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대 초반 사고로 오른손 장애
- 골프고 교감 된 40대 때 입문
- 공 띄우는데 반년이나 걸렸지만
- 전성기 땐 이븐 타수까지 기록
- 골프사관학교 맡으며 인생 2막
- 부산 장애인 대회 개최 추진도
‘골프는 왼손의 게임도 오른손의 게임도 아닌 잘 균형된 두 손의 게임이다(헨리 코튼)’ ‘두 손은 클럽을 쥘 뿐, 클럽을 휘두르는 것은 팔이다. 그리고 그 팔은 몸통에 의하여 휘둘러진다(벤 호건)’ ‘그립은 골퍼의 재산이다(캐리 미들고프)’.
골프 스윙에서 양 손과 그립, 스윙의 메커니즘을 강조하는 격언들이다. 두 손으로 플레이를 하는 골퍼에 대한 조언이다.
세상 모든 일에 ‘특별한 예외’가 있듯 ‘한 손의 골퍼’ 김명규(66) 부산골프칼리지(옛 부산골프고등학교) 원장에게도 이런 격언은 예외 사항이다. 두 손으로 플레이를 해도 어렵다고 하는 것이 골프다. 하지만 김 원장은 왼손 하나로 전성기 때 이븐파(18홀 72타)를 칠 정도의 수준까지 골프를 갈고 닦았다. 골프에 대한 애정과 신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김 원장은 ‘닥치고 연습’을 강조했다. 골프에서의 연습은 그에게는 ‘철학이자 종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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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규 부산골프칼리지 원장이 골프에 입문한 계기와 장애를 극복하며 골프를 배웠던 지난 이야기를 하며 웃고 있다. 이원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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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으로 드라이버 비거리 200m
한 손을 잃은 과거를 물었다. 대학 1학년 때 아르바이트를 하다 불의의 사고로 오른손에 장애를 입었다고 했다. 그는 “많이 좌절하고 힘들었지만 다 극복했다”며 웃었다. 그의 말대로 인터뷰가 이어지는 내내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김 원장은 1998년 골프에 입문했다. 40대 중반의 나이에 ‘어쩔 수 없는’ 핸디캡을 안고서. 당시 부산경남여자상업고교의 교감이었던 그는 “이듬해 학교가 특성화고 전환을 앞두고 있었다. 어떤 전공을 찾을 지 고민하던 차에 골프가 눈에 들어왔다. 학생은 물론 많은 사람이 부산골프고가 엘리트 선수를 배출하는 목적으로 알고 있는데 골프 산업, 다시 말해 피팅이나 캐디 등 관련 종사자를 전문적으로 교육하고 키워내는 교육 과정”이라면서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이론은 물론 실기도 익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때부터 김 원장의 눈물겨운 골프 인생은 시작된다. 이론은 책상에서 공부를 하면 됐다. 김 원장은 부산외국어대학교 사회체육학 골프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하지만 몸으로 골프를 익히기에는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쉽지 않았죠. 정식으로 배운 것도 아니고 . 시간만 나면 연습을 했어요. 차에 골프백을 싣고 다니다가 닭장(인도어 연습장)만 보이면 들어갔어요. 남들하고 출발선이 달랐기 때문에 노력 없이는 할 수가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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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손으로 드라이버 스윙을 하는 모습. |
지금도 그의 골프 철학이 ‘연습’인 이유다. ‘연습을 하루 하지 않으면 내가 알고, 이틀을 거르면 캐디가 알고, 삼일을 하지 않으면 온 세상이 안다’는 말은 그가 가장 신뢰하는 골프 격언이다.
한계가 분명했기에 좌절하거나 싫증이 날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한 손으로 채를 드는 것도 버거웠습니다. 근력이 부족하다 보니 엘보 같은 부상은 달고 살았죠.“
그래도 참고 했다고 한다. 부족한 근력을 보완하기 위해 따로 시간을 내 웨이트 트레이닝도 했다. 그러다보니 공이 맞고 뜨기 시작했다고 한다. 6개월 쯤 걸렸다고 기억했다.
김 원장의 라이프 베스트 스코어는 72타(18홀). 싱글 중에서도 이븐파다. 아마추어 골퍼라면 이 스코어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것이다. “밀양의 리더스CC에서 올린 기록인데 그 때는 전장이 좀 짧았다”며 겸연쩍어 했다.
김 원장은 소위 ‘한 창 물이 올랐을 때’ 드라이버 비거리가 200m 정도였다고 한다. 백돌이(100타)들은 두 손으로도 제대로 치기 어려운 드라이버를 왼 손 하나로, 그것도 200m를 보낸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시범을 보이는 그의 스윙을 보고는 이내 수긍이 갔다.
지금은 80타 초·중반의 타수라고 한다. 그래도 놀랍다. 그는 “거리가 나려면 클럽 헤드 스피드가 나와야 한다. 왼손이 방향성을 결정한다면 헤드 스피드는 오른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젊을 때는 몸통 회전으로 핸디캡을 보완했지만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것도 잘 안된다. 그런 점에서 한계가 있다 보니 숏게임에 조금 더 집중했다”고 말했다.
■골프칼리지 원장으로 인생 2막
지난해를 마지막으로 부산골프고는 폐교했다. 학령 인구 감소의 직격탄을 맞은 것. 학교가 문을 닫자 그는 교장에서 부산골프칼리지(평생교육원) 원장으로 직함을 바꿨다.
학교 내 실내 연습장 등 인프라를 활용해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골프 교육을 한다. 1년 짜리 장기 프로그램도 있는데 ‘한국골프사관학교’다. 김 원장은 “학교 부설로 프로그램을 시작해 올해로 7기를 맞았다. 한 기수에 20명 정도로, 이론과 실기를 병행한다”고 설명했다.
장애를 지닌 김 원장은 장애인 골프 대회 개최를 추진하고 있다. 그는 “서울에서는 골프가 이미 레저에서 스포츠 개념으로 전환되고 있다. 청각 장애인이나 지체 장애인을 위한 골프 대회가 필드에서 열리고 있다”면서 “부산에서 장애인이나 소외 계층을 위한 대회를 개최하고 싶다. 학교 내에 스크린 시설은 완비돼 있기 때문에 대회를 여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다만, 필드에서 대회를 개최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여건상 어렵다. 뜻이 있는 분들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 나에게 골프란…
- 희노애락 담긴 종합예술
골프는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종합예술이다. 골프는 단순히 스코어를 줄이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18홀 라운드를 하다 보면 홀마다 상황이 다르다. 비가 오기도 하고 바람이 불기도 하고, 때로는 OB가 나거나 해저드에 빠져서 어려움을 겪는다.
그린의 홀 컵의 지름은 108㎜다. 그래서 혹자는 불가의 108 번뇌에 비유하기도 한다. 드라이버 샷에서 그린 위 퍼터로 완료할 때까지 고통을 인내하고 상황마다 창의력을 발휘하고 냉정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것은 인생과 비슷하다. 18홀 안에 인생의 기쁨과 분노, 슬픔과 즐거움이 다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