고 서류에 있는 ’이름‘을 ’크게‘ ’불렀‘고 ’목구멍을 뒤지듯 신분증’을 살핀다. ’본적이 어디인가‘ 묻는 물음에 ’나를 본 적이 없는데요‘, ’본인이 맞는지 본인이 몰라요‘라는 풍자적 표현은 부조리한 현실에 일침을 가하는 시적 화자의 재치가 느껴져 호탕한 웃음이 절로 난다. 그다음 문장은 이 화자가 얼마나 위트가 뛰어난지 박수를 치게 한다. ’본인이 맞는지 본인이 몰라요‘, ’만난 적 없어서 미안해요 본인 오라 했을 텐데 새를 데려왔군요 개가 멍 뛰어나오다니‘, 자꾸 웃음이 날 것이다. 정말이지 수준 높은 개그 그 이상이다.

‘본인’이 모르는 본인은 증명하겠다고 구비해 둔 알 수 없는 증빙자료들을 요구하고, 제시하는 세상 속에 우리가 산다. 내가 보이지 않는 얼굴 없는 서류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시적 화자의 의문처럼 진짜 ‘내가 발견될 수는 있을까’.

알면서도, 미로 속으로 빠져드는 세상을 어쩌지 못하고 끌려가고만 있는 것 같다.

‘등에 점이 있는데 호랑이 껍질을 붙였는데 입에서 자꾸 풀이 돋아’나는 허상의 거죽을 걸친 이들(존재하지 않는 것)에 의해.

‘지문이 숲처럼 흔들리’는 곳에서 ‘유사 얼굴’, ‘비밀 없는 얼굴’, ‘머리도 꼬리도 없는 것’들이 쌓여간다. 우리는 쓸데없는 얼굴이 되어 돌려보내지고(‘돌아가세요‘) 서류를 모셔가야 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김곳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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