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길래야 숨길 수가 없다. 도대체 어디에 있다가 나타났는지 모를 일이다. 롯데 투수 홍민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지난 1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LG와 3연전 첫 경기에 구원 등판한 롯데 홍민기가 힘껏 공을 던지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 제공

지난 1일 홍민기가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7회 팀이 1-2로 밀리는 불리한 상황이었다. 1사 2루에서 마운드를 이어받았다. 특유의 무심한 표정으로 LG 김현수와 첫 대결을 펼쳤다. 초구부터 공격적이었다. 시속 150km 직구가 포수 미트에 꽂혔다. ABS(자동투구판정시스템)가 스트라이크를 알렸다. LG 김현수가 당황하는 표정이 방송 중계 카메라에 그대로 찍혔다. LG 김현수에게 안타를 내줬지만 표정은 물론 후속 타자를 상대하는 공도 흔들리지 않았다.

홍민기는 1.2이닝 동안 24개 공을 던졌다. 11개가 직구였고 13개가 슬라이더였다. 직구 평균 구속이 151km에 달했다. 최고 구속은 153km였다. 11개 직구 중 10개가 스트라이크로 기록됐다. 이른바 제구가 되는 빠른 직구가 날아들자 LG 타자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구사하는 구종은 두 가지였다. 단조롭다면 단조로울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 타자와 맞붙어 이기는 데 ‘또 다른 구종’은 필요하지 않았다. 평균 구속 133km 슬라이더 앞에서 타자는 무기력했다. 직구와 시속 20~30km 차이가 나는 까닭에 타자는 방망이 내밀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지난달 28일 KT와 3연전 두 번째 경기에 등판한 롯데 홍민기가 공을 던지는 모습을 슬로우로 촬영한 모습. 롯데 자이언츠 제공

홍민기는 다섯 타자를 상대로 탈삼진 2개를 기록했다. 안타는 단 하나만 내줬다. 나머지 LG 타자는 병살과 땅볼 그리고 뜬공으로 돌려세웠다. 구원 등판해 짧은 이닝을 소화했지만 강렬한 인상을 주기에는 넉넉했다.

2020년 롯데에 입단한 홍민기에게 올해 들어 관심이 집중됐다. 입단 이듬해에는 1경기, 지난해에는 3경기를 뛰는 데 그쳤다. 올 시즌 홍민기에게 핀 조명이 떨어진 순간은 단연 지난달 18일 한화전에 선발 등판한 때였다. 시즌 초반부터 마운드 불안에 시달렸던 롯데는 홍민기에게 기회를 줬다. 홍민기는 기회를 제대로 살렸다. 4이닝만 책임진 뒤 마운드에서 내려가 선발승은 못 따냈다. 하지만 압도적인 빠른 공으로 상대 타자를 돌려세우는 모습을 보이며 ‘가능성’을 과시했다.

지난달 27일 KT전에 등판한 롯데 홍민기가 공을 던지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 제공

한화전 이후에도 홍민기는 지난 1일까지 네 차례 구원 등판했다. 지난달 27일 삼성전에서는 올 시즌 첫 홀드를 따냈다. 홍민기를 바라보는 롯데 김태형 감독은 흐뭇하다. 중간 계투로 잘 활용하고 있지만 다양한 상황에 홍민기를 기용하며 점차 ‘선발 투수’로 키워낼 구상이다.

김태형 감독은 홍민기가 결정구 추가에 열을 올리기보다는 지금 가진 강점을 극대화하길 바란다. 지난달 29일 KT전을 앞두고 김 감독은 “빠른 공을 내가 던지고 싶은 곳에 던지는 걸 (먼저) 만들어놔야 해”라고 말했다. 홍민기에게 빠른 속도에 정밀함까지 갖춘 직구 구사 능력을 갖출 것을 넌지시 주문했다. 김 감독이 내준 숙제를 홍민기가 완벽히 마치고, 빠른 공을 최소한 5이닝 이상 꾸준히 던질 체력이 뒷받침되면 홍민기는 자연스레 ‘롯데 선발’로 거듭날 전망이다.