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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일(한국시간) 포트엘리자베스 넬슨 만델라 베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B조 예선 첫 경기 그리스전에서 선제골을 넣은 넣은 이정수(맨 왼쪽)가 동료 선수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
숨죽였던 90분간의 남아공 월드컵 그리스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를 2-0 완승으로 끝내는 종료 휘슬이 울렸지만 허정무 감독의 표정은 들떠 있지 않았다. '한국인 사령탑 월드컵 첫 승'이라는 역사를 새로 썼기에 좀 과장된 '승리 세리머니'가 나올 만도 했지만 그의 표정은 여전히 '긴장 모드'다. 대신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살포시 두 손을 모아 두세 차례 마주친 뒤 달려온 코칭스태프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는 것으로 자축을 끝냈다.
'진돗개'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허 감독의 머릿속에는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끄는 태극전사가 토고와의 첫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지만 이후 1무 1패로 16강 진출에 실패했던 아픈 기억이 남아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만큼 그가 이번 월드컵에 쏟아붓고 있는 집념은 상상을 초월한다. 과거 한국인 사령탑의 월드컵 도전사가 험난하기 그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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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선수들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세워 격려하는 허정무 감독. 연합뉴스 |
한국은 월드컵 본선에 처음 올랐던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때 '한국 축구의 대부' 김용식 감독이 지휘했지만 헝가리에 0-9, 터키에 0-7 참패를 당했다. 이후에도 한국인 사령탑은 조별리그 관문을 한 번도 통과하지 못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김정남)과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이회택), 1994년 미국 월드컵(김호)에서 1승도 챙기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차범근 감독이 조별리그 2차전에서 네덜란드에 0-5로 참패하면서 중도에 경질되기도 했다. 이후 대표팀은 7년 여동안 외국인에게 사령탑을 내주는 수모를 감수해야 했다. 네덜란드 출신의 거스 히딩크 감독이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창조하자 이후 움베르투 쿠엘류-조 본프레레-딕 아드보카트-핌 베어벡 등 외국인이 국내 사령탑의 접근을 차단했다.
허정무 감독이 외국인 감독 시대의 마침표를 찍고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것은 2007년 12월.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선수를 기용하고 젊은 피를 수혈하는 실험을 시도했다. 하지만 불안한 수비와 골 결정력 부족 등 한국 축구의 약점이 치유되지 않자 한때 '허무 축구'라는 비난까지 쏟아졌다. 그러나 묵묵히 선수들을 믿고 전술을 다져온 그의 선택은 그리스전을 통해 성과를 드러냈다.
그는 선제골을 넣고도 공격 고삐를 늦추지 않은 것에 대해 "선제골을 지키려고 하거나 풀어진다면 더 어려운 상황이 올 수 있다. 선제골을 넣으면 찬스가 더 온다고 생각했다"며 뚝심의 정공법을 강조했다. 허 감독은 이어 "나는 별로 한 게 없다. 우리 선수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발전해나가고 있고 시작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기쁘고 좋지만 앞으로를 위해 준비하는 게 우선이다"며 냉철한 '진돗개'로 다시 돌아갔다.
스타플레이어 출신인 허 감독은 1986년 선수, 1990년 트레이너, 1994년 코치로 월드컵 본선에 참가했고, 개인적으로 네 번째 월드컵인 이번 대회에는 감독으로 출전했다. 특히 아르헨티나의 디에고 마라도나 감독과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마주쳐 '태권 축구'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과격한 몸싸움을 벌인 바 있어 사령탑으로 조우하는 17일 양팀의 경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