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초의 벽 앞에 동계아시안게임 사상 첫 4관왕의 꿈은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승훈(사진)은 금메달 3개와 은메달 1개를 목에 거는 큰 업적을 이뤘다. 동계아시안게임 스피드스케이팅 남자부에서는 지난 대회까지 단 한 명의 3관왕도 배출하지 못했다.
제7회 아스타나-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남자 스피드스케이팅의 이승훈(한국체대)은 폐막일인 6일 이규혁(서울시청), 모태범(한국체대)과 함께 출전한 남자 팀추월 경기에서 일본에 0.03초 뒤진 3분49초21로 은메달에 그쳤다. 지난달 31일 남자 5000m와 2일 남자 매스스타트에서 잇따라 금메달을 따낸 이승훈은 5일 1만 m까지 석권하면서 세 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이날 열린 팀 추월에서는 은메달에 머물러 한국 첫 동계아시안게임 4관왕의 위업 달성은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됐다.
이승훈은 2009년 4월 쇼트트랙 대표선발전에서 탈락한 뒤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했다. 그는 종목을 바꾼 지 불과 7개월 만에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출전해 아시아인 최초로 장거리인 1만 m를 석권했다. 쇼트트랙에서 익힌 코너링 기술이 그의 최대 강점이 됐다. 여기에다 강한 심폐지구력을 타고 났다는 평을 듣는다.
이승훈이 거둔 성과는 결코 선천적인 체력과 기량에 있는 것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이번 대회에서 3관왕을 차지한 것은 벤쿠버 올림픽의 영광을 뒤로 하고 착실하게 이번 시즌을 준비한 성실함에 있다. 그는 경기마다 끝까지 강한 체력을 유지하는 것에 대해 "밴쿠버 동계올림픽 이후 더욱 열심히 준비했다"고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실제 이승훈이 보여준 막판 뒷심은 대회 관계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동료와 호흡을 맞춰야 하는 팀 추월을 뺀 나머지 3종목에서는 매번 막판 무서운 스퍼트를 보여줬다. 특히 5000m에서는 앞선 조에서 뛴 카자흐스탄의 드미트리 바벤코의 기록에 줄곧 뒤처지다가 마지막 질주를 앞세워 역전했다. 4바퀴를 남길 때까지 1.35초 차로 뒤졌지만 1바퀴를 남기고 1.07초 차로 역전, 결국 금메달을 땄다. 이승훈은 뒷심의 원동력에 대해 "경기 도중 체력 안배를 잘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피드스케이팅에서만 뛴 선수들은 코너를 돌 때 길게 미는 느낌으로 달린다. 하지만 나는 짧은 템포로 툭툭 치면서 코너를 돌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적다"고 설명했다.
이번 대회를 통해 아시아권에서는 맞수가 없음을 확인한 이승훈은 다시한번 세계 무대를 겨냥하고 있다. 그는 귀국하지 않고 캐나다 캘거리로 건너가 세계스피드스케이팅 올라운드대회(2월 11~13일)와 네덜란드 히렌벨 월드컵 7차 대회(3월 4~6일)에 나설 계획이다. 이승훈은 "아직 나는 세계적인 선수에 비해 부족한 면이 많은 것 같다. 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