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김도영이 프로야구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김도영은 지난 26일 프로 입성 3년 만에 최우수선수상(MVP)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만 21세에 이룬 업적이다.
MVP 트로피를 든 김도영은 수상 소감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그런 날 있잖아요. 앞이 보이지 않고, 미래가 보이지 않고,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한 날이. 그때 누가 저한테 해준 ‘너를 믿어라’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누군가 나중에 너를 보면 위안이 될 거라고 하더라.” 이어 김도영은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한) 그런 날이 떠오르는 분들이 저를 보고 위로받았으면 한다”고 소망했다. 큰 기대를 받고 프로에 입단해 부상 때문에 기량을 마음껏 펼치지 못했던 ‘그런 날’의 김도영이 전하는 희망 메시지다.
올시즌 김도영을 상징하는 말은 ‘니 땜시 살어야’다. KIA 팬들이 구수한 사투리로 올 시즌 내내 ‘도영아, 니 땜시(너 때문에) 살아야’를 야구장 안팎에서 외쳤다.
거기다 하나 추가하고 있다. KIA 팬이 아니더라도 국내 프로야구 팬이면 누구나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도영아, 너 때문에 우리도 산다.” 정규리그 막판 김도영이 국내 선수 최초로 ‘40(홈런)-40(도루)’ 클럽 가입에 도전했을 때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결국 김도영은 홈런 2개가 모자라 가입에 실패했다.
김도영을 보면서 2명의 이름이 떠오른다. 이종범과 이정후. 어쩌면 국내 야구팬은 이종범-이정후-김도영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먼저 이종범. 롯데 팬들에게 이종범이란 이름이 각인된 것은 1993년도다. 당시 롯데 소속이던 대도 전준호가 도루왕 타이틀을 노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해 대졸 신인으로 해태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은 이종범이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랐다. 시즌 막판까지 치열한 접전을 벌여 전준호(75개)가 이종범(73개)을 2개 차이로 따돌리고 도루왕 타이틀 홀더가 됐다. 롯데 팬들은 안도했지만 이종범이란 무서운 선수의 등장을 예사롭지 않게 지켜봤다.
그 뒤 이종범의 활약은 더는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하다. 요즘 말로 ‘국내 프로야구를 씹어 먹었다’고 표현해도 틀리지 않는다. 그런 이종범을 보면서 감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처음에는 너무 잘해서 미워했다가 나중에는 포기하게 되고, 마지막에는 존경을 하게 됐다.
이종범이 은퇴하고 태평성대가 찾아오는가 했는데, 그의 아들 이정후가 등장했다. 이정후도 무지막지했다. 소속팀 키움을 제외한 나머지 9개 구단을 두들겨 패고(?) 다녔다. 분노한 일부 팬은 이정후가 어느 팀을 상대로 특히 잘했는지 조사하기도 했다. 결과는 공평했다. 팀을 가리지 않았다. 그러자 일부 팬은 “제발 우리 팀은 용서해 달라”는 간절한 목소리를 냈고, 일부 팬은 “빨리 메이저리그로 가라”고 소원을 빌기도 했다. 팬들의 기도 덕분인지 알 수 없지만 이정후는 거액의 몸값을 받고 메이저리그로 진출했다.
또다시 평화가 찾아오는가 싶었는데 김도영이 등장했다. 올시즌 김도영은 사직구장에서 좌우측을 가리지 않고 타구를 담장으로 펑펑 날려 롯데 팬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아마도 당분간 김도영이 사직으로 오면 애증이 섞인 눈으로 쳐다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