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 체구·평발 신체적 약점으로
- 대학·프로팀 눈길조차 받지 못해
- 허정무·히딩크 감독 총애 받으며
- 2002년월드컵 4강신화 일등공신
- 2005년 퍼거슨 감독의 맨유 입단
- 7시즌 동안 27골 … 최고 전성기
'산소탱크' 박지성(33)은 변방에 머물던 한국 축구를 주류에 진입시킨 한국 축구의 개척자이자 선구자였다. 아니, 한국 축구를 넘어 유럽과 남미로부터 멸시당하던 아시아 축구의 자존심을 한껏 드높인 '아시아 축구의 아이콘'이었다.
■평범한 아이에서 월드컵 4강 신화까지
박지성이 화려한 선수 생활을 보냈지만 시작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작은 체구 때문에 아버지가 개구리즙을 먹이며 체력을 키웠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수원 세류초등 6학년 때 제5회 차범근 축구상을 수상하며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수원공고를 졸업할 때까지 그에게 관심을 두는 대학팀은 없었다. 다른 선수보다 덩치가 작았고 축구 선수로서 아킬레스건인 평발을 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능력을 알아보는 이가 있었다.
낭중지추(囊中之錐). 주머니 속에서 삐져나온 송곳을 본 이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던 허정무 감독이었다. 허 감독의 눈에 띄어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표로 발탁된 박지성은 이듬해 일본 J리그 교토상가로 이적하면서 프로선수로서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대망의 2002한일월드컵. 박지성은 명장 거스 히딩크 감독의 총애를 받으며 한국 축구를 누구도 예상못한 4강에 올려놓았다. 당시 그가 보인 놀라운 체력과 돌파, 스피드는 경기 내내 그라운드를 지배했다.
■명문 맨유 유니폼 입고 세계적 스타로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박지성은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아 2003년 초 네덜란드 아인트호벤에 입단한다. 그리고 2년 6개월 뒤 세계 명문 클럽인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유니폼을 입었다. 한국인 최초의 프리미어리거의 탄생이자 세계적 스타 탄생의 서막이었다.
그는 맨유 시절 강력한 체력을 바탕으로 그라운드를 휘저으며 '산소탱크', '세 개의 폐를 가진 사나이'라는 애칭을 들었다. 명장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은 성실한 자세와 프로 정신, 활동량을 높이 평가하며 박지성을 애지중지했다. 박지성은 퍼거슨 감독에 대해 "나를 세계 최고의 레벨에서 최고의 선수들과 경쟁할 수 있게 해 준 감독"이라며 고마워했다.
박지성의 활약상을 담은 사례 몇 가지. 맨유 시절이던 2009-2010시즌 AC밀란(이탈리아)과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원정 1차전. 박지성은 이 경기에서 세계 최고의 패스 마스터로 평가되는 AC밀란의 미드필더 안드레아 피를로를 모기처럼 따라다니며 3-2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경기 후 "박지성이 경기장에서 피를로를 지우개처럼 지워버렸다"는 얘기가 나왔다. 박지성은 2007-2008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전에서 명문 바르셀로나 FC를 완벽히 봉쇄하면서 영국 신문 가디언으로부터 "박지성이 바르셀로나의 중원을 해체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2005년부터 7시즌 맨유에서 활약한 박지성은 총 4회의 리그 우승과 한 번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함께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다. 그는 맨유에서 7시즌 간 총 205경기를 뛰면서 27골을 넣었다. 맨유가 1878년 창단한 이후 134년간 개인 통산 200경기 이상을 뛴 선수는 박지성을 포함해 92명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